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정착하기 2

by 하온

나에게 맞는 병원에 정착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람마다 각자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상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약 처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병원마다, 그리고 선생님마다 진료하는 스타일은 다르다. 직접 방문해 보지 않는 이상 그 병원이 나와 맞는 병원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병원을 옮기는 일은 쉬운가? 정신의학과를 처음 방문하면 꼭 검사지를 작성해야 한다. 나도 똑같은 검사지를 여러 번 작성했었다. 원래 내원하던 병원에서 의사 소견서도 받아야 하고 먹던 약도 체크해서 내원해야 한다. 그렇다고 바로 진료를 볼 수도 없다. 요즘 정신의학과 진료예약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만큼 힘들다. 진료를 보려면 한 달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학병원은 더더욱 그렇다) 이런 복잡한 절차가 있으니 다니는 병원에 계속 내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고, 병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선생님과 상의 후 꼭 다른 병원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저런 절차를 거치면서 병원을 많이 옮겼던 것 같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명하고 큰 병원도 가보고, 대학병원에 있는 정신의학과도 가봤다. 그리고 그사이 병원에 가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당연히 단약을 하게 된다. 먹던 약을 갑자기 끊게 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일어나는데 나는 그것이 부작용인지도 모르고 그저 몸이 약한 사람으로 생각해 버렸다. 그래서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됐다. 그리고 26살에 직장과 가까운 병원을 우연히 가게 되었다. 일하던 중 갑자기 숨이 막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긴장감 때문에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다. 지도 앱을 켜서 가장 가까운 정신의학과를 검색한 후, 점심시간을 사용해 병원을 내원했다.


다른 병원과 다르게 선생님께서는 정말 섬세하게 나의 상태를 진단해 주셨고, 처방하는 약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면서 용량을 조절해 주셨다. 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시작으로 부작용이었던 졸음이 사라졌다. 직장을 그만두고 폐쇄병동에 입원하기 전까지 나는 이 병원에 계속 내원했다. 폐쇄병동에 입원할 만큼 상태가 심각했음에도 처음으로 나와 맞는 병원을 찾은 게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6년이라는 시간을 돌고 돌아 나와 맞는 병원을 찾은 것이다. 그만큼 병원에 정착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 힘들었어도 그 병원 대기실에 앉아서 창문을 멍하게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병원에 꾸준히 내원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병원도 나의 종착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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