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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준 Nov 30. 2023

J와의 추억

대부분의 연인은 처음 만나서 연애할 때는 싸우지 않고 서로가 좋기만 하다. 사랑이라는 화학적 물질이 둘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과 생각이 다르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정혜영 씨를 사랑하는 션의 말 같이 변한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여기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좋은 것으로 가득했던 과거의 그녀도 현재의 그녀와 동일한 사람인데, 지금 나에게 단점들이 보인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문제라고 말한다. not her. 상대방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나의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내 눈엔 들보가 있다. 대들보(건축물의 기둥과 기둥을 가로 받치는 크고 두꺼운 목재).

션도 신이 아닌 사람일진대 이 성경 말씀을 매일 묵상하며 살리라. (그래도 여전히 대단한 남자! Thumbs up, Sean!)



그녀와 갈등을 겪을 때마다 휴대폰 메모 앱에 일기를 써 왔더랬다. 갈등의 원인과 나의 마음 상태를 날짜별로 기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같은 갈등이 다음에 또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하도 싸우다 보니 싸우는 게 너무 싫어졌다. 에너지 소모의 최고봉일 뿐 아니라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었으며 그것은 희미해질지언정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번에 또 싸우고 그전에 썼던 일기를 읽어보면, 비슷한, 아니 거의 똑같은 문제로 싸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부족한 사람이 만나서 사는 것이고 아직 깨닫지 못하는 점들도 수없이 남아 있으며 심지어 내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모르기도 한다.

그래서 한 때 심리학을 공부해 보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잔뜩 심리에 관한 책을 빌려 와서 읽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켜켜이 기록하던 내 일기장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수지만 누군가의 공감은 반드시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는 내 인생에 책을 한 권은 내야겠다는 결심이 점점 짙어지던 지지난 주말, 책을 먼저 출판해 본 경험이 있는 롤모델인 동기에게 연락했다.

그는 바로 브런치에 먼저 글을 써 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신났다. 원래 SNS에 내 글을 업로드하는 걸 즐기던 난 (그런 관종인 날 보며 그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지만) 그날로 일기에 몇 개 적어두었던 이야기로 작가신청을 했고 만 하루가 되지 않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알람이 왔다.

기다리는 동안 희한한 확신이 있었다. 나의 주제는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열렬히 지지했다. 에세이  <망한 세상을 걷는 그녀>를 연재하게 된 경위다.



‘너’와 ‘나’의 갈등은 거의 다 ‘네가 틀렸고 내가 옳아’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2021년 3분기쯤 J가 전입했다.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스마트해서 본인의 생각을 차분히 잘 전달하는 친구였다. 나이는 거의 나와 두 배 차이였나. 내가 이 나이 때 이렇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표현했었는지 생각하면 난 그 나이 때 멍하니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았다. 운전병과 군수담당관이라는 직책상 우리는 외근을 할 일이 많았고 자연스레 대화와 공감대도 많아졌다. 어느 날은 내 맘 같지 않은 그녀와의 갈등을 이야기해 주며 J의 의견을 물어봤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그녀의 생각을 명확하게 말해 주었다. 몇 날 며칠을 머리 싸매고 고민해도 나오지 않던 답이 고스란히 그의 입에서 나왔다.

말 그대로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신통방통 신묘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J의 성향은 그녀와 단언컨대 90퍼센트 이상 일치했다. 그날 이후 J는 내게 남자 OOO이자 걸어 다니는 표준전과가 되었다. 결혼 후 이해되지 않던 그녀의 행동들의 원인도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J와 1년 남짓 함께 했던 군생활 동안 가장 와닿았던 말을 해보자면,

일단 나는 오랜 군생활 동안 많은 병사들에게 말해왔다.


하지 않아도 될 군생활을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는 이유로 끌려 와서 대단히 고생이 많지만, 나보다 잘 지내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부러워하거나 힘들어하는 것 대신 나보다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함을 느껴보자. 그런 마음 상태여야만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단다.


이런 나의 말에 대해 J는 본인의 솔직한 마음을 말해줬다.

“저희가 끌려와서 고생하는 것 맞고, 정말 싫지만 그걸 인정하고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군소리 없이 차질 없이 하고 있는데, 그 이상 그것에 추가하여 감사하며 긍정적인 마음까지 가져야 합니까?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

이어서 그녀에 대해 말했다.

“아마 그분은 하루를 지탱하기에도 힘들 것입니다. 본인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하루를 보냈기에, 침대에 겨우 몸을 눕히고 쉬고 있는 걸 겁니다. 게으른 게 아니라 힘든 겁니다”

외향적으로 보이고 밝고 예의 바른 그녀이나 그녀는 철저히 내향적인 사람이고 사람을 만나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사람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진리처럼 병사들에게 가르쳤던 나의 신조에 대해 그건 타인에 대한 강요일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J를 통해 많이 알게 되었다. 부부면, 친하다는 나의 말도 어불성설이었다. 난 이 나이까지 무슨 생각으로 살아왔을까.





내가 먼저 부대를 떠날 때 J가 준 내 최애 영화 액자
액자 뒤의 멘트. J의 나름 재밌었다는 말은 큰 칭찬. 그리고, 이 영화는 내 아내와 J의 워스트 무비.







성향이 다른 아내와의 경험담을 토대로 연재합니다. 핑크빛 러브스토리보다는 인간 본연을 탐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is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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