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감정 조절 능력을 기를 때까지
아이가 2명 이상인 다자녀 가정에서는 집에서 아이들이 싸워대는 광경에 익숙하다. 성별과 상관없이 고자질하고 울고 소리 지르고 뺏고 던지고 열받는다고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리는 꼬락서니를 볼 때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다 큰 성인들이 여럿 모여도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기는데 미성숙한 아이들이 모여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우리 집 아이들 정도면 사실 그리 심하게 싸우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10세, 8세, 6세의 2살 터울로 나이차가 많지 않은 자매들이다 보니 서로 정말 재밌게 잘 놀다가도 별안간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게다가 3명의 홀수라 의도치 않게 한 명이 소외되기도 해 누군가 삐치기가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짝수로 맞춰줄 의향은 당연히 없지만.
내가 봐도 솔직히 그렇게까지 울 일은 아닌데 싸워서 속상한 아이는 정말 서럽게 대성통곡을 한다. 여자 셋이서 종종 질투도 하고 서운한 것도 많고 삐칠 일도 어찌 그리 많은지. 별 것도 아닌 일에 세상이 무너질 듯 난리가 나고, 시퍼런 날이 선 것처럼 까칠하고 뾰족해진다. 엄마 1명의 사랑을 아이 3명이서 나눠가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다자녀 엄마는 혼자 도둑 제 발 저리듯 애들 보기가 안쓰럽다.
그래서인지 이럴 때마다 가장 바쁜 건 엄마다. 난 아이들 사이에서 서로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상대 아이의 마음을 열심히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기도 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지혜로운 포청천, 솔로몬 같은 판사 역할을 맡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혹시 누구 맘이 상할라 살얼음판 걷듯 조심한다. 아이 셋 각자의 마음도 살피면서 최대한 공정한 결론으로 합의할 수 있도록 혼자서 여론을 아우르느라 정신이 없다.
좀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난 기본적으로 가정의 질서를 위해 장유유서 원칙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렇기에 부모와 자녀는 친구가 될 수 없고 당연히 동등하지 않다. 맹목적인 서열화는 어리석지만 어른에 대한 예의와 지켜야 할 분명한 선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간혹 아이들이 신나게 아빠와 장난을 치며 놀다가 너무 흥분해서 아빠를 때린다는 식의 예의 없는 행동을 하거나 불쑥 버릇없는 말실수를 하게 되면 난 그 즉시 정색하고 놀이를 중단한 뒤 잘못된 부분을 짚는다.
아이들 관계 속에서도 첫째의 권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세워주는 편이다. 세 아이 모두 한 자매지만 그 안에서 나이순으로 그에 걸맞은 권위와 책임이 따른다. 기본적으로 언니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동생을 돕고 배려해야 한다. 동생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를 인정하며 자신이 어리기에 언니들의 많은 배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야 한다고 교육한다. 이 내용은 아이들끼리 싸웠을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때문에 동생이 언니에게 "야"라고 한다거나 때린다거나 말과 행동으로 함부로 하는 모습은 어리다는 핑계만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오히려 어릴수록 더 확실하게 알려주고 강하게 교육시켜야 할 만큼 자매 내의 서열은 중요하다.
나이 많은 언니라서 서열이 높다고 무조건 좋아할 것도 없다. 언니인 만큼 동생을 더 많이 이해하고 챙겨야 한다. 단순히 언니라 양보하고 언니니까 참는다기 보단 원래 힘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돕는 법칙임을 설명한다.
그래서인지 첫째는 주변 사람들이 칭찬할 정도로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고 동생들은 언니 말을 잘 따른다. 첫째가 둘째를 챙긴 것처럼 요즘엔 둘째가 막내를 이끌고 배려한다. 둘째가 큰 언니를 인정하고 따른 것처럼 막내도 둘째를 따른다. 둘째가 막내 때문에 힘들어할 때 첫째가 그런 둘째의 마음을 헤아려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기도 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이런 부분이 다자녀의 장점이자 서로 더 끈끈하게 하나로 만들어주는 선순환 구조인 셈이다.
결국 자매 싸움 해결의 주요 키는 <성숙한 감정 조절 능력과 지혜로운 표현 방법>에 달려있다고 본다. 언니와 동생의 입장에서 싸움이 날만한 순간에 자신을 조절해야 하고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할지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아이들이고 친자매여도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 속해있다. 각자 다른 인격이기에 당연히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이 오해와 문제를 풀어나갈 때 얼마큼 스스로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지, 그 감정을 지혜롭게 표현하고 처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아직은 10살 이하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도 어렵고 더군다나 누군가와 트러블이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편하게 여기는 가족 안에서 싸움이 나면 감정 표현과 말에 필터링 없이 날것 그대로 나올 때가 있다.
난 그걸 가장 경계한다. 소중한 가족 내에서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데 아이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어떤 관계를 성숙하게 맺어나갈 수 있을까 싶어서다. 아이들한테 싸움의 무해함에 대해 백번 말하는 것보다 그저 몸소 알려주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하다. 바로 엄마 아빠인 우리 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 부부는 연애 7년, 결혼 10년을 합쳐 총 17년을 알고 지냈다. 부부이고 가족이기에,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익숙하고 편하지만 그만큼 함부로 하지 않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 동갑이지만 "야"라고 부른 적은 기억에 잘 없을 만큼 손에 꼽힌다. 일부러 더 존댓말을 쓰기도 하고 같은 말을 하더라도 예쁘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가 17년에 걸쳐서 터득해 온 인간관계의 지혜를 자매 간의 싸움이 시작되려는 순간에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