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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준 Nov 20. 2023

우리가 다른 점

첫째는 베프인 A와 자전거를 타러 나가서 현재 시간 3시 반인데 6시까지 일단 들어오기로 약속을 했다. A는 진작부터 끼고 다녔던 -어제 쿠팡 와우로 시켜서 좀 전에 도착한- 요술장갑을 끼고 나가서 기분이 좋다.

둘째는 내 옆에서 팝콘을 먹으며 디즈니플러스의 미키마우스를 시청하고 있다. 곧 잠들 요량이다.

그녀는 내가 차 앞유리를 아이들과 교체하러 간 동안 10분짜리 알바 후 교회 청소(교회는 토요일에 청소를 한다 보통)하러 갔다가, 그녀의 베프인 리지를 만나러 갔다. 리지는 필력이 좋아 그녀의 추천으로 음식 블로거가 되었고 그로 인해 현재 고깃집 프로모터로 취직이 되어 최근 첫 월급으로 배민 3만원권도 감사 인사와 함께 선물한, 그녀가 아주 맘에 들어하는 사람이다. 여하튼 지금도 리지가 블로그에 소개하여 식권을 제공한 음식점에서 함께 먹겠다고 하여 나간 것이다.

그 틈을 타 글을 쓴다.


다음 주면 우리의 9주년 결혼기념일이다.

연애기간까지 10년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 각자 변화해 왔다. 누구나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닐 것 같다. 우리는 정말 다르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는 더 달라지지는 않았고, 가운데를 향해 변화해 왔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서로의 접점을 찾지도 못한 채 이른바 다른 점이 무엇인지 이야기도 해보지 못하고, 사별하거나, 헤어지거나, 늙어서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랬다. 어머니가 우리 부부를 봐서는, 참 바람직하다고 한다. 우리가 다투었을 때,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면 위로보다는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래 살아온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그렇단다. 화해하고 나서 생각해 보면 맞는 말도 같다.



나는 곤경에 빠진 이가 있을 때 그를 곤경에서 구해주기 위해 (어떤 이가 오지랖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도 부려서)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그게 내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녀와 살다 보니 배운 것이 있다. 남을 도움으로써 내가 기뻐하는 것은 틀리거나 혹은 옳은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그런 사람일 뿐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군생활 내내 그와 비슷한 나의 가치관들을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녀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결혼식 직전까지 처음 군대에 온 병사들을 훈육하는 교관이었다. 나는 인기 있는 교관이었다. 딱딱하게 수업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부터 일어나 체력단련을 하고 가뜩이나 체력이 달리는 훈련병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팁이나 미군과 잘 지내는 법을 알려주었으며 교육생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하지만 그게 내 정신적인 기쁨이 되었으며 내 삶의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이 나를 좋아하고 진심으로 손뼉 치고 환호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인기 있는 교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들이 나에게 손뼉 치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준 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표현이었다고. 나는 재미있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고.


리터럴리, 세상이 꽈과광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 난 군생활 10년 차로 내 방식에 대해 거의 확신을 가졌을 때이다. 결론적으로 그때 그녀의 말이 나의 인생을 바꿔놓은 말이 됐다. 내게 직접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그때까지 없었으니까. 그 누구도 고집이 센 내게 그렇게 말해서 화나게 할 필요를 못 느꼈을 테니까.


“이제 우리는 이제 남편과 아내니, 그 누구보다 친한 거야.”

“무슨 조선시대야? 나는 너랑 만난 지 1년밖에 안되어서 별로 친하지 않아, 내 10년 지기가 더 친해. 당연한 거 아냐?”


다시 메가톤급 망치를 맞았다.

나는 그렇게도 남의 말을 들을 귓구멍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 긴 군생활 동안 주변에서 나에게 조언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을 텐데도 내가 고집스럽게 듣지 못했을 거란 섬뜩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에도 같은 학급의 학생 모두를 친구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반면에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같이 아무나 동갑이면 친구라고 부른다고 생각했다. 문득 떠올랐는데, 어릴 때 교회에서 내가 친구라고 불렀는데 그 친구(?)가 그랬었다.

“우리 친구야?”




성향이 다른 아내와의 경험담을 토대로 연재합니다. 핑크빛 러브스토리보다는 인간 본연을 탐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dis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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