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새글 에세이

by 새글

오랜만이야


주름살이 깊어지긴 했더라. 뱃살도 푸짐하고 임플란트를 한 티가 금세 알아보게 나더라.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손마디가 동아줄 같은 놈도 있고, 듬성듬성 지키고 있는 머리숱이 불안정한 놈도 있더라. 나라고 별 수 없겠지. 그들에게 비친 내 모습도 과히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골목골목을 누비던 짓궂은 모습을 바로 알아보겠더라. 외모가 달라졌다고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진 않았더라. 친구니까 그렇지. 다들 오랜만이야!


고향을 떠나지 않고 친구들과의 연락의 중심에 있던 토박이 친구의 늦은 결혼식을 보기 위해 하나, 둘 결혼식장에 모습을 드러낸 중학교 동창들이었다. 멀리에서 보면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 그냥 지났쳤을지도 모를 정도로 외면이 바뀌어 있었다.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예전의 얼굴이 클로우즈 업되었다. "어~~ 어! 너구나 친구." 어색한 감탄사를 길게 빼내야 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비로소 이름을 기억해 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이름을 기억해 낼 수 있어서. 살아온 배경을 알 수는 없지만 같은 시간대를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왔다는 동일감을 손바닥 체온으로 주고받으면서 반가웠다. "살아있으니까 보긴 하는구나." 목소리의 톤이 과장되게 올라가도 거슬리지 않았다. 친구니까 그런 거다.


고위직 공무원으로 지내고 있는 놈,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태생이 금수저인 놈, 읍장이 된 놈도 있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채로 살고 있는 생산직 회사원도 있고 자수성가한 식품회사 사장이 된 놈, 농사꾼이 천직인 놈, 막노동으로 생계를 곤혹스럽게 이어가고 있는 놈. 같을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지녔어도 한데 모이니 얼굴들이 환하다.


서울에서, 인천에서, 세종에서, 광주에서 그리고 어딘가에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서로 다른 삶의 형태는 지속되리라. 가볍게 날짜와 시간을 정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못하겠더라. 가까이는 며칠 전에 얼굴을 마주한 친구도 있지만 멀리는 30년 만에 보는 얼굴도 있음은 서로가 지닌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갑게 악수는 했지만 10년, 20년, 30년의 세월이 쌓아놓은 다른 삶의 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게 중에는 다시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오래 축적된 속사정을 이 한 번의 만남 속에 풀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시 헤어짐의 악수를 하며 건성으로 "연락하자, 잘 살아"라는 선언 같은 언약을 하면서 왔던 곳으로 몸을 돌렸다. 어느 날 문득 결혼식 단체 사진을 보면서 얼굴을 되살려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도록 하자. 누군가와의 삶과 비교하거나 다른 삶을 넘보기엔 50대 중반을 넘어선 우리의 나이가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정도가 아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최선을 다해 대하려 애써왔던 것처럼 남아있을 날들에도 내가 나처럼 살기 위해 최대의 힘을 다 쏟을 것이다. 나처럼 너희들도 같은 맘일 것이라 믿는다. 너희들의 삶을 위해 심심한 응원을 보낸다. "오랜만이어서 더 반가웠다. 친구들아, 오래도록 안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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