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내 평수 넓히기는 과연 나쁜가
한 유튜브 채널에 나온 부동산 전문가는 다양한 갈아타기 유형 중 가장 최악의 갈아타기는 '단지 내 대형평수로 옮기는 것'이라고 했다. 얘기를 듣자마자 혼자 속으로 뜨끔했다. 매번 부동산 어플에서 같은 단지의 40평대 이상을 체크해 매물을 보던 나를 누가 몰래 사찰이라도 한 것 같았다.
부동산을 투자의 개념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가진 자산 내에서 가장 좋은 상급지의 매물을 고르는 게 최우선이라면, 같은 단지 내에서의 평수 넓히기는 급지 올리기가 아닌 그저 평행 이동일뿐이다. 평수가 넓어져 삶의 질은 올라갈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평행 이동에서 지출되는 세금, 복비, 이사비 등등을 비용적 측면에서 따져볼 때 급지 이동은 없었으니 아쉬운 선택이라는 말이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갭투자나 소형 평형을 선택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상급지에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 치는 걸 목표로 하는 것이 수익성을 내는 부동산 투자자로서의 자세였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상급지로 가장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현재 거주하는 20평대에서 아이 셋을 키우기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진 않다. 수납과 정리를 좀 더 바지런히 하고 물건들을 최대한 늘어뜨려 놓지 않는다는 기조를 확실히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전에 살던 30평대 집에서는 1살, 3살, 5살 아이들 키우랴 정리가 안돼 오히려 지금보다 더 답답하고 정신없어 보이기도 했으니까 무조건 평수의 문제라고도 볼 수는 없다.
20평 대지만 나름 구조가 잘 나온 타워형에 거실 사이즈가 평수 대비 넉넉한 편이고 방 3개를 부부침실, 아이들 공부방, 아이들 자는 방 이렇게 용도별 3가지로 사용 중이다. 대신 방들이 작아 공부방은 책상과 책장으로, 자는 방은 이층침대와 수납침대까지 이미 꽉 들어 찬 상태다. 수시로 옷정리와 책정리를 하며 주어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럴 때마다 방이 좀 컸더라면 이렇게 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첫째 아이가 초등 고학년으로 접어들며 점점 독립적인 공간을 갖기 원하면서 계속 숙제처럼 미뤄왔던 평수 넓혀 이사 가기에 대한 이슈가 자주 떠올랐다. 여기에 신랑이 개인 사업을 시작하며 집에서 데스크 작업하는 날도 많아지다 보니 안방 한켠이 아니라 아예 독립적인 홈오피스 공간인 서재를 마련해 주는 게 좋지 싶었다.
엄마 우리도 방 4개짜리로 가자.
나도 친구들처럼 내 방이 있으면 좋겠어.
드레스룸이 좀 더 넓으면 우리 옷도 애들 옷도 수납 정리하기 편할 텐데.
부부침실, 신랑서재, 첫째 방, 둘째 셋째 방 딱 이렇게만 되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같은 단지 내 40평대 매물을 보느라 들락날락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하고 둘만 남을 때에야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한참 복작거리는 5인 가족의 구성일 때 넓은 40평대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실거주 측면에서 특히 아이를 키우기에 100%는 아니지만 대체로 현재 환경에 만족하는 편이다. 아니 만족이라기보다 익숙해졌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대표적인 학군지들만큼 학원가가 다양하다거나 역세권, 슬세권 등의 호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작은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바로 갈 수 있는 학교와 유치원이 있고 유해시설 없이 안전하게 오갈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가 큰 몫을 한다.
입주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봐왔던 이웃과 친구들이니 아이들도 나도 이미 익숙하고 편하다 느낀다. 여기에 집안에서 버튼만 누르면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는 마법을 부리는 최첨단의 깨끗한 신축 아파트의 편리함 또한 뒤로 하기는 쉽지 않겠지.
투자의 가치로 본다면 구축 아파트로 가더라도, 평수를 이대로 유지하더라도 상급지로 옮겨가는 것이 맞겠지만 현재 누리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엔 아주 큰 결심이 따른다. 대출을 더 일으켜야 할 텐데 그만큼 더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한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이미 익숙해진 환경을 버리고 새로 적응해야 하는 문제들부터 해서 여러 가지 고려할 것들을 떠올리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키니 그냥 여기서 딱 평수만 넓어지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다 불현듯 5년 전 마곡의 교훈이 떠오른다. 충분히 당첨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놓쳐버린 마곡 9단지는 현재 이미 분양가보다 6억 이상을 웃돌며 신나게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제2의 분당이 될 거라는 찬사를 받으며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천지개벽한 마곡을 바라볼 때 씁쓸하면서도 반면교사 삼아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단순히 실거주의 안락함과 현실적으로 보이는 부분만 안일하게 판단해 선택한다면 나는 또 몇 년 뒤 제2의 마곡의 교훈을 되새기자며 피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그래, 반드시 상급지로 이동해야 한다. 사촌이 땅을 샀다고 배 아파하지 말고 사촌이 어떤 땅을 샀는지, 나도 그런 땅을 살 수 있는지, 그런 땅은 다른 곳 어디에 있는지 찾고 찾아 실행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월급을 쪼개 저축하고 주식에 투자하여 사팔사팔하는 수고와 노력에 비해 좋은 부동산은 꽤 우직하게 자기 일을 묵묵히 감당하며 좋은 수익성을 보여주니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도 하지만 익숙함을 버리고 낯선 환경으로 이동하기에는 큰 거부감과 부담감을 넘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보통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고 본다. 지금 집에 엄청난 하자와 문제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이사 가야 하지 않는 이상 내가 굳이 거주지를 옮기려면 아주 강력한 동기와 의지가 필요하다.
결국 돌고 돌아 나의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나는 집을 그리고 부동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부를 늘리고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투자적인 관점으로 볼 것인가, 실거주에서 누리는 안정감과 편리함을 중요시 여기는 거주적인 관점으로 볼 것인가. 나는 왜 갈아타려고 하는지, 왜 평수를 넓히려고 하는지,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실거주와 투자 그 사이 어디에서 머뭇거리는 게 딱 초보 1 주택자의 깜냥이다. 점점 더 옥죄어오는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높은 물가, 은퇴 후 미래자산의 가치, 아이들 교육환경 등등을 생각하며 밤새 고민만 늘어간다.
이런 부단한 고민과 망설임의 밤 속에서 실거주와 투자 둘 중 나는 과연 어떤 결론을 내는 1 주택자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