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쳤으면 좋겠다.
우울은 매일 오는 가랑비 같다. 쏟아지는 폭우일 때도 있지만, 매일 매일 쉬지 않고 내리는 가랑비. 그 가랑비에 삶이 축축해지고 무거워지는 것 같다. 그저 잠깐 가볍게 오고 지나갈 가랑비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머리 위로는 비구름이 떠나지 않고 자리 잡고 있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삶들이지. 수많은 오해와 편견들 속에 살아가는 삶이란 말이야. 게으른 사람, 성실하지 않은 사람, 어딘가 늘 아픈 사람, 잠이 많은 사람 같은 사람들의 속단에 갇혀 정말 난 어떤 사람일까 알 수 없게 되는 시간들. 그렇게 우리들의 자아는 타인의 결정 속에서 흩어져 가고 있다.
현실감각이 많이 무뎌진 때가 있었다. 몇 월 며칠인지, 아침인지 밤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들리는 소리인지 환청인지 혼란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병원에서 선생님께서는 날 안심시키면서 얘기해주셨다. ‘자아’는 현실을 인지하는 역할도 한다고. 지금의 내가 혼란을 겪는 건 자아가 아주 작기 때문이라고.
내가 나를 모르는 단계를 지나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조차 의심하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고민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이 결정하고 말하는 모습을 나라고 생각해왔다.
사람들은 줄곧 쉽게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쉽게 정의한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사실로 만들고 규정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실과 규정 속에 나는 다른 이들이 붙여놓은 종잇조각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조각 중, 내가 붙여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붙여진 조각들에 내 모든 힘을 쏟아 매달렸다. 그게 나라고 믿지 않으면 진짜 내 모습을 알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타인이 쉽게 정의해놓은 것들에게 집착하고 상처받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뱉어놓은 말들을 쉽게 잊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서른이 다다른 지금에서야 다른 사람들이 붙여놓은 너덜너덜한 종잇조각 같은 내 모습이 보였다. 어떤 것들은 떨어지고 어떤 조각들은 크게 흔적이 남았고 그중 일부는 아름답게 남아 있기도 했다.
어쩌면 하나의 완성된 그림 같은 인생을 바라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살면서 모두가 그런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것도, 남들에게 붙여진 조각 여러 개쯤은 다들 갖고 사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동경했던 이들은 사람들이 붙여준 아름다운 조각들을 빛내면서 살고 있다는 것도.
어떤 조각은 과감하게 뜯어낼 줄도 알고 어떤 조각은 품고 드러내야 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게 ‘나’ 자신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일이니까. 그때야 비로소 자아가 머리를 들고 피어나며, 해가 나지는 않아도 가랑비가 내리던 먹구름에서 가랑비가 서서히 그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