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출신 장인어른은 장모님과 함께 목장을 운영하시며 우유 납품을 하신다. 젊은 시절 소 두 마리로 시작하여 지금은 칠십여 마리가 된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자유분방해서 밖에서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했다. 반면 장모님은 사랑도 많고 염려도 많은 분이라 집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봤을 때 잎사귀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기만 해도 자식을 밖에 내보내지 않으셨다. 그녀는 나가고 싶은데 못 나가게 해서 발에 비닐봉다리를 싸매고 창문으로 탈출하기도 했고 못 나가서 가슴이 답답해 가슴 통증을 호소하여 장모님이 병원에 데려가 MRI도 찍었단다. 결과는 당연히 매우 건강.
여하튼 중학생 때도 여전히 친구들이랑 나가 노는 걸 좋아해서 밤에 통금이 있음에도 그걸 자주 어겼다 한다. 해병대 아빠는 교육 방침이 명확했다. 세 번까지는 봐준다. 그러나 세 번을 넘으면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기에 말이 아닌 매로 다스린다. 얼마나 괜찮은 교육방법인가? 오늘날에도 많은 부모가 벤치마킹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세 번을 넘겼다. 장인어른은 약속을 지키는 남자다. 맨 오브 프로미스. 큰소리를 내지도 않으시고 조용히 불러 목장에 소똥밭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갔다 벽을 찍고 오게 하셨다. 사람이 아니므로 말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요령을 피면 쇠파이프로 머리를 때리셨다. 그때 그녀는 눈앞에 주마등이 스쳤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나는 물었다. 아빠가 그런 사람인 줄 알면 두 번째에서라도 멈췄어야 하지 않느냐. 그땐 일단 노는 게 좋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넘어갈 거라 생각하고 그랬던 것 같단다. 하나 있는 처제는 어릴 적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자랐다.
그녀의 인생관의 굵은 획을 긋는 사건은 지금부터다. 짐승을 훈육하는 아버지의 자비 없는 죗값의 현장에 계셨던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때 느꼈다고 한다.
아. 인생은 혼자구나. 부모자식 간이라 해도 인생은 처절한 독고다이구나.
그녀는 고등학교를 멀리 다녔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 거리의. 그런데 어느 날은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대같이 퍼부었다. 한 번만 데려와 달라고 집에 연락을 했는데 그냥 오라고 했단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맞고 갈 수가 없어서 그러면 가까운 친구네서 자고 가도 되는지를 간청했지만 외박은 허용되지 않기에 그냥 오라고 했다고 한다.
비를 흠뻑 맞고 버스를 갈아타면서 신발 속과 속옷이 비에 다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집에 온 그녀에게, 데리러 가지 못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는 부모를 뒤로 하고 샤워하러 가는 길에 그녀는 더 이상 그 무엇도 요구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의 우산 사건이 또한 깊은 상처가 되었다. 쇠파이프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