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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준 Dec 04. 2023

울 수는 없잖아

모 아니면 도

연애 시절부터 -실제 고등학교 졸업하고 얼마 안된 연령이기는 했어도- 그녀가 고등학생 같이 말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운전을 위험하게 하는 것 같아서

나: "그렇게 운전을 하면 위험할 거 같은데. 사고 날 수도 있잖아."

그녀: "죽기 밖에 더해?"



또 어느 날은,

나: "너는 그 상황에 웃음이 나와?"

그녀: "울 순 없잖아."



지인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 "저 사람은 왜 우는 거야?

나: "슬프니까."

그녀: "울면 안 슬퍼져?"

나: "안 슬프려고 우는 게 아니라 그냥 눈물이 나는 거지. “

그녀: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나: "...해결은 안 되겠지."



결혼 한 달 앞두고,

나: "너는 나를 사랑하니?"

그녀: "사랑하니까 결혼하지."

나: "나는 사랑이 안 느껴져."

그녀: "당신이 실명되면 한쪽 눈이라도 빼주고 신장이 아프면 바로 신장을 주겠다는데 더 이상의 확실한 사랑 표현이 어딨어."

나: "난 눈을 빼주는 게 사랑같이 안 느껴져"

그녀: "이게 내 최고 사랑 표현 방식이야."


확실히 남녀가 바뀌었다. 결혼 전 매리지 블루를 겪질 않나, 나는 너무 쓸데없이 여성스럽고 그녀는 도원결의를 했던 관우 혹은 장비 같았다. 해병대 출신 장인어른보다 더 해병대st다.


그녀는 장모님과 할머님의 음식 솜씨를 닮아 유튜브 레시피를 처음 따라 해도 맛있게 하는 편이다. 또 맘이 맞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도 즐겨해서 한 동안 우리 집에 초대를 많이 했었다. 손님 중엔 우리 같이 어린 아이가 있는 부부나 예비 부부가 있어서 우린 우리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 눈이 실명되면 눈을 빼준다는 그녀의 애정 표현을 듣고 많이들 박장대소와 함께 멋지다는 반응을 보여줬다. 파격적이지만 그 어떤 말보다 솔직한 표현이라고 했다. 그런 모습들로 인해 이 세상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나의 여인이 한꺼풀씩 이해되었던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배에서 나와, 부모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자란다. 그래서 그 사람의 성향은 반드시 부모의 말과 행동, 교육 방침에서 비롯된다.

물론 타고난 고유의 성격은 있으나, 완전한 성악설이나 완전한 성선설이 존재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즉 아이들이 혼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나 다른 아이에게 질투나 미움을 가지는 것 자체는 성악설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를 따르며 사랑하고 예쁨을 받으려고 하고 사랑을 받았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한 것은 성선설에서 온 본능이다.


그래서 부모는 육아할 때 그들을 그저 나이 어린 사람이 아닌 자신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개체로 대해야 한다. 아무리 어린 이라도 생각이 있고 (심지어 거의 다 부모를 보며 배운 생각)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 어른이 원하는 대로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하지 않고- 강행한다면 그것은 이른바 가히 폭력이라 할 수 있으며, 아이에게 혼란을 줄 뿐 아니라 그게 그대로 성향에 영향을 끼친다.


나의, 그녀의 성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 또 그것이 우리 자녀들에게 미칠 영향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각자의 성향 중에서 개선할 점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 변해야 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에게 후회할 말을 내뱉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 부부는 대화가 많다. 다른 성향이 정말 많지만 끊임없이 각자의 성향을 궁금해하고 비교해 본다. 그러다가 내가 ‘이렇게 하면 행복할 텐데, 저렇게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텐데’ 하는 강요 섞인 말을 해서(의도는 좋은) 또 싸우기도 하지만 그 빈도수를 줄여가도록 서로 노력하고 있다.


나는 자주,  내 인생을 통해 검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숭고하기 짝이 없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거나 공감과 이해 따위의 아름다운 말을 서두로 해서. 이런 내 모습이 종종 의도치 않게 그녀의 그녀 되게 하는 내추럴한 모습을 개선하고 침해하게 되다 보니 부부싸움의 도화선이 되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칼로 자르듯 명확한 ‘모 아니면 도’의 같은 방식은 육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놀이터나 키즈 카페에서 다른 가족과 함께 있을 경우가 많다.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해악으로 엄하게 엄마로부터 교육받은 우리 아이들은 집 밖에서의 확실한 행동요령이 있으며 그 수위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엄마에 의해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 잘못하면 혼나는 줄 아는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잘 듣는다.


또한,

내게 있어서는 인생의 큰 줄기를 바꾸었다고도 할 수 있다. 생각이 많아 결정장애가 있고 머리를 감싸고 있을 때가 많은 나에게 그녀의 심플하고 논리적이며 신속한 결정은 내 삶을 무척이나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어 줬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편두통이 사라졌다!


그녀는 MBC 무한도전 캐릭터에서 박명수를 제일 좋아한다. 나도 무릎을 탁 친 진리의 말 중 하나는,

“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이다.


나는 그간 돈보다는 ‘사랑과 감사의 표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살았으나, 때로는 많은 말보다는 돈을 쓰는 게 진짜 표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해외여행을 갔다가 남을 위해 선물을 준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사람이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고 필요로 했었는지를 고민하여 선물을 사고 그 선물을 캐리어에 실어와서 만나서 전달해 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마음을 실어야만 가능한 것인지. (즉 돈을 쓰는게 마음)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의 그녀는 내 삶의 등대이자 주인공이다.

약간은 터프하지만.





성향이 다른 아내와의 경험담을 토대로 연재합니다. 핑크빛 러브스토리보다는 인간 본연을 탐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is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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