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신혼집에서 살고 있을 때, 신랑 지인 분 중에 한 회사 대표님이 언제 한번 꼭 놀러 오라고 하시며 본인 매장에 우리 부부를 초대해 주셨다. 나들이 겸 외출해서 대표님 매장 구경도 하고 반갑게 인사도 드렸다. 귀한 손님이 왔으니 맛있는 걸 사주시겠다고 인사동 쪽 유명 삼계탕집을 갔던 걸로 기억한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신랑과 대표님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서 나는 아이를 안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아기띠를 하고 한참 아이랑 놀다가 잠들 정도가 됐는데도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지를 않았다. 창문 너머로 보니 그 대표님은 신랑에게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고 긍정형 신랑은 하하 허허 웃으며 듣고 있었지만 뭔가 잘 이해 못 하는 얼굴이었다. 참지 못한 나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두 분 대화 나누실 이야기가 많으신가 봐요~' 하고 운을 띄웠다. 그러자 대표님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신랑에게 설명한 내용을 나에게 다시 쭉 쏟아내셨다.
"아, 그러니까 대표님 말씀은 가격이 1억 인 집이 있다고 치고 7천만 원 보증금인 전세 세입자가 있다면 내 돈 3천만 원만 가지고 그 집을 살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렇지 그렇지. 여기가 더 이해가 빠르구먼."
그 대표님은 작은 돈이라도 모아서 종잣돈을 만들고 세입자가 있는 집을 사서 등기를 치면 된다고 했다. 세입자가 나가면서 보증금을 돌려줘야 할 때는 그다음 세입자를 구해서 보증금을 올려 받아서 돌려주고, 남은 금액은 수익으로 가져가면 된다고 했다. 그런 방식으로 본인집은 물론 이미 아들들 이름으로 집을 사두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이 정보를 알려줘서 집을 산 대표님들이 꽤 된다고 했다. 무슨 무슨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모임도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교류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정보를 내가 알려줘도 그냥 듣고 흘리는 사람이 있고 진짜 실행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건 본인들 판단이니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난 진짜 안타까워서 알려주는 거야. 이거 알려준다고 나한테 뭐 돌아오는 거는 일절 없어. 근데 젊은 사람들은 이걸 잘 안 하더라고."
그렇게 대표님과 헤어지고 신랑과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얘기했다.
"아니 그런 방법이 가능하면 다 그렇게 살지. 안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한데. 에이, 솔직히 좀 말이 안 되지 않아? 대표님께는 죄송한데 좀 사기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네."
그렇게 지나가는 해프닝처럼 잊혔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집과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모아볼 때 뒤늦게 불현듯 이 장면이 떠올랐다. 그 대표님이 우리에게 그토록 알려주고 싶으셨던 건 바로 '갭투자'였다는 것을. 우리가 몰라서 안타깝게 놓친 첫 번째 동아줄이었다.
# 갭투자에 대한 시선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이라는 카피가 한 때 유명했다. 집을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는 남아도는 집들이 많을 거다, 집값이 꼭 오르라는 법은 없다 등등 부동산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들도 보인다. 특히 갭투자에 대해 전형적인 사기꾼이다, 집값을 올리는 주범이다, 자기가 살지도 않을 거면서 왜 욕심부려서 그렇게 다 사는 거냐 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부동산이 투자의 한 방법으로 아직까지 건실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물론 이 방법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지켜본 10년 동안은 우상향이었다. 내가 현금을 가득 쌓아둔 부자라면 별상관이 없겠지만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은 한정된 수입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사는 집이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수익적으로도 성과를 내준다면 1석 2조의 굉장히 합리적인 투자처일 것이다.
예를들어 10억 인 집을 지금 당장 살 수는 없지만 일단 5억의 세입자를 구해서 살게 한 뒤 보증금을 뺀 일부 금액만 내고 계약을 한다. 그리고 세입자가 살고 있는 2년 동안 자금을 모아서 종잣돈을 더 키운 뒤 여기에 가능한 대출을 더해서 입주를 할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연봉이 더 높아졌을 거고 사업가라면 매출이 더 올랐을 긍정적인 상황을 기대한다. 입주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보증금을 올려서 연장하거나 새로운 세입자를 구한다. 그리고 만약에 2년 뒤에도 더 돈을 모을 수 없다면 그 시세에 맞춰서 팔면 된다. 내가 구입했던 2년 전 가격보다는 더 올라있을 확률이 높고 해당 시점에서 보면 난 2년 전에 팔던 가격으로 저렴한 할인가로 산 셈이 된다.
