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정착하기 마지막
내가 지금 내원하고 있는 병원은 내가 살면서 가장 오래, 꾸준히 다니고 있는 병원이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면서 병원 걱정을 제일 먼저 했다. 처방받은 약은 떨어져 가고 있었고, 나의 마음도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무작정 가까운 병원으로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후기도 찾아보고, 사이트도 보면서 병원을 결정했다. 그만큼 나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그렇게 선택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하려고 했으나, 첫 진료는 3주 후에나 예약할 수 있다는 간호사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제일 빠른 날과 시간으로 예약을 잡고 초조한 3주를 보냈다.
유난히 길었던 3주가 지나 병원을 내원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사람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작은 동네에 새로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원이라 그런지 대기실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처음 방문하는 병원이었지만 전에 받았던 선생님의 진단서와 처방전을 드렸고 병원에서는 간단한 테스트만 진행하자고 하셨다. 난 늘 종이로만 하던 테스트를 아이패드 앱을 통해 진행했다. (신세계였다) 여러 가지 문항들을 체크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중간 점검을 하게 된다. 처음 내원했을 때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상태를 비교하기 위함이었다. 간단한 테스트를 끝내고 내 이름이 불렸다. 처음 들어간 진료실,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90도 인사로 날 반기셨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항상 조용하고 차분한 선생님들만 만나왔었는데 이번에 만난 선생님은 환하고 밝게 인사하며 맞아주셨다.
사실, 많이 당황했다. 낯을 워낙 가리는 성격이기도 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는 나의 상태를 보시고 아주 힘들었겠다며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물어봐 주셨다.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지, 유튜브를 볼 때 가장 자주 보는 채널이 무엇인지, 여행을 좋아하는지, 더 선호하는 장소가 있는지 등등 선생님은 검사지로 나타난 나보다 내가 말해주는 나 자신을 집중해 주셨다. 신기했던 것은 내가 하는 얘기에 대부분을 선생님도 알고 계시고(특히 연예인에 대한 부분이 더 놀라웠다) 심지어 진료실에 있는 컴퓨터로 유튜브를 틀어 내가 보는 채널을 정독하셨다. 왜인지 이곳은 다른 병원과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만의 병원 선택 기준이 있다면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내가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시는 곳이다. 아무리 선생님과 나 단둘이 있는 진료실이라도 내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를 뱉어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병원에서조차 솔직하지 못하면 병은 호전되지 않는다. 선생님에게는 꼭 있었던 일들과 생각들을 솔직하게 얘기하자. 두서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집중해 주실 것이다.
그렇게 작년부터 지금까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병원에 있으면서 나는 병원에 가는 토요일이 제일 기다려진다.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병원 앱에 적어놓고 선생님과 대화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유일한 탈출구 같은 기분이다. 깔끔하고 넓은 진료실 그리고 외향적인 성격을 갖고 계신 선생님과 길게 늘어진 창문. 그 밖으로는 한눈에 날씨를 알아볼 수 있다. 때론 비가 내리고 눈이 흩날리고 이젠 밝은 햇살이 진료실로 들어온다. 나는 그렇게 이번 주 토요일에도 병원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