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길
흐르는 물은 앞물이 뒷물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앞물은 뒷물이 밀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뒷물이 앞물을 미는 현상은 지극히 당연하다. 흐름이 멈추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의 세대도 그런 것이다. 세대교체는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삶의 허무니 무상이니 하며 호들갑스럽게 불평할 이유가 아니다. 앞물은 그 앞선 물을 밀고 뒷물은 앞의 물을 밀어야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 밀고 미는 작용이 멈추면 흐름이 끝난다. 흐름이 멈춘 물은 그 자리에서 고여 오래지 않아 썩고 만다. 물과 물의 어울림이 물에게도 생명력을 주는 것이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앞선 세대가 그 앞의 세대를 받쳐왔듯 뒤따르는 세대가 뒤를 받쳐줘야 앞과 뒤의 흐름이 멈추지 않고 미래가 정화된다. 앞물과 뒷물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다는 자연법은 그래서 숭고히 이어져야 하는 불변칙이다.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지나간 날을 세기조차 버거운 서울의 한 지점, 한강철교를 건너며 멀리 시선에 들어오는 강물을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다. 내가 있었거나 부재했거나 상관없이 강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인지를 상관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해주는 강, 아무에게도 숨김이 없이 자신을 내보여주는 강은 있는 자체로 삶들을 비범하게 대해준다. 강은 흐르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헤아릴 수 없는 물의 입자들로 몸을 만들고 그 몸들을 합치며 밀고 밀렸으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강물은 결국 바다에 이르러 더 큰 물과 한 몸이 되고 대양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끝이 없을 것 같은 바다도 그 시작은 결국 입자들이 모여 이룬 물과 물의 합의체인 것이다.
물이 가고 있는 길을 가고자 한다. 막힘이 있으면 뒷물을 기다렸다 힘을 합쳐 넘어가고 좁은 길을 만나면 속도를 낼 것이다. 강폭이 넓은 곳에서는 속도를 줄여 평탄하게 앞을 향해 나가고자 한다. 물의 길은 앞과 뒤를 나누지 않는다. 서로의 길을 잇고 이을 뿐이다. 나도 그처럼 물이 가는 길을 따라가고자 한다. 앞서간 발자국을 본받아 따르고 뒷따름을 온전히 허용하며 밀어줌과 당김에 의지하고자 한다. 속절없이 물의 운명에 흡수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