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미니멀리즘 250113
머릿속에 떠 다니는 문장들을 갈무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양털 깎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양털을 주기적으로 깎지 않으면 스스로의 털 무게에 눌려 잘 움직이지 못하는 양처럼, 꺼내놓고 싶은 말들을 품고만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글쓰기는 조금 번거롭고 품이 들긴 해도, 다 쓰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일이다.
양털을 정갈히 깎아낸 양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깎아낸 양털 같은 문장들을 차곡차곡 엮어 완성되는 글 한 벌도.
'그때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지었지.'
글쓰기는 이렇게 과거의 나를 살펴볼 수 있는 나름의 취미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노트에만 적어두었던 사랑하는 나의 글들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옷 한 벌쯤 되는 작은 온기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고 싶었다.
겨울 옷장을 정리하다 양모로 만들어진 옷 관리법을 찾던 중, 생각보다 낯선 사실들을 마주했다.
흥미롭게도 원래 야생의 양은 스스로 털갈이를 한다. 우리에게 흔한, '털을 깎아주어야 하는 양'은 사실 양모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개량종이다.
그러한 품종 중 대표적인 메리노 양은 더 많은 양모를 얻기 위해서 피부를 일부러 쭈글쭈글하게 만들었다.
양의 촘촘하게 자라는 털 사이에 통풍이 잘 되지 않으니 구더기가 생기기도 하고, 관리를 위해 배설물이 잘 묻는 항문 주위의 생살을 도려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옷장 안의 다른 옷감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다운패딩에 들어가는 다운(down)은 거위나 오리 같은 조류의 가슴 쪽 가볍고 부드러운 솜털을 뜻하는데, 이러한 다운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생후 10주 무렵부터의 거위와 오리에게 산 채로 털을 뽑는다.
신축성과 탄성이 좋아 섬유의 보석이라 불리는 캐시미어 생산을 위해 중국과 몽골 등지에서 염소 방목이 대규모로 늘렸다. 먹을 것이 부족하면 뿌리까지 캐 먹는 염소들로 인해 토지의 황폐화 및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옷의 '관리법'을 찾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옷이 가진 '이야기'를 묻게 되었다.
지금 이 옷이 내게 오기까지 동물과 환경,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리고 내가 이것을 사용한 후에는 어디로 사라지게 될까?
나의 소비활동으로 인해 내 앞에 놓인 이 물건이 어떤 여정을 거쳐 내게 왔을지를 묻는 일은 중요하다.
만들어진 곳, 사용된 자원과 에너지, 만든 사람들이 일하는 환경, 지불되는 노동의 대가는 공정한지, 운송 과정과 버려지고 난 이후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생각한다면, 지금 내 앞에 놓인, 세상 다 똑같아 보이는 물건들 중 이 '하나의 물건'과 내가 만난 것도 인연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물건과 만나고 헤어지지만, 그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은 드물다.
가끔은 죄책감이 들어 이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물건에 영혼이 있다면, 제대로 쓰여지지도 못하도 고스란히 버려지는 자신의 모습에 슬플지도 모르겠다고.
돌고 도는 유행 속에서 '미니멀리즘(minimalism, 최소주의)'이라는 흐름이 조용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로 대표되는 곤도 마리에의 말에 이끌려 버리고 덜어내는 정리의 경험은 과연 지나갈 유행일까, 아니면 삶으로 받아들일 가치관으로 남을까.
미니멀리즘을 단순히 소유의 최소화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버리는 행위에 그치지만,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활동이 세계에 가져오는 파동을 생각하며 행동한다.
전자는 버려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곧 다시 소비를 하겠지만, 후자는 소유의 최소화를 넘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고 오래 쓰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미니멀리즘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바를 확인하고 물건들의 의미를 되새기며, 최소한의 필요라는 숙고된 소비를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그저 버리는 일이 아니라, 남겨두는 것을 돌보는 일,
물건뿐만 아니라 자신을 아끼고 오래 사랑하는 일,
결국 더 풍요로운 삶을 지속하여 선택하는 일이다.
물건의 여정을 탐구하고 소비의 연쇄 효과를 고려하는 것.
이를 통해 새해에는 미니멀리즘을 단순한 유행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니멀리즘.
그 아름다움에 우리의 소중한 가치도 녹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소유와 소비를 되돌아보고 구체적인 방식을 찾아 실천하고자 다짐해본다.
덜어냄에서 오는 풍요로움, 불편함에서 오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삶.
그 여정의 어딘가에서, 한 번씩 멈추어 내가 가진 물건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