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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레이첼 Sep 30. 2024

가계약금으로 배운 인생공부

부동산 초보가 쉽게 생각하는 실수 3가지


두 번의 빌라 매수 실패 후 전세로 사는 동안 생각지 못한 둘째 아이까지 생겨 순식간에 4인 가족이 된 우리 부부. 전셋집에서 현금을 모으겠다고 들어왔지만 덜컥 아이 둘이 되자 조급함이 불어나 순식간에 내 마음을 집어삼켰다.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키워보자며 큰맘 먹고 아파트를 향한 핑크빛 꿈을 꿨으나 '전세대출이 있으면 주택담보대출이 안 나온다'는 얼토당토않은 상담원과의 전화 통화 내용만 믿고 낙심한 채 더 알아보지 않고 아파트 매매를 아주 쉽게 포기했다.


아파트가 안된다니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그래, 우리 수준에 무슨 아파트야. 그냥 애 키우기 좋은 빌라 라도 가야겠다'여기며 다시 내 집 빌라 찾기에 나섰다.



# 최소 억 단위 집을 사는데 그냥 삘대로 산다고?


힘들고 지겨웠지만 다시 초기 빌라 매수를 알아보던 시절을 떠올리며 발품, 손품을 열심히 팔았다. 부동산 앱을 통해 여러 매물들을 보면서 근처 부동산에도 원하는 조건을 말하고 좋은 물건 나오면 연락 달라고 문의를 해뒀다.


지난번 첫 번째 빌라 연결에 실패해서 미안해하던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괜찮은 집이 하나 있는데 지금 공실이라 바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본인 부동산 물건은 아니고 다른 부동산 물건이지만 보고 싶다면 연락해 주겠다고 했다. 거주하는 사람이 있을 때 집을 보는 것도 여간 서로 부담이 되는데 공실이라니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급한 마음에 당장 보러 가겠노라 했다. 그때가 오후 6시가 넘은 해가 져서 이미 어둑해진 저녁 시간대였다.


매물은 방 3개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크기, 지하철역 도보 5분 내외, 언덕 없는 평지, 초등학교 도보권이었다. 우리가 원했던 조건들이 얼추 맞았다. 단점은 엘리베이터 없는 3층, 고깃집 식당 뒷골목이라는 것 정도. 그리고 특이한 점은 거실과 방 한쪽이 단열재 같은 걸 덧붙여 새로 도배를 한 흔적이 보였다. (첫날은 별 생각이 없었지만 나중에 이 부분이 매수 포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부동산 사장님한테 물어보니 글쎄 잘 모르겠네 하며 넘어갔다.


그동안 까만 곰팡이로 뒤덮인 집, 담배 냄새로 찌들어서 색깔까지 변한 화장실, 냉장고와 식탁 자리 안 나오는 집, 가파른 언덕 위의 낡고 오래된 빌라 등등 난감한 집들만 봐왔는데 왠지 반듯하고 조용한 그 집이 맘에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기에 괜찮아 보였고 여기서 사는 동안 골치아픈 집 생각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맘이 들었다. 공실이라니 마침 우리를 위해 비워둔 것 같은 럭키비키한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말 그대로 삘이 왔다. 우리 부부는 집을 둘러보며 서로 얼굴을 쳐다봤고 연신 나쁘지 않다며 속닥거렸다.


정말 내 집은 현관에 들어서자 느낌이 확 온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지금껏 전세나 매매를 했던 집들은 직접 갔을 때 그전에 봤던 집과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집은 그 저녁에 처음 본 한 번의 느낌만으로 급하게 선택했다는 게 화근이었다. 우리가 최소 몇십만 원짜리 옷을 사더라도 소재, 브랜드, AS여부, 비슷한 다른 옷이 있는지, 타브랜드 옷은 저렴한지, 백화점보다 온라인 매장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비교하고 고민해서 구매한다. 하물며 최소 억 단위의 집을 사는데 뭔가 느낌이 좋다는 것 만으로 너무나 손쉽게 매수 결정을 내린 것이다.



# 그거 금방 나갈 집이야. 가계약금이라도 걸어두셔.


부동산에서는 우리 눈치를 슬쩍 보고는 나쁘지 않은 반응이라고 여겼는지 좋은 집이라고 푸시하기 시작했다. 평지에 건물도 깨끗해서 이만한 물건이 없다는 둥, 그 물건은 자기가 봐도 너무 괜찮다는 둥, 그 부동산만 갖고 있던 매물이라 몰랐다고 금방 나갈 거라는 등등 연신 칭찬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부동산이든 늘 하는 말인데 초보였던 우리는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동산에서 몇 번 부채질을 하니 우리는 갑자기 조급했던 맘이 더 조급해져 얇디얇은 귀가 돼버렸다.


"우리 매수 의사를 확실히 밝히는 게 좋아요. 내일 토요일인데 누가 그 집 보고 계약해 버릴 수도 있잖아. 그럼 그냥 날아가버리는 거지. 10% 까지 안되시면 가계약금 얼마 정도는 걸어두셔."


