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에세이
방심의 책임
일이 일어난 다음에야 방심했구나 자책을 하게 된다. 항상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서 조심할 수는 없나 보다. 설마는 방심이다. 방심의 결과는 원치 않는 상태를 이미 만들고야 만다. 후회가 따르지만 방심한 상태를 모면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하면서 살아간다. 조심하면서 지낸다고 좋은 결과만을 가져가며 살 수도 없다. 그러나 최소한 최악의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것이 조심이다. 일어나게 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조심한다고 좋지 않을 모든 상황을 피할 수는 없다. 좋은 일을 즐겁게 받아들이듯 좋지 않은 일도 냉정하게 수긍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운명론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하려 한다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측하고 더 좋지 않은 결론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행운이 예기치 않는 시기와 순간에 오는 것처럼 불운도 마찬가지다. 징조를 보이는 불운은 충분히 대비할 수가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불운은 방심하는 순간 덜커덕 닥쳐온다. 그제야 비로소 일상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불운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하기도 전에 때 이른 태풍이 남태평양 어느 곳에서 강력하게 발생해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 건물들이 파손되고 가로수가 통째로 뽑혀 날아간 폐허의 광경을 뉴스를 통해 보면서 예보된 자연재해를 막는 것도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자연이 힘을 집중하면 아무리 대비를 철저히 하더라도 인간의 능력 밖이 되고 만다. 단전과 단수로 고통을 받고 마비된 교통수단은 돌아갈 곳을 찾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태풍이 지나가면 느리지만 서서히 사람들은 일상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끊긴 도로를 잇고 쓰러진 나무들을 치우고 길을 낸다. 오염된 물길을 정화해 내고 단절된 사람들의 왕래를 가능하도록 물자를 조달한다. 헤어짐을 당했던 사람들은 다시 만나고 안타까운 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생살을 도려내듯 슬픔과 타협을 한다.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태풍의 진로와 강도를 위성을 통해 사전에 예견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수시로 방향과 위세를 바꾸더라도 예측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태풍을 맞이하기 위한 대비는 사람의 몫이다. 작은 규모의 태풍이라 할지라도 대비를 하지 않거나 작다고 무시를 하면 위험을 짐작할 수 없게 된다. 겪기 전의 방심이 큰 화를 부른다. 방심은 시련을 외부에서 시작되게 할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시작되게 만든다. 결국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상황을 판단한 사람들이다.
태풍의 영향인지 며칠 동안 비가 제법 굵게 내리다 잠깐 멈춘 사이 실내에 갇혀 지내기가 답답한 마음에 가볍게 산책을 하겠다고 나섰다가 미끄러졌다. 여기저기 긁히고 멍이 들었다. 까진 손바닥 피부와 무릎에 새살이 돋기까지 보름의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조심할걸 하며 늦은 후회를 해야만 했다. 당분간 날마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드레싱을 하고 항생제 주사를 맞으러 병원신세를 져야 한단다. 비가 완전히 멈추고 해가 나서 길이 마른 후에 답답함을 풀어도 늦지 않았을 것을. 조심성을 덜어낸 순간의 선택이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다. 붕대를 감은 손과 다리 때문에 간단한 세수도 혼자서는 못하는 처지가 한심하다. 몸의 불편은 내 몫이라 당연히 감당해야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수발을 들게 하는 번거로움을 주다니 창피한 일이다. 방심의 책임 값을 제대로 치러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