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도 이사하면 안 돼??”
대치동으로 학원을 오가면서 아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집집마다 각기 다른 사정이 있듯,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사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터였던지라 그런 아이의 투정은 종종 날카로운 칼날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가 이사를 가고자 하는 것은 비단 이동 과정이 힘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엄마, 애들이 우리 학교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무시하잖아.”
그도 그럴 것이 초등학교 이름은 거의 지역명의 첫 자를 따라 지어지게 마련이니 아이들은 학교 이름으로 이 지역 아이가 아님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한 순수한 아이들 입장에서는 정말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이름이었을 것이었다. 이 지역의 초등학교 이름은 대부분 ㄷ으로 시작된다. 대치, 도곡 지역이다 보니 이름이 대* 또는 도*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시옷으로 시작된 학교 이름을 들으면 당연히 생소하고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으리라. 아이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은 다니고 싶은 학원에서 아주 근접한 학교의 재학생들만 받아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강남구에 있는 학교라고 해서 모두 다닐 수도 없고 주변 몇몇 학교를 중심으로 내신을 관리한다는 곳이었다. 그러니 강남구 거주자도 아닌 상황에서 입학 테스트부터 거절을 당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막상 그 일을 겪는 상황을 지켜보자니, 엄마로서도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엄마, 애들이 다 같이 놀러 간다는데 나도 가면 안 될까?”
혼란스러운 상황은 동네에서도 나타났다.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아이들끼리 몰려 어디론가 놀러 간다는 것이다. “애들은 학원 안 다녀, 저녁에 과외받거나 하고 학원 가는 애들은 학교 앞에 다니니까 만나서 놀다가 갈 거래. 나만 맨날 고생하는 것 같아.” 대치동 카페맘 생활을 해왔지만, 학원을 보내는 데 있어서 절대 많이 시킨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조금씩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아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방학식, 개학식, 개교기념일 등을 활용해서 아이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근처에서 만나 놀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노는 것이 절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계획 없이 그저 만나서 노래방, 피시방에 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아이가 이해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했다. 더구나 코로나가 이렇게 심한 이 시기에는 말이다...
이러한 고민은 사춘기에 한참 접어든 아이들의 현실에도 순간순간 올라왔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나이이므로 이러한 부분은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해 나가야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가슴으로는 동네 아이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더라도 머리로는 하교 후 대치동으로 이동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치동 이방인 생활이 5년 남짓 되었을 무렵에는 대치동에 있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학교가 끝난 후 피곤한 몸으로 차에 타서 이동시간 동안 짬을 내서 낮잠을 자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저녁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때로는 엄카 찬스로 달달한 조각 케이크까지 우아하게 즐기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고, 때로는 자리가 없어서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기름 냄새 범벅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면 변함없이 대치동 학원가는 픽업 차량으로 가득하다. 어떤 이는 대치동 사교육이 부모들의 욕심으로 움직인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부모나 조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아이들의 실력을 산다고도 한다. 다양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그저 돈으로만 살 수는 없다는 점이다. 메인대로 안쪽에는 많은 부모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자신들의 저녁 시간을 포기하고 한잔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부모의 헌신과 노력만으로, 대치동 학원가 안에 머무른다는 것만으로, 아이의 성적이 오르길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순간의 욕구를 미래의 더 나은 만족을 위해 꾹 누르고 아이를 기다리는 수많은 부모와 학생들의 열정은 오늘도 맥주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있는 오늘의 나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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