그동안 집 때문에 몸고생, 마음고생을 해온 터라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임산부였던 나는 배가 땅땅하게 뭉쳐서 이제 더는 집을 보러 다닐 자신도 의지도 없이 지쳐있었다. 집주인의 계좌번호를 건너 건너 어렵게 받아 가계약금으로 당시 갖고 있던 현금 300만 원을 홀랑 보냈다. 당시 인증샷도 찍고 신랑과 둘이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다며 아이들을 여기서 예쁘게 키우자고 뿌듯해하면서 좋아했다.




# 부동산 초보가 쉽게 생각하는 실수 3가지


우리가 집을 보고 왔던 날을 나중에 복기하고서 깨달은 게 있다.


1) 집은 밤에 봐도 상관없다? 집은 기본적으로 낮에 봐야 한다. 집의 채광이나 방마다 보온, 환기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보고도 그 집이 맘에 들면 오전, 오후, 밤 시간까지 꼭 집 안을 살펴볼 수 없다면 그 동네와 주변 골목을 걸어보며 분위기를 느끼는 게 도움이 된다. 


2) 비어있는 공실이 좋다? 공실이라는 뜻은 기존 세입자나 집주인이 이사 후 바로 다음 세입자나 거주자를 구하지 못할 만큼 덜 매력적인 집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또는 집 자체의 하자(곰팡이, 결로, 누수 등)로 인한 공사를 마치고  나온 매물일 수 있으니 왜 공실인지 이유를 정확히 문의하고 답변을 듣는 게 좋다.


3) 가계약이면 나중에 취소할 수 있다? 가계약도 계약이다. 정말 맘에 들어서 거는 가계약금은 오히려 발목이 잡힐 수 있다. 부동산의 홀리는 말에도 냉정하게 여기고 가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 단열재와 결로 그리고 곰팡이


거실에서 슬쩍 봤던 단열재와 고깃집 골목 바로 옆이라는 게 내심 맘에 걸렸는데 역시나 뭔가 찜찜했다. 그러던 중 과거 해당 빌라에 살았던 사람을 알게 돼 연락해 보니 고깃집 냄새 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팠고 결로가 정말 심해서 곰팡이까지 생겨 지긋지긋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똑같은 집은 아니었지만 그 빌라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들이라 아뿔싸 싶었다.


우리가 집을 불쑥 매매했다는 얘길 듣고 부모님은 의아해하시며 함께 가서 보자고 하셨는데, 역시나 보자마자 결로가 생기기 쉬운 집이라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걱정하셨다. 그러고 보니 거실과 방에 단열재로 덧댄 부분도 보였고 결로 공사를 하느라 이렇게 공실이 된 건 아닌지 의심이 들면서 걱정됐던 조건들이 모두 맞아떨어졌다. 그날 밤에 하루 보고 결정해 버린 모습에 깊은 반성과 후회를 하며 망연자실했다.


결국 부동산에 결로 부분이 걱정돼서 안되겠다며 가계약 해지 의사를 밝혔으나 누수나 보일러 고장 같은 주요 쟁점 외에 결로 수준은 매매 계약 파기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펄쩍 뛰었다. 가계약도 계약이라 집주인 맘대로 가계약금을 돌려주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결로니 뭐니 해도 어쨌든 집을 처음 본 날 멍청하고 조급하게 결정한 나의 잘못이 가장 컸다.




# 일부만 돌려받은 가계약금


내가 본 매물은 나와 연락한 부동산, 매물을 소개해준 부동산, 매물 집주인 그리고 나까지 총 4명이 얽힌 물건이다. 내가 가계약금을 걸었고 내가 보낸 가계약금으로 주말 동안 그 집주인은 다른 땅을 계약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가계약을 취소하고자 말하며 사정을 설명하고 죄송하다 말씀드리며 간곡히 요청을 드렸다.


결국 그 집주인은 계약하고자 한 땅을 계약하지 못하게 됐고 나의 눈물어린 호소에 가계약금 전체가 아닌 일부를 돌려주기로 했다. '가계약도 계약인데 이렇게 취소해 버리면 어떡하냐, 나도 손해 본 것이 있다, 그대로 준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일부만 주겠다' 말하는 집주인에게 눈물을 머금고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300만 원 중에 일부였는데 액수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아예 가계약금이 통째로 날아가는 건가 초조했는데 오히려 일부라도 받을 수 있는 게 감지덕지였다. 그 사건을 통해 계약도 계약이라는 평범하지만 단순한 진실을 날카롭게 배웠다. 한 푼이 아까울 가난한 신혼부부 시절 값비싼 인생공부 비용을 치른 셈이다.


 일을 겪은 뒤 부동산에서 여러 가지 말로 겁을 줘도 으레 하는 말이겠거니 넘길 줄 알게 됐고 매수 의사를 밝히는 것에 신중해졌다. 특히나 함부로 가계약금을 거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라도 가계약금을 돌려준 그 집주인분께 되려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당시 혼자서 우왕좌왕했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니 안쓰럽고 불쌍했다. 빨리 집을 사야 한다는 마음만 급하고 그를 실행할 능력도 마음도 준비되지 않은 미흡한 초보의 모습이었다. 다만 그때 배운 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으니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고 여긴다.


부동산이든 어느 문제든 조급해하지 않고 급할수록 여유를 갖고 제대로 실행하는 단단한 고수가 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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