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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밭에 울려퍼진 노래

5월의 숲밭음악회

by Hoho

2022년 5월


항아리에 꽂아놓은 샤스타데이지 꽃과 밀 이삭이 바람에 살랑인다. 정자 가운데 매달린 커다란 풍경이 댕- 댕- 묵직한 소리를 내며 울린다. 숲밭을 가꾸는 가드너들의 손길에 한가롭던 쉼터가 무대가 되고, 밭으로 향하는 길에는 장터가 세워진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밭 멤버 중 한 분이 만들었다는 뜨개실 가랜드가 걸리며 금세 축제의 장이 열린다.


오늘은 숲밭음악회가 열리는 날이다. 5월 날씨가 가장 좋을 때, 너도나도 피크닉에 나설 때, 우리는 밭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의정부 수락산 아래에 위치한 인과의숲밭은 여러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받아 조성되었다고 한다. 3년 차에는 음악회로 보답하고, 5년 차에는 꾸러미로 보답한다는 약속을 하고선. 유명 펀딩 플랫폼인 텀*벅이나 와*즈 같이 후원금이 모이면 바로 리워드로 보답하는 형태의 후원만 보아왔는데, 나무가 성장하는 시간, 그리고 땅이 재생되는 시간인 3년 후를 믿고 약속하는 후원이라니. 그리고 그 보답의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중간에 합류한 숲밭지기인 나는 숲밭음악회를 공짜로 즐기는 기분이었다.


인과의숲을 가꾸는 숲밭지기들은 15명 남짓. 아침부터 모여 축제의 세팅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장터가 설 자리로 테이블을 나르고, 무대 앞에 돗자리를 깔고, 무대가 될 정자를 가랜드와 꽃으로 꾸몄다. 화장실이나 장터 표지판 등 안내판이 될 박스를 자르고 그 위에 필요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경험이 풍부한 선배 숲밭지기들의 지도 아래 뚝딱뚝딱 축제의 장이 완성되었다. 장터에 출품하는 숲밭지기들은 다들 자기 테이블에 물건을 세팅하느라 분주하다. 그냥 서있기는 뭣해서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자니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인다. 부부끼리, 친구들끼리,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 그뿐 아니라 개들도, 말도... 아니 말이라니? 마부처럼 챙이 넓은 중절모 같은 것을 쓰고,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작은 조랑말을 데리고 등장하시는 분은 포천과 제주에서 작은말학교를 운영하며 퍼머컬처 농사를 짓는 말똥이삼촌이란다. 말이 등장하자 어린아이들은 신이 나서 옹기종기 말 주위로 모인다. 이 축제야말로 지구를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함께 즐기는 축제가 아닌가. 가슴이 웅장해진다.


숲밭음악회의 무대


아름다운 핸드팬과 싱잉볼 소리로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난생처음 보는 악기였는데, 솥뚜껑 같은 핸드팬에서는 움푹 파인 홈마다 서로 다른 음이 울렸고, 놋그릇 세트를 늘어놓은 것 같은 싱잉볼은 서로 다른 사이즈마다 높낮이가 다른 진동이 공명한다. 두 악기가 서로 만나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연주를 들으니 모든 근심과 걱정은 날아가버리고 평온을 찾는 기분이다. 이는 명상할 때 많이 쓰이는 악기들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소리를,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쓰는 다른 악기들과는 달리, 핸드팬과 싱잉볼 음악은 잔잔한 호수에 물방울이 떨어져 일으키는 파동처럼 차분하다.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소리를 이 쇠붙이에 담아낸 느낌이었다. 음이 퍼지는 속도는 자연의 속도와 일치하며,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의 속도라는 것을 알아챘다.


감동적인 첫 공연이 끝나고 두 번째는 비건을 지향하며 물살이에 대한 노래를 썼다는 가수 미루의 공연이 이어졌다.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옷차림에 꾸밈없는 얼굴, 그에 반해 순박한 환한 미소로 등장하며 천진난만한 인사를 건네는 미루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가 노래를 시작한 순간 맑고 힘 있는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들어왔다. 서정적인 가사와 부드러운 기타의 멜로디, 적당히 잔잔한 노래와 적당히 신나는 노래, 매우 진취적인 노래가 이어지며 축제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때부터 난 미루의 팬이 되었다.


