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우리의 본래(本來)
마트 진열대를 지나던 중, 말차초코를 주제로 콜라보한 과자 코너를 마주쳤다. 익숙한 과자들이 온통 진한 초록빛으로 코팅되어 있었다. 피스타치오맛, 딸기크림맛처럼 익숙한 제품을 일시적으로 새로운 맛으로 바꾸는 방식이었다. '기간 한정'이라는 광고 문구에 어울려주는 가벼운 마음으로 카트에 하나 담았다. 작은 소비로 기분을 전환해보고 싶기도 했다.
포장을 뜯고 향과 색을 살피며 맛을 가늠해본다. 한 입 베어 물었다.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하듯, 그 한 입에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혀에 닿는 맛과 질감을 하나씩 되짚어보며, 요리 심사위원이라도 된 듯 평가해본다. 말차 특유의 쌉쌀함이 은은하게 이어졌다. 생각보다 괜찮아서 전부 다 먹었다. 그 과자를 개발한 사람들이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꼭 이렇게 물어보았을 것 같다.
"맛이 어때요? 한정판으로 끝내기엔 아쉽지 않으세요?"
유행하는 과일이나 도발적인 맛을 제품과 접목하는 식의 마케팅은 이제 꽤나 익숙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레오(OREO)다. 오래 사랑받아온 이 쿠키는 초코민트, 티라미수, 피넛버터 등 다양한 맛을 시도해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새로운 맛을 경험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본래의 오레오 맛에 대한 애정을 더 깊이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오레오의 이런 낯선 맛이 원래의 맛을 더 강하게 환기시킨다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브랜드의 인지도를 유지하고 새로운 소비자를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익숙함과 새로움이 교차하는 이 구조는, 단순히 제품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관계에서도 새로움은 익숙함을 불러일으키고, 익숙함은 새로움의 의미를 비춘다. 둘은 단순히 반대 방향인 것만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며 성립하는 상호의존적인 감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오랫동안 익숙했던 사람에게서 문득 낯섦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매일 듣던 말투나 익숙했던 표정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변한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감정은 늘 한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기에,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같은 사람도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단면이나 어느 시기의 감정 하나로 그 사람의 전부를 설명할수는 없다. 감정이라는 것도 어쩌면 특정 시기에 반짝이는 '기간 한정' 같은 것이지 않을까. 사랑스러움도, 아련함도, 애틋함도 시절에 따라 어떠한 짙음과 옅음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그것이 가벼운 일렁거림일 뿐이라거나 덧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감정이 전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감정은 누적되고, 스며들고, 다시 떠오르기도 하며, 어떤 감정은 오히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오레오에는 고유의 구조가 있다. 초콜릿 쿠키 두 장 사이에 흰색의 크림을 끼운 단순한 조합.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오레오 본래의 맛은 그 구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릴 적 우유에 적셔 먹던 촉감, 입안 가득 퍼지는 단맛, 손가락에 묻은 부스러기를 함께 웃으며 털어내던 순간까지도 모두 포함된, 각자의 감각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종종 누군가의 반복되는 경향을 그의 ‘본래’라고 말하곤 한다. 살면서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어떤 것, 즉 그의 말수가 적은 태도, 누군가를 먼저 챙기는 습관처럼 일정한 패턴이 계속되면, 그것을 곧 그 사람의 본질처럼 여기기도 한다. 물론 어떤 경향은 쉽게 바뀌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특성조차도 사실은 관계 속에서 도출된 결과일 수 있다. 누군가에겐 늘 말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던 이가, 다른 누군가에겐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타인을 먼저 챙기며 배려하는 듯 보였던 사람도, 특정 관계나 상황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거나 오히려 자신을 돌보는 데 서툰 면모를 드러낼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본래'라고 믿는 그 모습은, 보는 이의 위치와 경험에 따라 입체적인 모습을 띄고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인식하는 '그 사람의 본래'란, 어떤 고정된 성질이나 본질이라기보다 나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반복되며 누적된 감정의 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것은 특정한 시선과 감정으로 기억된, 아주 사적인 '느낌의 집합'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결을 통해 그 사람을 떠올리고, 다시 받아들이고, 때때로 그리워하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을 향한 기억과 감정의 축적이야말로, 관계 안에서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본래'를 만들어낸다.
"그 사람은 원래 그래."
이런 말을 너무 쉽게 꺼낼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말을 조금만 곱씹어보아도 얼마나 많은 맥락이 생략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날의 표정, 특정한 시기의 말투나 행동 하나로 한 사람을 단정 짓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일 수 있다. 그가 차가워 보여 견딜 수 없던 것처럼 느꼈던 날은, 되려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무심하게만 보였던 날은, 내가 그에게서 확인받고 싶은 무언가가 컸던 날이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의 본래'라는 것을 우리는 결코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흘러갈지언정 함께한 시간, 스며든 말투와 같은 다양한 흔적들은 남는다. 그리고 그 흔적이 우리가 그 사람을 떠올릴 때 느끼는 그의 모습이 될 수는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원래 그래"라는 말 보다는 "나는 그 사람을 이렇게 기억해"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던 어느 추운 날, 말없이 내 손을 주머니 속으로 끌어당기던 그 사람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 따뜻한 손길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다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그날의 고마움과 안도감만큼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서운함, 미안함, 어색함, 때로는 말하지 못한 서글픔까지, 함께한 시간 속에서 겪었던 감정들이 하나씩 스며들어 쌓였다. 그런 감정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남아 결국 '우리'라는 관계의 결을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축적된 기억들이야말로, 관계 안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정체인 것은 아닐까.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낯선 순간 속에서 다시 익숙함을 떠올리는 반복. 서로를 다시 만나기도, 다시 잃어버리기도 하며 그렇게 마음을 쌓아가는 일.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 안에 오래 남는 것이 되었다.
한정된 시기에 잠시 반짝이는 말차초코, 티라미수, 피넛버터맛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생각해본다. 그와 나누었던 달디 달고 때로는 쌉싸름했던, 짜디 짜고 때로는 얼얼했던 여러 감정들까지도.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그와 함께한 시간 속에 스며든 진심이었다.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라는 관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본래'를 남기게 되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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