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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레이첼 Sep 23. 2024

대출이 그렇게는 안되세요

전세자금대출과 보금자리론 동시진행?


# 두 번째 천사와 함께 다시 시작된 집 걱정


두 번의 부동산 매수 실패를 넘어 결국 전셋집으로 들어가 다음 기회를 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전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해 살림을 꾸려가며 한동안 집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걸음마를 하던 첫째가 옹알이를 넘어 말도 하는 모습에 매일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그런데 육아를 직접 해보니 상상을 초월할만큼 많은 에너지와 체력이 필요했다. 어차피 외동은 아니고 둘은 낳을 거라 여겨서 우리 부부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둘째를 빨리 키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두 번째 천사가 와주었고 결혼 3년 차에 뱃속 아기까지 4명의 가족이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모성애는 또다시 도돌이표처럼 집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 한 명을 키우며 안방에서 다 같이 자고 거실에서 놀고 작은방에는 잔짐들을 넣는 상태로 환경을 맞춰두었는데 갑자기 이 상태에서 아기가 한 명 더 생긴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심한 입덧 기간이 끝나고 배가 불러오며 아이와 언덕길을 올라 집에 오가는 게 점점 더 버거워졌다. 외출했다가 집에 오는 길에 유모차를 밀면서 배가 뭉쳐 몇 번을 쉬고 숨을 헉헉댔다. 이 집에서 내가 애 둘을 키울 수 있을까, 너무 불편하고 너무 좁은 것 같은데, 차라리 출산하기 전에 미리 이사 가야 하지 않을까, 신생아를 데리고 집을 보러 다닐 수는 없을 텐데, 진짜 여기선 안 되겠다 하는 걱정인형이 되어 스스로를 옭아맸다.





# 영끌을 해서라도 아이 키우기 좋은 아파트로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사 갈 집이 가진 조건에 대한 우선순위를 따질 때 육아 환경이 가장 중요했다. 놀이터가 가까운지, 문화센터를 다니기 편리한지, 도서관을 걸어서 갈 수 있는지, 집 근처에 어린이집이 있는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등등 아이 중심으로 주거 생활환경을 고려하게 됐다. 밤새 손품을 팔며 부동산 앱과 맘카페로 생생한 정보들을 찾아 헤맸다.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아무래도 빌라보다는 아파트 단지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빌라가 아닌 아파트로 이사 가려면 매수할 가격대가 확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정부 지원을 받는 전세자금대출이용하며 저금리의 혜택과 안정성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집을 매수할 때도 은행 대출 상품보다는 정부 지원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을 이용하고 싶었다. 특히 나이가 어리고 소득이 적은 신혼부부였기에 대출할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라에서 보장하고 제공하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유리했다.


보금자리론은 생애최초로 집을 매매하는 경우 집값의 최대 70~80%까지 고정금리로 대출이 가능한 정부 지원 상품이다. 소위 요즘 말하는 영끌족처럼 신용대출이나 제2금융권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가능한 대출한도액을 최대한 쥐어짜서라도 반드시 아파트로 이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파트는 늘 꿈의 금액대의 수준이었지만 두 아이를 생각하니 무조건 가야 한다는 맹목적인 의지가 불타올랐다. 당시 예상하는 월 부담액이 기존 수입 대비 지출을 고려했을 때 거의 안 먹고 안 사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신랑 월급도 오르고 집값도 오를 거라는 희망회로를 열심히 돌려가며 무리를 해서라도 지금 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 전화 한 통에 포기해 버린 내집마련의 꿈


그렇게 의지는 활활 불타올랐는데 불쑥 문제가 생겼다. 홈페이지에서 보금자리론 상품소개와 대출자격 내용을 살펴보니 해당 대출을 실행할 정부 관련 대출 상품을 이용 중이면 안되고 기존에 이용하던 정부 대출 상품이 있다면 해당 금액을 모두 상환 보금자리론을 실행해야 한다고 안내돼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이용하고 있는 정부지원 전세자금대출금을 모두 갚은 뒤에 대출금이 0원인 상태에서 새로운 집을 이사 갈 받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현금이 없어서 전세대출을 받은 사람한테 그걸 다 갚고서 새 집을 사라니 어이가 없었다.


