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이 느린 엄마
나처럼 기본적으로 손이 빠르지 않고 실행 전에 생각이 많아 고민하는 시간이 긴 사람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정리하기> 다. 정리해야 할 것들은 눈에 보이지만 실행할 엄두가 안 나고 막상 하려니 막막함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머릿속에 이걸 어떻게 정리하고 처리할지 혼자서 마인드맵을 그릴 시간이 필요하다. 나름의 기준에서 대략 설계가 끝나면 그 때야 비로소 움직인다.
하지만 정리하려고 시작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 1->2->3의 순서로 일을 마쳐야 하는데 1->다->H 이렇게 중간에 엉뚱한 일들이 생각나 그 일들을 처리하려다 꼬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런 정리를 아이들이 있을 때 시작하면 중간에 "엄마 이거 열어줘, 엄마 나랑 이거 하자, 엄마 나 좀 도와줘, 엄마 나 똥 다 쌌어"하며 돌발적인 요청이 끊임없이 파고든다. 마치는 시간이 늦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목표한 정리를 마치려면 되도록 아이들이 없는 낮 시간에 집중해서 모두 끝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이들의 하교와 동시에 또다시 어질러지는 집을 보며 아예 정리하고자 하는 의욕 자체를 상실해 버릴 테니까.
# 3개 정리하기 VS 100개 정리하기
나처럼 손이 느린 엄마가 한정된 시간 안에 빨리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최적화 방법은 바로 <정리할 물건 수를 줄이는 것>이다.
단순한 예시로, 책 3권을 정리하는 것과 책 100권을 정리하는 것에는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당연히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정리할 대상이 3개일 때와 100개일 때는 부담감부터 다르고 100개를 정리하지 못한 와중에 아이들이 손을 대면 100개에서 순식간에 200개, 500개 등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그래서 아이 셋임에도 불구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가급적 살림살이가 적은 게 좋다. 30평대에서 20평대로 이사오며 잔짐들을 많이 처분했다고 생각했지만 살다 보니 잠깐 신경 쓰지 않으면 금방 짐이 늘어나있다.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그나마 정리할만한 집이 된다.
# 옷, 책, 장난감 다이어트
육아 관련 물건 중에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건 크게 3가지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옷과 책과 장난감이다.
수시로 비우고 나누고 정리해서 어디에 어떤 게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상태가 돼야 한다. 어라 이런 게 있었네, 그게 어딨더라 하는 지경이면 이미 한도 초과다.
1) 옷
아이 셋 이상 특히나 동성인 경우 옷을 버리기가 어렵다. 왜냐면 형이나 언니가 입던 옷을 동생들이 물려 입을 수 있으니 바로 처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름철과 겨울철, 봄가을 상하의, 두꺼운 외투까지 쟁여두는 동안 옷장은 터져나갈 듯이 꽉 찬다. 여기에 주위에서 얻어오는 옷들도 한몫을 한다.
큰 아이가 입던 옷을 동생이 모두 물려 입지는 않는다. 아이마다 취향, 체형이 다르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행도 지난다. 어쨌든 새 옷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감이 있어서 그 상태 그대로 보존하기 어렵다. 정말 상태가 좋은 옷이나 기본 아이템들을 추린 후에는 과감히 정리하는 게 훨씬 현명하다. 헌 옷 수거 업체를 통해 정리하면 소소하게 치킨값 정도는 받을 수 있다.
2) 책
선물 받았던 자연관찰전집, 명작동화전집 그리고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매달 받아오는 크고 작은 도서들까지 점점 많아져 책장을 더 사야 할 지경까지 이른 적이 있다. 책도 옷처럼 동생들이 읽을까 처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책장 한켠에 묵혀둔다.
하지만 책도 그냥 꽂아두고 전시하면 안 되고 한 번씩 갈아주기를 해야 한다. 책이 많아진다고 책장을 또 사는 게 아니라 공간에 맞는 책장을 두고 그 사이즈에 맞는 책만큼만 관리하는 게 경험상 더 정리하기 편리했다.
화분에 식물을 키울 때도 정기적으로 비료를 갈아주며 영양분을 골고루 흡수시키듯 아이들도 종종 책을 바꿔주고 관심사에 따라 교체해 주는 게 좋다. 그래서 책은 비싼 돈을 들여 사는 것보다 당근이나 입주민 카페를 이용해서 중고책을 구하고 팔면서 순환시키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단순히 책을 많이 쟁이는 것보단 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수시로 다양한 책을 보여주기 좋았다.
3) 장난감
장난감이 가장 골치 아픈 난제인데 엄마의 뜻만으로 무조건 처분할 수 없는 물품이다. 아이와 충분히 얘기하고 다른 동생에게 준다거나 나눔을 해서 좋은 곳에 장난감이 쓰인다는 점을 설명해 확실한 동의를 구한다. 서랍에만 두고 갖고 놀지 않는 것들, 부피가 너무 많이 차지하는 것들, 짝이 안 맞고 망가진 것들, 사용시기가 지나 유치한 장난감들은 좀 더 냉정하게 엄마의 강력한 의지를 담아 정리한다.
특히 비염이 심한 아이들에게 가장 최악의 장난감은 바로 털인형들이다. 아무리 세탁기와 건조기, 햇빛 건조로 관리한다고 해도 인형 안쪽 정중앙까지는 세탁할 수 없는데 거기에 집먼지 진드기가 가장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집에 있는 인형 80%를 처분했고 각자 정말 좋아하는 인형 3~5개 정도만 남겼다.
그리고 정리한 이후 더 중요한 점은 새 장난감을 들이는 데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린 공간에 새 장난감을 채우면 또다시 정리할 이유가 되풀이될 뿐이다. 우리 집은 이제 막내가 6살이라 슬슬 장난감 정리의 시기로 보고 시간 날 때마다 짬짬이 분류 중이다. 막내의 초등학교 입학 시점을 본격적인 장난감 총 정리 및 처분의 날로 기획하고 있다.
# 쾌적하게 정리된 환경을 경험한 아이
깔끔하게 정돈된 환경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주부로서의 나에게 제일 큰 평안함을 준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쾌적하게 정리된 거실을 보며 혼자 조용히 커피를 마실 때가 찐 힐링 타임인 것처럼.
정리된 집은 엄마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생활환경이 정리되지 않고 지저분하다면 아이는 그 상태 그대로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책 한 두 개가 쌓인 곳에 장난감 몇 개 던져두기는 순식간이고 먹고 버린 과자 껍데기와 양말까지 벗어두기는 정말 쉽다.
정리된 집안 환경을 경험한 아이는 최소한 청소하고 정돈된 상태의 쾌적함과 깔끔함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렵겠지만 정리 습관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자고 일어나서 침대 이부자리 정돈하기, 양치질한 뒤 컵과 치약 제자리에 놓기, 다 먹은 식기 싱크대에 갖다 두기, 현관 들어오면서 자기가 벗은 신발 정리하기, 옷과 양말 뒤집어서 벗지 않기, 벗은 옷은 세탁기에 넣기 등등 생활 습관과 연결된 요소들을 꾸준히 몸에 익히도록 노력 중이다.
물론 아이들은 금방 까먹는다. 오늘은 잘해도 내일은 잊어버리기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래서 계속 얘기하고 반복해서 훈련시켜야 한다. 아직 갈길이 멀고, 미니멀의 ㅁ자를 따라가기도 버겁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언제까지?
스스로 지저분한 환경이 어색하도록.
정리 안 된 모습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당연한 생활 습관으로 몸에 익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