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집이 진짜 최선인가
우리 부부가 10여 년 전 시작했던 신혼집은 전세 7000만 원에 계약했던 빌라였다.
결혼을 약속한 뒤 시어머님이 교회를 다녀오시다가 근처 부동산에 가서 봐두신 집이었다. 서울 강서구였는데 직장도 지하철역도 가깝고 시댁과 친정의 중간 지점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나마 그 동네가 저렴한 가격에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전셋집들이 많이 있던 빌라촌이었다.
빌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처음 그 집을 보고는 정말 이게 최선인가 싶어서 다시 같은 금액의 주변 매물을 보러 발품을 팔았다. 집은 늘 부모님이 이사 결정을 하신 곳에 살았고 내가 딱히 관심 갖고 보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분야였다. 하지만 내가 들어가 살아야 할 우리 부부의 집이라고 보니 또 다르게 보였다. 상가주택, 연립빌라, 다가구주택 등등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결국 어머님이 골라오신 그 집이 제일 괜찮았다. 우리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찾고 찾으면, 지역을 달리한다던가 다른 부동산 매물을 살펴보면 좀 더 나은 집을 찾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집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상태라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결혼 준비에 혼자 신경 쓸 일들이 많았다. 결혼은 다음 해 3월이었으나 그때 되면 이 좋은 집을 놓친다며 4개월 전인 11월에 미리 혼인신고를 하고 전세자금대출을 받아서 계약을 했다. 너무 많은 대출은 부담스러웠고 부담이 적게 최소한으로 신청했다. 그게 우리 집에 대한 첫 선택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구옥 빌라였는데 한 층에 3세대가 살았다. 좀 특이한 구조라서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거실 한켠에 세탁기를 놓아야 했다. 5층집 거실은 통창이라 어둡진 않았지만 바로 옆빌라의 주방창이 보이는 벽뷰라서 맘껏 열어두지는 못했다. 투룸이라고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방 1개는 냉장고와 행거 하나를 두면 꽉 찼고 나머지 방 1개에 침대, 작은 옷장, 서랍장을 놓았다.
주차는 나름 그 빌라에서 오래 사셨던 분들의 룰이 있어서 겹주차를 하더라도 서로 빼주는 연락이 잘 됐었다. 물론 예외의 날도 있었다. 차를 빼달라고 전화했는데 이미 키를 가지고 멀리 외출하셨다고 해서 신랑이 급히 택시를 타고 나가기도 했다. 도로가에 세웠다가 마을버스 통행시간에 신고를 당해 강제견인되기도 했다. 차를 타러 나갔는데 차는 없고 벽에 종이만 붙어있을 때의 공포감이란..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도 봤고 여름철 찜통더위 속에서 선풍기로 버티기도 했다. 옆집 아이들이 혼나는 생생한 소리를 들으며 난 우리 애들 안 혼내야지 하는 건방진 생각도 했다. 우리 차 앞에 줄줄이 주차가 돼 있는 차주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기다릴 때는 불편하고 답답했다. 임산부가 돼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5층 계단을 낑낑 거리며 올라올 때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그 좁은 집에서 친구들과 가족들을 불러서 집들이도 하고 옥상에서 큰 이불빨래를 널고 걷었다. 근처 시장에서 둘이 장도 보고 빨간 어묵도 사 먹고 동네 목욕탕도 다니는 나름의 신혼집 낭만을 누렸다. 그런 작은 집이라도 둘이 머물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 2년마다 열심히 일하는 구옥빌라
거기서 2년을 채우고 재계약 시즌이 왔다. 집주인은 죄송하지만 현 시세대로 보증금 2천만 원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친절하고 정중히 말씀하셨다. 집주인이 올린 보증금 문제보다는 그 사이 우리에게 아이가 생겨 3 식구가 됐다는 게 큰 변화점이었다. 집이 너무 좁아 앞으로 걸음마할 아이를 편히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연장 없이 다른 집으로 이사 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생기면 집에 대한 마인드가 달라진다. 주거 환경의 미니멈이 둘만 살았을 때 보다 훨씬 올라가게 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당연히 집주인이 우리가 맡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그 현금을 그대로 갖고 있는 집주인은 드물다. 다음 세입자가 잘 구해져야 보증금을 되돌려 받기가 수월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집을 잘 보여주고 협조하는 게 좋다.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틀어두라는 여러 조언들도 있지만 일단 보이는 잡다한 짐들을 모두 집어넣어 치우고 깨끗하고 밝게 청소했다. 화장실은 변기 청소를 열심히 하고 청결하게 유지했다. 집을 보러 손님과 함께 온 부동산 사장님은 좁지만 미니멀하게 정돈된 우리 집을 보고 깜짝 놀라며 화색이 돌았다. "어머 새댁 집 진짜 깔끔하게 쓰는구나"하고 칭찬도 받았다. 내 집도 아니지만 뿌듯했다.
