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올린 해에 감사하게도 첫째 아이가 생겼다. 아이를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서 세 식구가 좁은 신혼 전셋집을 벗어나 적당한 빌라를 매매하려다가 2번의 다사다난한 매수 실패를 경험했다.
이사 갈 날짜는 정해졌는데 갈 집은 없고 더 이상 매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과연 이 서울 땅에 우리 집이 있기나 한 걸까 낙담이 되고 회의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부동산 권태기가 찾아왔다. 하긴 누구는 평생의 목적이 내 집 마련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어린 나이에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매일같이 집 생각에만 매달리는 게 정말 지긋지긋해서 부동산 어플도 한동안 쳐다보지 않았다.
친구 결혼식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다시 집을 구해야 하는 현실이 번뜩 생각나 오랜만에 부동산 어플을 켜고 이번엔 매매가 아닌 전세로 눈을 돌렸다. 마음을 비우자 나쁘지 않은 가격과 상태의 매물이 보였다. 부동산 사장님께 문의했더니 마침 공실이라 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바로 확인하러 알려준 주소로 갔다.
# 전세니까 괜찮아
직접 가보니 연식은 느껴졌지만 매매를 염두에 두고 매물을 볼 때와 달리 전세로 생각하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주방에 식탁과 냉장고 자리가 반듯하게 나왔고 안방으로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게 햇볕이 들어왔다.
거실 창과 건너편 빌라 창이 마주했지만 빌라 틈 사이로 남향 햇살과 채광이 쏟아졌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집이라 통풍도 잘 되고 빛도 잘 들어서 곰팡이는 보이지 않았다.
평지나 지하철역에서 걷기에는 엄청난 각도의 언덕이라 혼자 걸어 올라도 숨이 헉헉 댈 것이 뻔했다. 차로 올라가면서도 우와 여기 진짜 높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대신 마을버스정류장이 집 앞에 있어서 걷기보단 아기띠를 하고 버스를 타고 오가면 되겠다고 위안을 삼았다. 주차는 늦게 오면 불편한 이중주차를 해야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대출을 받아 오래 살아야 될지도 모르는 내 집이 아니라 전세로 일시적으로 살아야 하는 집으로 생각하고 보니 단점은 감안할만했고 장점은 더 좋게 보였다. 매매하는 집은 실수 없이 최적의 선택으로 잘 골라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이 적어져서 맘이 더 편했다. 앞서 매수 실패를 두 번이나 하며 고생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이 전셋집이 가진 조건들은 매매할 생각이라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서 매수를 고려하지 않았을 집이지만 이렇게 전세로 살다 가기엔 나쁘지 않았다.
# 어떤 집이든 다 짝이 있다
어떤 집이든 집마다 반드시 짝은 있다. 그냥 지나다가 이 집을 본다면 아니 높은 산꼭대기 언덕 위에 이 못 생긴 집에 누가 살까 싶지만 다 그에 맞는 사람이 있다. 나처럼 집을 찾는 일에 지쳐 전세로 살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언덕 위지만 밝은 채광과 반듯한 공간이 맘에 들어서 이 집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집 상태를 따지기 보단 이 보증금 수준에 맞춰 살아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 전셋집으로 결정하고는 비로소 오랜만에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었다. 회상해보면 그때 당시 우리 형편과 상황에 맞는 집이었다. 입주 청소를 하며 화장실에 요란하게 붙어있던 꽃무늬 스티커들은 뗐다. 나무 소재 때문에 오래돼 바스러지기 직전이던 화장실 수납장은 버리고 그냥 자비를 들여 새것으로 교체했다.
오래된 빌라라서 비가 많이 오면 창가 아래로 빗물 때문에 벽지가 부풀기도 하고 방문 손잡이가 낡아서 잘 안 열려서 갇힌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집주인 분에게 연락해서 수리해 달라고 말씀드리기가 여간 번거롭고 불편했지만 그것도 세입자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이 거실에서 아이가 처음 걸음마 하는 모습도 보고 엄마 아빠 옹알이에서 말문이 트이는 기적도 만났다. 거실에 커다란 책장을 넣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하루에 10권 20권 열심히 읽어줬다. 이유식을 넘어 유아식도 열심히 만들어 먹였다.
산꼭대기 언덕 위 오래된 빌라였지만 밝고 따뜻한 남서향집이 삶의 질을 얼마나 높여주는지 몸소 알게 됐다. 지금 봐도 처음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처럼 세 식구가 살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게 해 준 고마운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