이 얘기를 하면 일단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 집값이 더 떨어지면 어떡하나, 세입자가 안 구해지면 어떡하나, 직장을 그만 두면 어떡하나, 사업이 잘 안 되면 어떡하나, 사람 앞일을 뭘 믿고 덜컥 사나. 그렇게 망설이고 의심하고 고민할 동안 집값은 올랐고 내 상황은 집값만큼 특별히 더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무 집이나 사고 오르겠지 하는 게 아니라 내 투자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 내가 좋은 집보다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집으로의 조건을 갖췄는지 공부하고 체크할 필요가 있는 거다. 대출도 무조건 다 받기보다 실제로 갚아갈 계획을 세우고 가능한 조건에 맞춘 집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동산 시장, 경제 상황, 트렌드 등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세 주고 세 사는 사람
내가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고 누군가의 집에 빌려사는 게 아닌 내 집에서 우리 가족이 편하게 살고 싶다는 거였다. 집주인의 무시, 재계약 이슈, 얼마나 오를지 모르는 보증금, 내 집이 아니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내 집에서 얻는 안정감을 추구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투자 관점에 따라서는 굳이 자가에서 사는 것을 고수하지 않고 오히려 내 집을 세 주고 다시 세 사는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집에서 편히 살고 싶으니까 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 포지션이다. 이게 그냥 내 집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전세살이를 하는 것과 내 집은 있지만 투자적인 관점에서 월세, 전세살이를 하는 것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할 수 없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월세 살이가 그냥 길바닥에 돈을 버리는 멍청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월세로 사는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목돈 마련이 안 되는 경우겠지. 전세는 2년 뒤에 내가 낸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나 있지 월세는 그대로 없어져버리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내 집에서 산다거나 전세로 사는 건 내가 가진 종잣돈이 그야말로 깔고 앉은 돈이 되기 때문에 원활하게 현금이 돌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 종잣돈을 넣어 세낀 물건을 사면 적어도 2년 뒤에 보증금 인상이나 매도로 수익화할 수 있다. 아니면 내 종잣돈을 주식이나 다른 투자처에 활용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월세 살이를 하며 지불하는 최소의 보증금과 월세 지출보다 앞선다면 오히려 월세로 사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되는 것이다. 다주택자나 부자들은 세금 이슈를 생각하면 월세로 사는 게 훨씬 저렴하다고도 하더라.
# 집에 대한 마인드의 변화
결국 지난 10년간 신혼집 전세살이를 시작해 지금 집을 사고 4년이 지난 시점까지 집에 대한 내 마인드가 확실히 변했다고 본다. 주위에 소위 말하는 부동산 하락론자(?)가 있는데 말할수록 서로 대화가 되지 않고 아예 생각하는 개념이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근데 그도 그럴 것이 딱 10년 전 내 모습이 그랬다. 이건 아무리 누군가 옆에서 말해줘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놓쳤던 첫 번째 동아줄처럼 그게 동아줄인지 뭔지도 모를 만큼 타격감이 없다. 당사자가 진심으로 깨닫고 다르게 보지 않는 이상 타인의 주장으로 갑자기 바뀌기는 어렵다. 이와 비슷한 이슈가 며칠 전 부동산 단톡방에서도 나왔는데 누군가 간단히 정리해 줬다.
1단계 설득과 역정 - 2단계 포기와 체념 - 3단계 그냥 나 홀로 번다.
내가 느낀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정답이 있다기보다 서로 다른 길을 택하는 느낌.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길에 대한 책임과 결과는 본인이 지는 것이다. 난 부동산 전문가도 아니고 다주택자도 아니고 나보다 부동산에 더 해박한 훌륭한 사람들이 흘러넘친다. 그냥 내 집 마련을 한 뒤 생각하는 관점이 아예 바뀌어 버린 내 모습이 신기한 사람일 뿐이다.
집에 관심이 간다면 내가 생각하는 우선순위를 정해 보면 좋다. 가격, 위치, 평형, 타입, 층수, 실거주관점, 투자관점 등등 여러 조건들 중에 본인이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의 교집합을 실행시키는데 갭투자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그렇게 실행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끊임없이 정보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다. 알지 못하면 그냥 흘려버릴 수도 있다. 무지함에서 오는 괜한 의심으로 좋은 정보를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안타까운 마음에 갭투자를 열심히 설명해 주던 그 대표님을 사기꾼 보듯 했던 나의 과거처럼 말이다. 주요 뉴스들,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사, 계속 이슈 되는 대출 문제들, 관심 갖는 지역과 아파트 단지 시세 등등 꼼꼼하게 파악하고 그 정보 안에 늘 발을 담그고 있는 게 좋다. 정보로 준비되고 흐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좋은 기회를 잡는 걸 많이 봤다. 10년 전 대표님과 함께 한 투자 클럽 멤버들은 이미 우리와 대비되는 부의 격차가 어마어마할 테니. 지금이라도 좋은 동아줄이 왔을 때 그 기회를 알아보고 단번에 잡아 올라 성장하길 바라며 공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