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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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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란스러워 Jan 12. 2023

반려동물이 주는 것

돌틈에 낀 새끼 구피 구출기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키운다. 그들은 반려동물을 키우지만, 사실은 반려동물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가장 많이 키우는 건 강아지와 고양이일 것이다. 나도 동물을 좋아해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개는 아파트에서 키울 자신이 없다. 매일 산책시켜줘야 하고 응가를 치워줘야 하는 문제가 가장 컸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강아지가 똥을 얼마나 싸며 강아지 똥 냄새가 어떤지 잘 알고 있다. 물론 아파트에서 대부분 강아지들은 배변 훈련이 잘 되어 잘 가린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 어릴 적 장마철에 마당가에 있던 개집에서 나던 그 개똥 냄새는 잊히지 않는다. 더구나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보니 산책시키다가 반려견이 응가를 하기라도 하면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응가를 주워 비닐에 담아서 치우는 게 아닌가. 아무리 강아지를 좋아해도 그건 자신 없었다.  





그래서 난 마당 있는 집에서 살 때 큰 개를 키우는 건 로망이지만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건 포기했다. 고양이는 산책시킬 필요가 없고, 비교적 응가 뒤처리도 깔끔한 편이라 잠시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운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임시보호였다.


동네에 길고양이가 있었는데 적절한 입양자가 생길 때까지 우리가 임보를 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괜찮으면 우리도 정식 입양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평소 비염과 아토피 증상이 있던 초등학생 아들 녀석의 피부에 심한 발진이 생겼다. 가려우니까 피가 날 때까지 긁었고, 딱지가 생기고 곪고를 반복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고양이를 키우지 말 것을 권한다. 알레르기가 너무 심하다고 했다.  



우리는 반려동물 키우기는 어렵겠다 싶어 포기했다. 그래도 집에서 무언가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던 중에 회사 동료가 구피라는 열대어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키우고 있는데 꽤나 예뻐서 '물멍'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진 몇 장을 보여줬는데 구피라는 물고기가 예쁘기도 했고, 잘 꾸며 놓은 어항도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구피를 키우기 시작했다. 구피는 열대어 중 하나다. 종에 따라 색깔이나 모양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많이 키우는 어종이다. 사람들은 물고기 키우는 일을 '물생활'한다고 표현한다. 나도 물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구피 중에서 emb라는 종 두 쌍을 입양했다. 암컷 두 마리가 임신 중이었다. 구피는 한번 임신하면 세 번 새끼를 낳는다. 난태성 어종이라고 해서 알을 낳는 게 아니라 배속에서 알이 부화하면서 새끼로 태어난다.  


구피 출산 순간


집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암컷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다. 25마리 정도 낳았다. 작디작은 녀석이 그렇게 많은 새끼를 낳는 게 신기했다. 어릴 때 냇가에서 많이 보던 송사리 보다 작은 새끼들이 돌아다니걸 보고 있노라니 생명탄생의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물생활을 하다 보면 어항을 많이 쳐다보게 된다. 소위 말하는 '물멍'이다.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거인이 되어 작은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작은 생명들이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고 서로 싸울 듯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세상사를 잊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제도 여느 날과 같이 퇴근 후에 새끼들이 살고 있는 어항을 바라보있는데 바닥재 밑에 돌틈에 새끼 한 마리가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돌다가 틈에 들어간 거 같은데 출구를 찾지 못해 끼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났다. 마치 사고 치다 걸린 강아지 눈을 보는 느낌이었다. 너무 작고 여린 녀석이라 행여 다치기라도 할까 봐 얼른 스포이드로 구해주었다. 다행히 녀석은 다친 곳이 없는지 나와서 잘 헤엄쳐 다녔다.

 

돌틈에 낀 아기 구피


돌틈에 낀 새끼 구피를 보고 깜짝 놀라서 조심스럽게 구출해 주고 잘 헤엄쳐 다니는 녀석을 보고 웃음 짓는 내 모습을 보며 이게 반려 동물이 주는 행복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긴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누군가를 돌보거나 베풀 때 더 큰 기쁨을 누린다. 무언가를 받으면 좋긴 하지만 나도 베풀어야 한다는 부담이 남는 반면에 먼저 베풀면 뿌듯함과 기쁨만이 남는다. 사람들이 반려동물로 부터 얻는 건 그런 게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돌본다. 거의 조건이 없다. 반려동물로 부터 무얼 원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좋으니까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어 버린 세상이다. 사람들은 사람 사이에 생긴 벽에서 얻은 상처와 우울감을 반려동물을 돌보며 치유한다. 반려동물이 사람에게 생긴 몸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내가 키운다고 생각하는 이 작은 생명체도 사실은 나의 마음을 키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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