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추억할 엄마표 집밥을 위해
딸들은 셋 다 식성이 다르다. 딱 한 종류만으로 정할 수는 없지만 세 명 각기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다. 첫째는 주로 고기파, 둘째는 야채과일파, 셋째는 그냥 밥파.
메인 메뉴 하나로 5인 가족 식사를 한 번에 끝내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식성이 조금씩 다르니 한 끼에 적어도 3가지 메뉴를 고려해서 밥을 차려야 한다. 매일 화려한 식단으로 차려주지는 못하고 평범한 메뉴지만 그래도 애들 한 입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에 아이들이 각자 좋아할 만한 것들, 잘 먹을만한 것들로 준비한다.
예를 들어, 첫째를 위한 제육볶음과 계란찜. 둘째를 위한 오이, 파프리카, 각종 과일류 준비. 셋째를 위한 쌀밥과 미역국, 김치, 계란프라이. 그리고 어른들이 먹고 싶은 얼큰한 메뉴가 있으면 더 추가.
힘에 부쳐서 신경을 좀 덜 쓰고 매운 국만 내오면 자기 먹을 안 매운 국 없다고 찡찡, 고기 없으면 먹을 반찬 없다고 찡찡, 계란프라이를 해도 자기는 흰자만 먹겠다고 찡찡.
그런 컴플레인을 들으면 시장이 반찬이라고 다들 쫄쫄 굶겨야 반찬투정 안 할 거라며 쌍심지를 켜지만 그래도 아이들 입맛에 맞는 메뉴를 내기 위해 매일 고민한다.
사실 결혼 전에 내가 해본 요리라곤 그냥 계란 프라이에 라면 끓이기 정도였다. 집에서 오빠와도 나이차가 많은 막내였기 때문에 요리담당은 엄마-아빠-오빠순이었고 나에게 차례가 오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오빠가 요리하고 나는 뒷정리 설거지나 하는 역할이었다. 자취를 한 적도 없어서 그야말로 요알못 상태로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진짜 스스로 요리를 해야 하는데 정말 막막하고 급한 마음에 매일 블로그도 찾아보고 요리법도 읽었다. 그때 가장 도움이 됐던 게 <역전! 야매요리>라는 웹툰이었다.
좀 엽기(?)적인 요리 관련 개그 웹툰이었는데 이상하게 그걸 보며 낄낄대다가 '그래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이상한 용기가 무럭무럭 솟아났다. 그렇게 조금씩 도전하고 연습했고 지금은 평범한 주부처럼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담당할 실력이 됐다.
아이들은 내가 해준 밥을 먹으며 '엄마는 언제부터 요리를 잘 했냐'고 물어보면 엄만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결혼하고 만화를 보고 배웠다고 말해줬다.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요리를 시작했다던 최강록 쉐프처럼 지금의 내 요리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진 않지만. 엄마처럼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연습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 얘기를 듣고 눈이 초롱초롱 해진 아이들은 '나도 나중에 어른 되면 엄마처럼 요리를 잘할 수 있겠지, 내가 직접 요리해서 엄마 맛있는 밥 해줄게'라고 약속까지 해줬다.
지난 추석, 시댁에 내려가는 차 안에서 큰 애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집밥 안 먹고 싶어? 엄마의 엄마가 해주는 집밥."
"먹고 싶지. 근데 할머니 돌아가셨으니까 이제 못 먹지."
"엄마는 아빠 부럽겠다. 아빠는 지금 가서 아빠네 엄마 집밥 먹을 수 있잖아."
"그러게. 아빠도 너도 다 부럽다. 다들 엄마 집밥 먹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대화를 마쳤는데 이게 은근히 마음에 남았나 보다. 혼자서 자꾸 곱씹게 된다.
살아생전 엄마는 엄청난 요리 전문가는 아니셨지만 본인 성격답게 멸치볶음 하나도 야무지고 맛깔나게 하셨다. 꼬막을 넣어 끓인 엄마표 김치찌개는 어디서도 못 먹어볼 시원한 국물 맛이 진짜 일품이다. 된장찌개는 된장을 풀고 처음부터 두부와 야채들을 같이 넣어 간이 푹 배도록 끓이셨다. 여름에는 꼭 오이지를 직접 절여 만들어 참기름과 깨를 넣어 무쳤고. 명절에 다른 건 안 해도 '이거 너 좋아하잖아~'하며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도라지무침을 꼭 만들어주셨다.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집에서 탕수육도 직접 튀기고, 만두도 다 같이 반죽해서 빚고, 팥빙수도 얼음을 갈아 만들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평범한 것 같지만 엄마만의 방식과 손맛이 묻어나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에게 특별한 추억의 맛으로 남았다.
결국 엄마가 해주신 음식 맛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기억하고 밥상에서 나와 가깝게 그 반찬을 가까이 옮겨주시는 모습. 같은 찌개 같은 국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건더기류를 더 담아주신다던지 좋아하는 국물을 한번 더 먹을 수 있게 물어봐주시는 마음.
그 엄마의 음식과 방식, 그리고 식탁에서의 따뜻한 느낌이 나에게는 엄마표 집밥이고 엄마의 사랑으로 경험된 것이다. 내가 받은 그 사랑을 나도 모르게 내 자식에게 전달하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아이들도 늘 '엄마표 집밥'을 먹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엄마표 집밥'으로 떠올리며 추억할 메뉴가 몇 가지는 있었으면. 아니 몇 가지가 아니라 점점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맘으로 오늘 저녁 메뉴도 즐겁게 고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