잘 이해가 안 돼 관련 부서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대기한 뒤 상담원과 전화 연결이 됐다. 현재 상황들을 설명하며 문의했더니 상담원도 한참 상품 내용을 찾아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기존에 정부지원으로 하는 전세자금대출이 있으신 상태란 말씀이시죠? 그 상태로는 보금자리론 대출이 안되세요.
기존 대출금을 모두 상환 후에 실행하셔야 하는 상품이라.
이게 그렇게 2개 동시 진행은..
아무튼 이게 이 대출이 그렇게는 안되세요."


청천벽력이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 상담원과 서로 같은 말을 여러 번 주고받아도 결국 <이 대출이 그렇게는 안되세요>였다.


원래 돈이나 투자에 있어서 무조건 안정형을 추구했던 편이다. 아이들과 미래를 생각해 처음으로 나답지 않게 무리하며 최대 대출까지 받아서 아파트로 가려고 한 건데 그 희망과 의지마저 불가능하다니 정말 낙담이 됐다. 


만약 기어코 이사를 가겠다면, 전세자금대출금을 다른 은행대출이나 신용대출 또는 지인에게 빌리는 형태로 돈을 마련해서 갚은 후에 집을 매수해서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하는 거였다. 그러나 불가능한 얘기였다. 타 은행 대출이나 신용대출 모두 당시 소득으로는 불가능했고 그런 금액을 빌릴 지인이나 가족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매달 성실히 모아 저금해 둔 현금도 막상 쓸려니 턱없이 부족했다. 집을 매수하고 이동하려면 매매가 외에도 세금, 부동산 중개수수료, 이사비용 등의 여윳돈까지 챙겨야 하는데 모든 지출 계획이 어그러졌다.


아.. 우리는 평생 집 못 사겠구나.

그 상담원과의 전화 한 통으로 내집 마련의 꿈은 날아가버렸다. 더 이상 부동산 카페도 어플도 보기 싫어지며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 준비된 자에게나 기회가 의미가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반전!!! 이삿날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서 기존 전세자금대출을 반환하고 당일에 보금자리론 대출을 실행하면 가능하다는 거다.


그럼 상담원은 안된다고 했나? 당연히 정부 대출이 있는 상태에서는 추가로 주택담보대출이 안된다는 팩트만을 말한 거다. 상담원 입장에서는 수많은 고객들이 있을 텐데 전세금을 상환한 당일에 주택담보대출을 진행해서 매수하시는 방법이 있다며 상황을 고려해 친절히 설명해 주거나 그런 정보까지 직접 떠먹여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어쨌든 동시대출은 안되니 기대출금이 있는 상태에서 보금자리론 대출실행은 안된다는 사실만 반복적으로 말한 것이다. 잘못된 정보도 아니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내가 정말로 내집마련에 간절했다면 좀 더 자세히 질문한다거나 다른 사례를 찾아봐야 했었다. 하다못해 부동산 사장님한테라도 다시 전화해서 물어보거나 부동산 카페에 질문글이라도 남겼어야 한다. 하지만 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냥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대고 우리는 전세로 살아야하는 수준이라며 현실에 안주했던 셈이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동아줄을 안타깝게 놓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 재정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집을 살 준비가 안된 상태였다. 마음만 급해서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안된다는 전화통에 놀라 제 풀에 혼자 꺾여버린 격이다. 아마 그런 상태로는 대출을 받았다고 해도 더 이상 발전시켜 나가기도 버거웠을 것 같다.


내가 급할 때만 바짝 안테나를 세웠다가 관심 없을 때는 휙 꺼버리는 멍청한 실수를 하지 않고 성실하게 그 세계에 발을 담근 상태에서 정보를 모으다가 필요한 때에 대출을 일으켜 집을 샀다면 우리 부부에게 큰 도움이 되는 확실한 동아줄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들 나랑 별다를 없이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집도 있고 차도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던 시절. 버스를 타고 아파트 단지 근처를 지나가는데 수많은 창문들이 보였다. 이렇게 아파트 창문이 많은데 저 중에 우리 가족이 이사 갈 수 있는 집 하나 없는 차가운 현실에 씁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하지도 않고, 그저 할 수 없는 상황 탓만 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돌이켜 볼 때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늘 부동산 동향을 파악하고 관심 있는 지역의 가격 추이를 틈틈이 검색한다. 소중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안테나를 날카롭게 세우고 스탠바이한다. 그래야 언제 만날지 모르는 동아줄이 내 앞에 내려왔을 때 확신을 가지고 낚아채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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