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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청백팀이 아니라 동네별로

by 맑은희망

운동회를 앞두고 며칠전부터 연습이 시작되었다.

이 더운날 한복이라니.. 우리는 위에는 속옷에 한복을 입고 아래는 바지를 입은 뒤 치마를 입었다. 걸을 때면 한복을 잡고 바지로 성큼성큼 걸어서 다녔다. 부채춤을 춰야해서 부채를 들고 있다가 더우면 손으로 부치며 앉아있었다.

남자아이들은 곤봉으로 뭘 한다며 들고 다녔다 그래도 쟤네들은 옷은 안 덥겠지..


운동회는 청백팀이 아니라 동네별로 나눠졌다. 우리 동네 성문리는 커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눠졌다. 옆동네는 학동리였는데 우리 동네보다 조금 더 작았다. 다른 동네는 선수도 훨씬 적어보였지만 왜 동네별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학교 이름이 성문리의 성, 학동리의 학을 따서 성학초등학교임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촌스러워..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아랫마을에 사는 영진이는 6학년 여자아이가 혼자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주 대표선수로 나와야만 했다. 영진이는 달리기도 느린데 몇년째 대표선수라며 너무 속상해했다. 나도 윗마을 대표선수로 나왔다.

대표선수들이 나가고 나면 앉아있는 아이들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어린반 동생들을 데리고 응원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응원하며 "성문리!"하며 마을 이름을 외치는데 매우 어색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왔어요 학동리가 이겼다고 전화왔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거짓말 성문리가 이겼다며 전화왔어요”하며 아이들에게 노래도 가르쳐줬다

점심시간 온 동네분들이 모두 모이셨다. 모두들 집에서 음식을 싸오셨다. 우리 엄마는 며칠동안 혼자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시장에서 생닭을 사오셨다.


“엄마가 치킨 만들어갈게”

치킨배달이 안 되는 이 동네에서 엄마는 치킨을 만들어갈 계획을 하셨다. 닭을 보며 칼로 눈대중으로 부위를 대본뒤 칼로 다리 목 등을 자르셨다. 가끔 아빠가 치킨을 사오실 때가 있었는데 후라이드는 전체 한 마리였고 양념통닭은 잘라셔서 왔다. 엄마는 양념통닭에 도전하셨다. 기름으로 튀긴 뒤 한 번 더 튀겨야 맛있다고 하셨다. 양념은 고추장과 케찹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양배추를 잘라서 마요네즈와 케찹을 뿌려서 오셨다. 엄마가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치킨이 너무 빨간거아니야? 맵겠다”하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치킨은 하나도 맵지않고 달콤했다. “엄마 진짜 맛있다.”하고 말하니 엄마는 “그래? 엄마가 하면 또 엄청 잘하지”하고 말하며 웃으셨다.


오후에는 엄마랑 같이 달리기가 있었다. 엄마는 “엄마가 다리가 아파서 못 뛰는데 어떻게 하지?”하시며 주변에 있는 아줌마들에게 부탁했다. 어릴때 뱀에 물려서 달리기를 못하시는 걸 알았기 때문에 조를 수도 없었다. 우리빼고는 모두 친척인거 같은 이 동네에서 나는 같이 뛰어줄 사람이 없어서 이 경기는 못 나가겠구나 싶었다.

“내가 해줘도 될까? 근데 아줌마 달리기 느려”하고 말씀하시며 옆집 진희언니 엄마가 오셨다. 나는 진희엄마의 손을 처음으로 잡아봤다. 엄마와 다르게 굳은 살이 배긴듯한 손이었다. 진희엄마 말씀대로 달리기가 느리셔서 우리는 꼴찌를 했다.


엄마는 “미안해. 처음으로 달리기 꼴등해봤지?”하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괜찮아”하고 말했다. 이 동네에서 내 손을 잡고 뛰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 이 동네에 속한 기분이 들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할머니의 고모의 딸, 누구의 조카 등 온 동네가 피로 얽힌 곳에서 우리 가족만 외부인인 느낌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점심을 드신 후 집으로 가시고 우리는 4시까지 우리만의 운동회가 계속되었다. 상을 준다며 우리는 모두 운동장에 모여앉았다. 얼굴은 모두 빨갛게 익었고 큰 운동회 끝인지 아이들은 모두 조용했다. 운동장 흙이 바람에 조금씩 날리기도 했다. 손목에 찍힌 ‘1’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순간 바람이 스쳐지나갈 때 산뜻한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는 바람. 그 바람에 서울에서의 바람과 다름이 느껴졌다.


모든 상은 공책이었다. 1등은 5개, 2등은 3개, 3등은 1개.. 공책을 잔뜩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공책 살 일은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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