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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Jan 03. 2024

단식 둘째 날

잘 사는 것은 곧 잘 죽는 것

단식을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 몸에 쉬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이다. 거리를 걸으면 음식 냄새가 유혹하고, 핸드폰을 켜면 음식 광고가 유혹하는 시대에 살면서, 배고픔을 느끼는 것에 참을성이 없어졌다. 한시라도 배부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먹고 또 먹는다. 밥 먹고 조금 소화되면 디저트를 먹고, 또 때가 됐으니 밥을 먹고, 당 떨어진다며 군것질을 한다.


그나마 나는 비건을 하면서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기에 배고픔을 참고 집에 가서 요리를 해 먹는다거나, 과자 대신에 과일을 먹는 등 건강한 식습관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허나 비건을 한다며 약하고 살 빠졌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인지 매 끼마다 푸짐하게 대여섯 가지 반찬을 꺼내놓고 먹어야 허기가 채워졌다.


위는 항상 채워져 있었고, 식탐을 부리다가 뒤늦게 차오르는 배를 부여잡고, 무거워진 몸을 일으킨다. 적당히 먹으면 괜찮았을 텐데,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 왠지 더 기분이 안 좋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영양소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독소도 섭취하게 된다. 특히나 요즘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물에도 들어있는 미세플라스틱, 야채를 재배할 때 쓰는 화학 비료와 농약, 육류에 들어있는 수많은 독소, 고도가공식품 등 원하지 않지만 몸에 들어오는 것들이 일상에 만연하다.


필요한 영양분만 섭취하고 몸을 쉬게 하기, 몸을 가볍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기. 나 스스로 이를 조절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더 활기찬 삶을 얻게 되지 않을까? 소식은 노화도 늦춘다는 말이 있다. 전편에서는 잘 죽고 싶어서 단식을 한다고 했지만,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이다.





2일 차 아침. 어젯밤 배고픔에 괴로워했던 나는 어디 갔는지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 정신도 맑은 느낌이다. 그래도 식단에 맞춰 밥을 먹어야 하니, 쌀을 씻고 야채를 썰고 밥솥에 죽을 올렸다. 밥솥이 일을 할 동안 잠시 내 작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헌데, 불리지도 않은 생쌀을 넣고 죽을 끓이자니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오지 않는다. 거진 1시간 반을 기다렸나, 오늘 먹을 죽이 완성됐다.


이틀 먹을 죽인데 이렇게 많이 해 버리다니


결국 10시가 다 되어서야 늦은 아침을 먹게 되었다. 죽 4/5 공기, 물김치, 된장국, 토마토장아찌

어제 식단을 올려준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양한 반찬을 곁들인 것을 보고 나도 한 가지 정도는 추가해도 되겠거니 하며 소심하게 작은 종지에 반찬을 담았다.

2일 차 아침. 죽 위의 흰 가루는 소금.

죽은 아무리 간을 해도 맛이 없었다. 그렇다고 소금을 들이부을 수도 없는 일이니 된장국과 물김치를 들이키며 부족한 간을 보충했다.


3시간 여가 지나니 다시 배가 고파진다. 이렇게 빨리 배가 고파지는구나. 근데 손발이 시리고 잠이 쏟아져서 낮잠을 잤다. 아침에는 정신이 맑다 싶었는데,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바로 잠이 온다.

1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어제 된장국에 두부를 넣은 사람이 생각나서 두부를 사러 한살림에 갔다. 집에 남아있던 애호박과 팽이버섯, 두부를 넣고 물에 된장을 더 풀어서 끓였다.


2일 차 점심


점심은 죽 3/5 공기, 물김치, 된장국, 콩조림

어느 정도 허기는 채워졌으나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다. 눈앞에 보이는 고구마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한 조각 떼어먹었다. 그리고선 효소물을 틈틈이 마시면서 허기를 달랬다.

2일 차 저녁, 내 식사와 남편의 식사

저녁은 죽 3/5 공기, 물김치, 된장국, 토마토장아찌, 그리고 두부 한 조각.

(아침, 점심, 저녁이 별로 다른 사진 같지가 않다.)


앞에서 남편이 돌솥비빔밥을 먹는 모습을 멍하게 쳐다봤다. 맛있겠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처럼 계속 움직이게 된다. 뭐라도 집중해서 하면 괜찮겠는데, 머리를 쓰는 일은 못하겠다.


내일 점심부터는 미음만 먹고 하루를 버텨야 한다. 가능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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