몇 번 집을 보여줄 때 온 사람들을 보면 딱 감이 온다. '아 이 사람은 아닌데, 이분은 여기 계약 안 할 것 같다.'
며칠 뒤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온 청년은 혼자 지낼 곳을 찾았는데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예의가 밝고 사람이 좋아 보였다. '아 이 사람이 들어오면 좋겠다.' 그 청년은 우리 집을 둘러보자마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사장님 저 여기로 할게요. 지금 바로 계약서 쓸게요."
내가 신혼집 후보들을 다 둘러보고 이 집에 왔을 때 여기가 제일 낫다 느꼈던 안도감과 비슷한 것 같았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말했던 대로 보증금 2천을 더 올려 9000만 원으로 그 청년과 계약했다고 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2년이 지나고 재계약 시즌이 돌아왔을 때 그 구옥빌라는 집주인에게 2천만 원을 벌어줬다. 2천만 원을 24개월씩 나누면 한 달에 약 83만 원 정도의 수익을 가져다준다. 중간에 수리비용이나 기타 부동산 중개비용을 제외한 숫자다. 집이 좁다, 엘리베이터가 없다, 오래되고 낡은 오래된 빌라다라고 우습게 봤지만 그 자리에 우직하게 서서 일한 셈이다. 그 집주인이 이런 빌라 여러 개를 갖고 있다면 꾸준히 일하는 일꾼들을 여러 명 갖고 있는 셈이다.
# 신혼부부 때로 돌아가 신혼집을 고른다면?
내가 겪었던 모든 전세살이와 집주인분들, 크고 작은 부동산 경험들이 정말 지독하게 짜증 났지만 지금의 나에게 피와 살이 된 경험이었다. 내가 그 시간들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의 집에 대한 마인드와 생각이 쉽게 길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지금 결혼하는 신혼부부가 있다면, 그리고 10여 년 전 당시의 우리 부부와 다음 세입자로 들어왔던 청년에게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빨리 서울 역세권 근처 작은 아파트를 대출받아서 세 끼고라도 사두라고.
당시에는 받는 월급도 작았고 몇 천만 원을 대출받는다는 게 엄청난 일탈과 범죄인 것 같았다. 대출을 반드시 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시간 동안 대출에 얽매여 있을 것만 따지고 포기해 버렸다. 오히려 나이 어린 신혼부부이면서 무주택자인 조건을 적극 활용해서 생애 최초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매매하면 좋겠다 싶다. 아니면 좀 더 시드머니를 모아서 청약에 도전하는 건데 워낙 경쟁이 치열해 당첨이 쉽지 않은 부분이라 오히려 1 주택자가 될 시기가 늦춰질 것 같아 크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부부 둘이서 좁은 집이든 불편하든 그런 부분을 감내하면서 돈을 모으고 자산 규모를 키워가는 맛이 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양가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부부가 고액 연봉을 받는 대상자라면 두 사람의 스타트 라인이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 그럴 수 없다면 아이가 없는 신혼 초기에 바짝 집중하는 게 좋다. 감당할 수 없는 허황된 빚은 단연 문제가 되지만, 자격이 되는 정상적인 대출을 적합하게 받아서 갚아가는 것은 오히려 느슨해진 인생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다. 대출금 상환 계획을 짜며 가계의 수입 지출을 서로 체크하고 관리하는 일은 가정을 꾸리면서 성장하는 매우 발전적인 모습이다.
아이가 생긴 뒤 돈을 모으는 것은 점점 쉽지 않고 주거 환경을 정할 때도 조건이 몇 개는 더 붙는다. 고려할 사항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제약이 크다. 둘 다 맨몸으로 있을 때 열심히 모으고 집중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을 보지 말고 몇 년 뒤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둘이서 원룸이든, 복도식 오래된 아파트이든, 작은 빌라든 지출이 적을 때 시드머니를 불리고 모으는 게 유리하다. 그러면 5년 뒤의 내가 매우 고마워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