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정착하기 1

by 하온

처음 병원에 가게 된 나이는 20살이었다. 20살이 되자마자 집과 가장 가까운 정신의학과를 내원했다.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묘한 공기와 민트색 벽지 그리고 작은 안내 데스크가 기억난다. 간호사는 내 신분증을 보고 부모님을 모셔 오라고 말씀하셨다. (굳이 성인인데 왜 부모님을 모셔 와야지? 라고, 생각했다) 퇴근하고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와달라고 말했다. 엄마가 오기 전까지 몇 장의 검사지를 체크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설문지에 체크하고 있었고, 엄마가 병원으로 들어왔다.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에 엄마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엄마는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검사지를 끝내고 엄마가 오고 나서야 나는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남자 선생님이었다. 무심하게 설문지에 점수를 계산하고는 말씀하셨다. “우울증이 심하고 공황장애도 아주 심한 편 입니다. 강박도 조금 있는 것 같고 불안증세도 있네요” 아무렇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서?’라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는 선생님의 말씀을 끊고 얘기했다. “어렸을 적 있었던 일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가요? 완치가 가능한가요?” “정확한 이유를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조금 더 멀리 지켜봐야 하는 병입니다. 3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엄마는 몇 가지의 질문을 더 던졌지만 난 그저 가만히 앉아 병원 창문이 까맣게 변해버린 모습만 한참 쳐다봤다. (병원 진료실에서 창문을 바라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다.)


처음으로 정신과 약이라는 것을 처방받았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은 약국에서 살 수 없고 병원에서만 받을 수 있다. 건네받은 약 봉투에는 정신과라고 쓰여있지 않았다. 병원 이름 옆에는 의원이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아직도 많은 병원이 정신의학과라고 적힌 약봉투를 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배려해 주는 것일까. 우리는 왜 숨겨야 하는 것일까? 왜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걸까? 아직도 많은 사람의 편견이 남아있다는 증거겠지. 그 많은 편견을 견딜 바에 차라리 숨기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여기까지가 처음으로 병원에 갔었던 기억이다. 사실 그 이후로는 엄마와 무슨 말을 하며 집까지 갔는지 그날 저녁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난 그 병원을 다시 가지 않았고, 그 날 내가 듣고싶었던 말은 "저녁은 먹었니?" 였다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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