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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가려던 갈아타기 사다리가 끊어졌다

1주택자인 저는 이 게임이 처음입니다

by 퍼플레이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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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여기 팔고 신축 분양받은 데 가려고 그러지


무주택자에서 1주택자가 되면 집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내 집을 마련할 땐 ‘여기서 10년, 20년 잘 살아보자’고 마음을 먹지만, 등기를 치고 가격의 오르내림을 겪다 보면 언젠가 상급지로 갈아타야 한다는 다음 목표가 생긴다.


전세살이를 끝내고 첫 매수를 알아볼 때 동네엔 매물이 꽤 많았다. 어떻게든 팔아보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우리 신랑을 보고 “아들 같네” 하며 그 자리에서 몇 천을 깎아준다는 쿨한 할머니도 있었다. 정 많은 분이시구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았다.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둔 집주인이라 어떻게든 기존 집을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걸. 그 집주인뿐만 아니라 꽤 많은 매물들이 같은 이유 때문에 집을 내놨다.


그때 매수자인 나의 선택지는 둘이었다.

1번. 오, 매수자 우위네. 더 깎자.

2번. 다들 새 아파트로 간다는데, 나도 구축 대신 신축으로 가야지.


나는 2번을 택했다. 정부 대출과 저리 혜택을 총동원해 당시 감당 가능한 최대치를 뽑았다. 후회는 없다. 아파트 매매 대신 분양권에 ‘프리미엄(피)’를 얹어 신축 입주를 택했고, 그 선택이 당시의 나에겐 최선이었다.

그 과정에서 부동산 사장님이 하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휴, 너무 생각 많이 하면 집 못 사요. 몇 년 살다가 옆 단지 새 분양 나오면 또 갈아타면 되죠. 다들 그렇게 돈 불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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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개벽한 마곡을 염탐하다


1주택자가 되고 전세 불안이 사라지자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중간중간 황금 같은 기회도 있었지만, 매번 망설이다 놓쳤다. 주변에 곧 시작한다던 새 아파트 대단지 분양은 소문만 무성했다. 계획된 호재는 많았지만 실행 전까지는 여전히 안갯속일 뿐이었다.


작년 겨울, 우연히 다시 찾은 마곡은 충격이었다. 예전엔 발산역 NC백화점 쪽이 그나마 활기 있었는데, 5호선 마곡역과 9호선 마곡나루역을 중심으로 도시의 결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대기업 빌딩 숲 사이, 사원증 목걸이를 찬 젊은 직장인들. 여의도, 광화문, 강남의 바이브가 겹쳐 보였다. “여기다.” 그때부터 손품·발품을 집중적으로 팔았다.


마곡–마포–여의도로 확장하는 꿈을 그려봤다. 아이들 학군을 고려해 우장산과 목동도 살폈지만, 내가 원하는 생활 동선과 결이 가장 비슷한 곳은 마곡이었다. 마곡 엠밸리 단지가 핵심이었고, 간혹 대형 평형이 국평과 비슷한 급매로 나오기도 했다. 물론 임대 이슈가 거론되곤 했지만, 평지, 쾌적성, 초등학교 중학교 도보권이라는 점은 매력적이었다.


특히 5호선 마곡역 인근 서울공진초–마곡하늬중 라인을 끼고 있는 10, 12, 13,14, 15단지 쪽을 보니 그림이 나왔다. 학원가, 역세권, 공원 모두 생활 반경 안에 있었다. 다자녀 가정이라 1층이나 저층도 오히려 플러스였고, 평균가보다 저렴한 매물에도 마음이 열렸다. 그 동네에서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오가는 모습도 자연스레 그려졌다.


만약 마곡역 엠밸리 라인이 자금상 어렵다면 뒤쪽 수명산파크도 후보였다.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 연결이 안 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지만, 나머지는 수긍 가능했다. 그렇게 엠밸리 30평대 1층과 20평대 로열층을 축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엠밸리와 수명산파크를 저울질하며 혼자 순위놀이를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오만한 시간 때우기였다.



# 갈아타기 시장에서는 느린 결정이 가장 비싼 실수다


나는 원래 결정이 느린 편이다. 그런데 부동산의 갈아타기 시장에선 그게 치명적이었다. 내가 가진 집에 대한 욕망과 실행 가능한 자원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끝냈다면, 들어갈 타이밍엔 피도 눈물도 없이 즉시 실행했어야 했다. 미련하게 재고 또 재다가 놓쳤다.


그 사이 2025년, 계엄–탄핵–대선–부동산 급등–초강세 정책이라는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시간은 있었지만, 긴박함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문정부 시절을 겪어 본 이들은 이미 체득한 흐름이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저 ‘내 집이 있다는 안정감’에만 머물렀다.


특히 이번 10월 정책 변화로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 규제 강화, 대출 한도 축소가 오면서 서울 갈아타기의 사다리가 뚝 끊겼다. 갈 수 있을 때 최대 레버리지로 상급지를 뽑아야 한다는 부동산 투자의 정석(물론 5억에서 50억으로는 못 가더라도 5억에서 10억 언저리로의 이동은 가능했던)이 막혔다.


예를 들어, 10억 아파트를 살 때 자기 자본 3억 + 대출 7억의 단순 계산이 과거엔 가능해 보였다. 7억 아파트는 자기 자본 3억 + 대출 4억으로 입주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 LTV 축소와 가격구간별 한도 제한이 겹치며 7억대에선 2억대 초반 대출 정도만 가능해졌기 때문에 기존 보유현금 3억에 2억을 더한 최소 5억이라는 자본이 필요해졌다. 실입주를 염두에 둔 갭투자도 막히고 각종 요건은 더 까다로워졌다. 많은 이들이 예견했고 경고했던 바다.



# 서울로 가는 갈아타기 사다리가 끊긴 시점에서


문정부 시절을 겪어 본 이들이 느꼈던 냉기를 지금 시장에서 똑같이 본다. 이번엔 나도 이해한다. "나는 이미 이 게임을 해봤어요!!!"라고 울부짖던 사람들의 외침을.


자기 집을 매도하고 서울 집을 매수하려던 사람, 서울 내 상급지로 옮기려던 사람들에겐 이번 변화가 진짜 재앙일 수 있다. 갈아타기의 컨베이어벨트가 멈추자, 부의 사다리가 동시에 끊겼다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나처럼 이런 혼란을 처음 겪은 사람들은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서울 입성이 막혔다면 자산을 키우는 다른 루트를 찾아 다음 타이밍을 찾으면 된다. 우리 부부도 집에 대한 관점을 다시 맞춰보려 한다. 아이들의 학교 시점, 부부의 사업과 학업 계획들, 노후의 타이밍... 이 큰 인생의 그림 위에 우리의 선택을 지혜롭게 배치해보려고 한다.


서울로 향하던 갈아타기 사다리가 끊긴 지금,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계산기를 꺼냈다. 숫자만이 아니라 인생의 시점을 계산하기 위해서다. 아이들, 커리어, 노후. 돈의 흐름이 아니라 삶의 타이밍을 맞추는 일이 앞으로의 새로운 투자 포인트다.


그리고 다음 사이클이 왔을땐 나도 조금은 시크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것 같다.

"저는 이 게임을 이미 해봤어요."


닭살스럽지만 부동산은 결국, ‘타이밍의 예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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