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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준 Nov 21. 2023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는가, 둘이 되는가

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 여러분은 동의하시는가?


그녀는 슬픔을 남에게 말하면 슬픈 사람이 둘이 된다고 한다. 평생 그 부분을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그럴듯 하기도 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렇게 그녀는 늘 나의 고정관념을 깬다.

그래서 그녀에게 슬픔을 나누는 사람을 그녀는 사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거라고 조건을 붙이며.


왜 본인이 속상한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거야? 내가 그들의 감정 쓰레기통이야?


그녀는 해결사이다. 그들이 그들의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생기는 슬픔, 짜증, 노여움 등의 감정의 말을 들을 때 그녀는 그 감정을 야기한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러고 나면 그 감정은 뒤따라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따라서, 해결을 그녀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거나, 처음부터 물어볼 성질의 것이 아닌 소재면, 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말을 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남에게 본인의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가까이 있는 내게도.

결혼 후 거의 하지 않았다면, 10년쯤 지난 지금은 반 정도는 하지 않나 싶다. 나란 사람은 남은 반도 내게 줬으면 좋겠는 사람인데, 나도 그걸 요구하는 것이 강요라는 것을 머리로 알기에 조심한다. 그게 더 좋은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그녀도 무조건 남의 이야기를 듣기 싫어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 문제에 대해 그녀에게 ‘이럴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라는 느낌으로 대안이 있는 감정이 정리된 상태에서의 건전한 토론은 오히려 흥미롭다고 한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싱싱한 문제를 가지고 본인의 노력없이 무조건 남과 공유하여 해결해 보고자 하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도 안다. 이런 유형도 있고 저런 유형도 있다는 것을. 본인도 나를 만나기 전에는 모두 자기같은 줄 알았단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우리는 각자 30년 정도의 세월 동안 이 세상 사람이 모두 서로 자신과 같은 사람인 줄 알고 살아온 것이다.

내 주변에는 나같이 감정을 표현 잘 하고 교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사람만이 나에게 다가와 교류했을 것이며, 그녀는 나와 같은 사람이 다가갈 때 쉽게 걸러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와 같은 성향이  많았고, 내 주변에는 그녀와 같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나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고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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