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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성 다른 세 자매 밥상 차리기

아이들이 추억할 엄마표 집밥을 위해

by 퍼플레이첼
KakaoTalk_20241011_115227965.jpg 첫째는 참치김밥, 둘째는 맛살 없는 치즈김밥, 셋째는 그냥 주먹밥.
KakaoTalk_20241011_115430791.jpg 첫째는 잘 먹고 둘째는 몇 개 먹고 셋째는 손도 안대는 어묵탕. 대신 육수에 소면을 삶아서 같이 주면 좋아한다.
KakaoTalk_20241011_114846724.jpg 애들은 주로 두부 건져먹고 시원한 꽃게 국물은 어른들용.
KakaoTalk_20241011_115440346.jpg 과일 좋아하는 둘째도 키위는 무조건 골드키위여야 한다.
KakaoTalk_20241011_115542848.jpg 과일 좋아하는 둘째를 위한 생과일주스.
KakaoTalk_20241011_115626598.jpg 사과 껍질 좋아하는 아이, 싫어하는 아이 둘 다 먹이려면 두 종류로 준비.


KakaoTalk_20241011_115712765.jpg 요즘 들어 첫째와 둘째 둘 다 잘 먹는 크림스파게티. 베이컨은 첫째가 대부분 차지한다.
KakaoTalk_20241011_115757247.jpg 식빵에 계란물 적셔서 버터 두른 팬에 굽기. 막내는 그냥 버터에 구운 식빵을 더 좋아한다.
KakaoTalk_20241011_115807561.jpg 닭다리살 사서 소금 후추 양념 후 노릇하게 구우면 아이들에게 인기만점. 역시 첫째가 제일 많이 먹는다.


# 한 끼에 3가지 메뉴


딸들은 셋 다 식성이 다르다. 딱 한 종류만으로 정할 수는 없지만 세 명 각기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 첫째는 주로 고기파, 둘째는 야채과일파, 셋째는 그냥 밥파.


메인 메뉴 하나로 5인 가족 식사를 한 번에 끝내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식성이 조금씩 다르니 한 끼에 적어도 3가지 메뉴를 고려해서 밥을 차려야 한다. 매일 화려한 식단으로 차려주지는 못하고 평범한 메뉴지만 그래도 애들 한 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에 아이들이 각자 좋아할 만한 것들, 잘 먹을만한 것들로 준비한다.


예를 들어, 첫째를 위한 제육볶음과 계란찜. 둘째를 위한 오이, 파프리카, 각종 과일류 준비. 셋째를 위한 쌀밥과 미역국, 김치, 계란프라이. 그리고 어른들이 먹고 싶은 얼큰한 메뉴가 있으면 더 추가.


힘에 부쳐서 신경을 좀 덜 쓰고 매운 국만 내오면 자기 먹을 안 매운 국 없다고 찡찡, 고기 없으면 먹을 반찬 없다고 찡찡, 계란프라이를 해도 자기는 흰자만 먹겠다고 찡찡.


그런 컴플레인을 들으면 시장이 반찬이라고 다들 쫄쫄 굶겨야 반찬투정 안 할 거라며 쌍심지를 켜지만 그래도 아이들 입맛에 맞는 메뉴를 내기 위해 매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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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를 만화로 배웠습니다


사실 결혼 전에 내가 해본 요리라곤 그냥 계란 프라이에 라면 끓이기 정도였다. 집에서 오빠와도 나이차가 많은 막내였기 때문에 요리담당은 엄마-아빠-오빠순이었고 나에게 차례가 오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오빠가 요리하고 나는 뒷정리 설거지나 하는 역할이었다. 자취를 한 적도 없어서 그야말로 요알못 상태로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진짜 스스로 요리를 해야 하는데 정말 막막하고 급한 마음에 매일 블로그도 찾아보고 요리법도 읽었다. 그때 가장 도움이 됐던 게 <역전! 야매요리>라는 웹툰이었다.


좀 엽기(?)적인 요리 관련 개그 웹툰이었는데 이상하게 그걸 보며 낄낄대다가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이상한 용기가 무럭무럭 솟아났다. 그렇게 조금씩 도전하고 연습했고 지금은 평범한 주부처럼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담당할 실력이 됐다.


아이들은 내가 해준 밥을 먹으며 '엄마는 언제부터 요리를 잘 했냐'고 물어보면 엄만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결혼하고 만화를 보고 배웠다고 말해줬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요리를 시작했다던 최강록 쉐프처럼 지금의 내 요리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진 않지만. 엄마처럼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연습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 얘기를 듣고 눈이 초롱초롱 해진 아이들은 '나도 나중에 어른 되면 엄마처럼 요리를 잘할 수 있겠지, 내가 직접 요리해서 엄마 맛있는 밥 해줄게'라고 약속까지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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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억하는 엄마표 집밥


지난 추석, 시댁에 내려가는 차 안에서 큰 애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집밥 안 먹고 싶어? 엄마의 엄마가 해주는 집밥."

"먹고 싶지. 근데 할머니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못 먹지."

"엄마는 아빠 부럽겠다. 아빠는 지금 가서 아빠네 엄마 집밥 먹을 수 있잖아."

"그러게. 아빠도 너도 다 부럽다. 다들 엄마 집밥 먹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대화를 마쳤는데 이게 은근히 마음에 남았나 보다. 혼자서 자꾸 곱씹게 된다.


살아생전 엄마는 엄청난 요리 전문가는 아니셨지만 본인 성격답게 멸치볶음 하나도 야무지고 맛깔나게 하셨다. 꼬막을 넣어 끓인 엄마표 김치찌개는 어디서도 못 먹어볼 시원한 국물 맛이 진짜 일품이다. 된장찌개는 된장을 풀고 처음부터 두부와 야채들을 같이 넣어 간이 푹 배도록 끓이셨다. 여름에는 꼭 오이지를 직접 절여 만들어 참기름과 깨를 넣어 무쳤고. 명절에 다른 건 안 해도 '이거 너 좋아하잖아~'하며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도라지무침을 꼭 만들어주셨다.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집에서 탕수육도 직접 튀기고, 만두도 다 같이 반죽해서 빚고, 팥빙수도 얼음을 갈아 만들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평범한 것 같지만 엄마만의 방식과 손맛이 묻어나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에게 특별한 추억의 맛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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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밥은 사랑의 언어


결국 엄마가 해주신 음식 맛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기억하고 밥상에서 나와 가깝게 그 반찬을 가까이 옮겨주시는 모습. 같은 찌개 같은 국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건더기류를 더 담아주신다던지 좋아하는 국물을 한번 더 먹을 수 있게 물어봐주시는 마음.


그 엄마의 음식과 방식, 그리고 식탁에서의 따뜻한 느낌이 나에게는 엄마표 집밥이고 엄마의 사랑으로 경험된 것이다. 내가 받은 그 사랑을 나도 모르게 내 자식에게 전달하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아이들도 늘 '엄마표 집밥'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엄마표 집밥'으로 떠올리며 추억할 메뉴가 몇 가지는 있었으면. 아니 몇 가지가 아니라 점점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맘으로 오늘 저녁 메뉴도 즐겁게 고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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