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를 따라가야겠습니다

새글 에세이

by 새글

달팽이를 따라가야겠습니다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멈춰있는 것인지

느림을 초월해 더디기만 합니다.

그러나 촉수의 방향이 향하고 있는 곳을 향해

가늠하지 못할 속도로 달팽이는 가고 있습니다.

단단히 버틴 채로 매달려 있는 풀잎의 끝까지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이 움직였는지 헤아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다시 풀잎의 아래로 방향을 전환하기까지

기다려볼 심산이지만 위치를 바꿀 찰나의

거대한 느림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끌어당겼다 놓기를 한없이 반복하면서도

쉬지 않는 달팽이의 속력이 무섭습니다.

가야 할 곳을 향해 반듯하게 방향을 지키는

느림의 안정감을 닮아야겠습니다.

달팽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구부린 채 쪼그려 앉습니다.

작지만 지치지 않는 움직임에 동화된 듯

심장의 박동이 느려집니다.

들숨을 깊이 마시고 날숨을 최대한 길게 하면서

내가 나서야 할 방향을 견고하게 지켜야겠습니다.

멈칫거림이 없는 재능으로 생의 시간을 관통하며 기어가는

슬로우의 명장, 달팽이를 따라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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