새글 에세이
새치로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기대가 충만되기 때문이다. 앞날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사가 끝난 집에서 맞는 아침이 새롭다. 새벽 여명과 함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이 열정적으로 아침을 깨운다. 새들의 즐거운 지저귐을 들으면서 이불을 걷고 일어나는 호강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는 풀숲 사이에서 짝짓기를 시도하는 수캐구리들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도로를 건너 맞은편 선운지구는 이미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지 십여 년이 지난 신도심 지역이다. 선운2지구가 한창 개발 중이라 일대가 곧 번잡해질 것이다. 게다가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예정인 곳과 연결이 된다면 도심외곽이라고 하기엔 이제 어폐가 있다. 그러나 어등산 줄기의 서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어 자연과 함께 산새소리, 풀벌레 소리를 즐기며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리라.
아내의 손길이 부산하다. 대충 옮겨놓은 짐들을 정리하는 데에는 여러 날이 소요될 것이다. 주방살림들을 시작으로 옷가지를 익숙했던 상태로 정리하는 것이 일차의 부산함이다. 집안의 이방 저 방으로 바삐 다니는 아내의 얼굴표정이 고되지만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즐거움은 고됨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다. 아내의 발뒤꿈치를 종종거리며 따라다니는 강아지의 걸음걸이도 경쾌하기 그지없다. 주인의 즐거운 노동을 느낌으로 아는 듯하다. 대리석이 깔린 거실을 뛰어다니면서도 용케 미끄러지지 않고 잘도 다닌다. 새집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말티푸 루이의 하루도 신기해하는 새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이제부터 모든 시간을 새치로다. 새로 한다는 사투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여태까지는 무엇이든 잘해야겠다, 잘 살아야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위해 살아온 내내 나는 나를 세차게 결박시켰다. 그러나 되고자 하는 사회적 지위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이루고자 하는 삶의 평온에는 턱없이 다가가지 못했다는 자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욕심이 과했을 수도 있다.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이룸 보다는 덜 이룸에 익숙한 삶이었다. 만족보다는 부족에 무게중심이 치우친 삶이었다. 하지만 후회를 남발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다. 부족하면 부족함을 인정했다. 아픔이 찾아들면 회피하려 하지 않았다.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런대로 중심을 잡고 나를 지켜내며 살아왔다. 앞될 날들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내 삶의 틀을 깰 특별한 변수를 만들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팝나무 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아침을 노래하는 새들처럼 내 가슴에 심어놓은 행복나무를 쓰다듬으며 내 삶의 가락을 흥얼거리며 살아가도록 하자. 지금부터 새치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