사실 그즈음 나는 셀프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축가를 부탁할 사람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그냥 없이 해야지’ 마음먹고 있던 와중, 이 분이 축가를 불러주면 결혼식이 완벽해지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곳과 같은 예쁜 마당에서 꽃으로 장식된 아치, 웃고 떠드는 사람들, 미루의 노래. 과하지 않고 적당한 아름다움. 노래가 빠지면 섭할 뻔했는데 잘되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쉽지 않은 낯가림이 심한 나이지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공연 너무 잘 봤어요. 노래가 너무 좋아요~!! 혹시… 축가도 하시나요?”

“앗 감사합니다!! 축가를 해본 적은 없지만 맡겨주시면 갈 수 있어요!”


그 인연으로 미루는 나의 결혼식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다음으로는 신명나는 장구에 창을 하시는 분의 공연이 이어졌다. 앞의 공연에서 예열된 무대에 빠른 장구소리가 더해지니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 팔을 휘젓기 시작한다. 어색하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상을 찍던 나에게 바다가 다가와서 같이 춤을 추자는 손짓을 한다. 모두가 춤을 추니 나도 용기를 내어 몸을 덩실덩실 흔들었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축제 같았다. 즐겁다.


'밭맛'의 서양톱풀케익, 타불레, 밭에서 자란 딸기


공연 중간중간에는 장터를 구경했다. 찹쌀떡구이와 수제비누, 허브모종, 코디얼에이드, 다양한 제로웨이스트 물건 등, 우리 숲밭지기들이 이렇게나 능력자였다니 멋지다. 그중에서 나는 기후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밭맛’ 팀의 ‘서양톱풀 쌀케이크’와 '타불레'를 사 먹었다. 서양톱풀은 좁쌀 같은 하얀 꽃이 피는 허브로, 상처치료 효과가 있어 실제 상처가 났을 때 톱풀잎을 짓이겨 올려놓으면 빨리 아문다고 한다. 피부에도 좋고 몸에도 좋은 톱풀을 갈아 쌀가루로 만든 비건 케이크였다. 타불레는 중동식 샐러드로, 원래는 파스타의 일종인 '쿠스쿠스'를 베이스로 각종 야채를 넣어 만드는데, 우리 땅에서 난 기장을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아까시 꽃과 민트잎이 토핑으로 올라가 이국적인 풍미가 더해졌다. 이 음식을 개발한 '밭맛' 팀의 대표인 유이는 10년 넘은 비건이라고 한다. 퍼머컬처 밭에서 나는 재료들을 이용하여 다양한 비건 요리를 연구하고 있다고.


눈도, 귀도, 혀도 즐거운 오감의 축제의 마지막은 밭투어였다. 숲밭 선생님인 소란의 이끎 하에 퍼머컬처 숲밭을 쭉 돌며 설명이 이어진다. 인과의숲은 황무지 같은 모래 땅에 조성된 숲밭이라고 한다. 3년 만에 합류한 나는 초기의 모습을 못 봤지만, 허허벌판에 꼬챙이 같은 작은 나무 묘목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사진을 보고 놀랐다. 지금의 번성한 모습은 정말이지 기적 같았다. 퍼머컬처에서는 나무와 다년생이 자리를 잡고 밭이 번성하는 데에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 땅은 척박하니까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정말 기대되는 변화이다.


인과의숲 조성 초기(좌)와 3년 후(우)

축제가 끝나고 여운이 길게 남았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도 함께 놀고, 먹고, 즐기며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구나. 그 연결의 중심에는 밭이 있고, 우리는 밭을 돌보지만 역설적으로 그 밭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간다. 기계문명이 도래하며 우리 인간은 자연을 계속 파괴하여 좋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잃어가고, 농업도 산업화가 되면서 생산량을 높이는 제초제와 농약, 비료 등의 잦은 사용으로 땅은 점점 메말라간다. 생산량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작물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 되었다. 크기만 크고 영양분은 과거에 비해 점점 줄어든다. 시금치의 철분 함유량이 50년 전에 비해 1/6로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땅을 회복시키고 자연 생태계를 회복시키면 그 안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자연스레 얻을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생활용품, 생태적인 문화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퍼머컬처는 단순히 농사법이 아니라 문화라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나도, 우리 가족도, 그리고 지구 생태계도 안전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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