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
나만 바라봐주길 원하는 것. 항시 내 옆에서 나를 지켜봐 주고 내 기분을 알아봐 주길 원하는 것. 사실, 나를 사랑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것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20살 때부터 연애를 끊이지 않고 해 왔다. 그들을 좋아해서도 있었지만 내 곁에 누군가 나를 지킨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외로움, 나의 우울 안에서 그 모습조차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던 모든 이들의 말을 굳게 믿었다. 결국 그 사람들은 나의 그 모습으로 인해 지쳐 떠나버리곤 했다.
나의 무심함과 양극성장애 문제로 인해 상대방을 힘들게 한 경험도 있었거니와 우울증과 여러 가지 정신질환을 가진 나와 연애하는 것은 보통 연애와는 더 많은 수고를 요구했을 것이다. 더 많은 섬세함이 필요했고 더 많은 관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난 더 사랑받기를 원했고 더 많은 표현을 갈구했다. 그게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집착이라는 이름을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집착이었다. 그저 내 우울감을 채우기 위한, 그것을 잠재우기 위한 집착. 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어리숙한 사랑에서 좀 더 성숙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마음먹었지만 정작 내가 마음을 주기 시작한 사람에게 그런 조절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주는 일은 나의 전부를 주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그렇게 의심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잠깐의 사랑받는 기분에 빠져 나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올인했다. 그것이 내 삶을 얼마나 무너뜨릴지 알지 못한 채.
결국, 난 애인의 유무로 인해 삶이 무너졌다가도 아름다워졌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받는 일이란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지금에서야 나는 어렸을 때 했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할 것이라고 자부했지만 나는 아직도 집착하고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그런 사랑의 방법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많은 충격을 받았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나는 성숙해졌고,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나는 나의 우울을 이용해 애인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자주 했고, 잦은 자해로 인해 연락이 부재하게 되면 애인은 불안해하기 일쑤였다. 애인은 나의 안부가 아닌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무거운 마음을 가져야 했다. 반대로 애인이 연락이 안 될 때 나는 미친 듯이 불안해했고, 도가 지나치게 걱정을 했으며, 나를 떠날 것이라는 확신을 해버리곤 했다.
우울증 환자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결핍되어 있는 그 무언가? 아니면 채워지면 안심되고 더 채워 지길 바라는 집착이 되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남들처럼 평범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난 여전히 그 고민에 사로잡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이 자리에 머물고 있다. 사실은, 두렵다. 내가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줬을 때, 사람에게 집착하고 사랑을 갈구하게 될까 봐. 그런 나 자신을 보는 일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이 자리에 머물러 있다. 성숙하게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난 여전히 그 고민에서 해답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