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로 영화보기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배우들도 친숙하고 투닥거리다가 가까워지고 정들고 연애하는 설정도 친숙하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무거운 영화 보기 싫을 때 부담 없이 보기에 딱 좋다. 근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음..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떡해야 하나. 그런 의문이 남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명예훼손 행위가 다양하게 나온다. 말로 전달하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전달하기도 하고 사실도 있고 허위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행위를 많이 하고 있는데 어떤 점을 조심하면 죄가 되지 않는지 알아보자.
* 이하 스포 있음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여자 주인공 선영(공효진)은 TV광고 쪽에서 일을 하다가 광고 기획을 하는 작은 회사로 이직을 하고, 남자 주인공 재훈(김래원)은 선영이 이직한 회사에서 선영의 상사인데 실연을 당해 폐인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영과 재훈은 이직 첫날부터 부딪히고 계속 오해가 생기지만 결국은 오해가 풀리면서 서로 연애를 한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유형 1
선영은 이직하고 첫 출근날 아침에 바람을 펴서 헤어진 전 애인의 차를 타고 와서 회사 주차장에 내린다. 전 애인이 차에 안 타면 소리치겠다고 해서 선영이 더 이상의 귀찮음을 방지하려고 전 애인 차를 타고 출근한 것이다(하지만 협박해서 차에 강제로 태우는 행위도 당연히 형사적으로 처벌될 수 있다). 선영이 주차장에서 내려 이게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들어가려고 하자 전 애인이 뒤에서 소리친다.
"맞바람 피웠으면 퉁 친거 아냐!"
전 애인의 행동은 명예훼손일까. 이것은 무슨 말을 했는지에 따라 다르다. 맞바람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회 일반의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명예훼손이란 사람의 외적 명예를 침해하는 것인데, 맞바람을 피웠다는 평가가 외적 명예를 침해하여 내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인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만약 '상간녀, 불륜녀, 유부녀랑 만나고 다닌다' 같은 내용이라면 명예훼손이 된다. 이 유형은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따라 명예훼손이냐 아니냐가 결정되고, 출근시간대의 회사 주차장이라면 다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 공연성은 쉽게 인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차장 같은데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얼핏 생각할 때 너의 외적 명예를 침해할 것 같은 말, 쉽게 생각해서 입장 바꿔 나라면 창피하고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말은 크게 말하면 안 된다. 그건 둘이서 조용히.
유형 2.
마침 그 시간대에 선영의 상사인 재훈도 출근 중이었고 전 애인이 소리치는 내용을 들었다. 그리고 재훈은 이 내용을 회사 동료인 병철한테 밥을 먹으면서 말한다(일단 선영에 대한 전 애인의 말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전제한다). 이 유형이 일상에서는 가장 많다. 우리는 항상 친구나 동료와 대화를 하지 않는가. 그 대화의 내용이 항상 남에 대한 칭찬이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결국에는 험담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거 알고 보면 다 명예훼손이 문제 될 수 있다.
일단 우리는 친구나 동료를 믿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법 앞으로 가면 친구나 동료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전파가능성이 있는 관계라고 판단받는다. 즉, 언제든지 친구나 동료는 내 말을 다른 사람한테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법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는 왜 거의 없을까.
그건 친구나 동료가 그 말을 전달하지 않았거나, 전달해도 당사자한테까지는 안 갔거나, 당사자한테 가서 사달이 났지만 내 입에서 그 말이 퍼져나갔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굴 보고 직접 대화를 할 때마다 녹음을 하지도 않고 실제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친구나 동료 1인한테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을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공연성이 인정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참고로 선영도 엄마한테 재훈에 대한 험담을 했는데 엄마는 친구나 동료와 엄연히 다르다. 엄마한테 하는 말은 원칙적으로 공연성이 없다(엄마가 그걸 어디다가 퍼뜨리시겠는가).
유형 3.
선영이 이직한 이유는 이전 직장에서 상사를 꼬드겨 불륜을 저질렀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전 직장에 연락해서 선영에 대해 소문을 캐묻고 다닌 현재 회사의 여직원과 그 내용을 현재 회사의 단체 카카오톡 방에 올려서 선영한테 들킨 여직원이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처벌까지 가는 경우는 대부분 이 유형이다. 유형 2. 는 증거가 없어서 결국 고소까지 못 가는 경우가 많은데, 유형 3. 은 카카오톡이나 SNS에 버젓이 증거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것을 모조리 캡처 해서 고소한다. 그래서 실제 법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는 이 유형이다. 당연히 명예훼손죄가 되고 처벌받는다.
게다가 말로 하는 행위보다 인터넷을 이용한 명예훼손은 형법이 아닌 특별법인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되어 가중처벌된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행위는 사실을 적시하든 허위사실을 적시하든 비방의 목적을 요구하는데, 대부분 명예훼손이 되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면 비방의 목적은 있는 것으로 본다. 특별히 공익목적으로 한 행동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비방목적은 인정된다. 영화에서도 선영에 대한 소문을 캐묻고 다니고 단체 카카오톡 방에 그 내용을 올린 여직원들의 행동을 공익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 행위는 인터넷의 강한 전파력, 광범위한 피해범위, 피해회복의 어려움 때문에 피해자의 인격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회복도 어렵다. 완전한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허위사실뿐만 아니라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도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라면 처벌을 하고 있는데, 사실적시 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과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실제 헌법재판소도 과거에는 7 대 2로 합헌 결정을 했지만 최근에는 합헌 5 위헌 4로 합헌 결정을 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근소하다. 간통죄나 낙태죄처럼 언젠가는 위헌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현재는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면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과 관련해서 인터넷에 식당이나 물건의 후기를 올린 행위에 대해서 명예훼손 고소 사건이 굉장히 많고, 사회적으로도 문제 되는데, 이 내용은 이것이 문제 되는 영화가 나오면 그때 다뤄보기로.
<가장 보통의 연애> & 유형별 명예훼손 이것만 조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