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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Jan 06. 2024

단식 넷째 날

음식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음식이란 무엇일까. 사실 나도 '아무거나' 먹는 사람이었다. 딱히 몸에 좋고 안 좋고를 걱정하지 않고, 내 입에 당기는 음식, 조미료가 가득한 음식들을 먹곤 했다. 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떡볶이, 마라탕, 과자, 아이스크림, 빵 등등 자극적인 음식은 죄다 먹었던 것 같다.


30대가 되고부터 몸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회사일이 고되어 중간중간 먹게 되는 달달한 음식들은 평생 말랐다는 소리를 듣던 내 몸에 살이 붙게 만들었다. 허벅지, 배, 팔뚝 등등 군살이 많이 붙었고, 실제 체중도 늘어났다.


마침 그 시기에 나는 환경에 큰 관심이 생겨 제로웨이스트 운동에 진심이었다. 만연하지만 보이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의류쓰레기, 산업쓰레기 문제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채식이 내가 할 수 있는 실천 중 가장 크다고 해서 동물성 식품을 점점 줄이다가 비건이 되었다.


나도 고기를 정말 좋아했었기 때문에, 고기는 못 끊겠다는 생각을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동물성 식품을 줄이고 야채를 점점 늘려가다 보니, 채식의 세계는 정말 화려했다. 야채라 하면 상추, 샐러드 정도만 생각했다. 하지만 오이, 당근, 가지, 양배추, 고추, 시금치, 래디쉬, 버섯, 아스파라거스, 콩나물, 대파, 마늘, 생강, 호박, 연근, 우엉, 부추, 깻잎, 아욱, 치커리, 고사리, 미나리, 참나물, 콩나물, 미역, 김, 토마토, 깻잎, 감자, 고구마, 허브류, 콩류, 곡물류, 과일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채식의 세계가 있었다.


최애 비건식당, ‘녹두’


색색이 아름다운 채소의 색감과, 다양한 요리법으로 재탄생하는 채식에 그야말로 매료되었다. 처음엔 환경적인 이유로 채식을 시작했는데, 몸에도 좋은 변화가 나타나니 더욱 열심히 동물성 식품을 끊어낼 수 있었다. 채식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단백질은 어디서 얻어?'인데, 사실상 우리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모두 채소에서 얻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현미, 콩, 브로콜리 등이 있다. 또한 현대인이 단백질에 집착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단백질은 그리 많지 않다. 일정 수준 이상 넘어가는 고단백 식단은 오히려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책 '무엇을 먹을 것인가' 중).


동물을 사랑하던 나는 채소를 먹으면서 동물 윤리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다. 우리가 착취해서 먹는 동물들이 사는 공장과, 키워지는 과정, 도살되는 과정들을 보게 되니 더 이상 이것을 음식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돼지와 소의 눈을 바라보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그들의 애타는 몸부림은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었다. 그야말로 잔혹했다. 그 후로 보이는 정육점의 고깃덩어리들은 나에겐 동물의 사체, 핏덩어리였다. 비건이 되기 전에는 개 식용 반대도 할 수 없었다. 개는 안 되고 소는 괜찮은 논리적 모순이 너무 커서 혼란스러웠다.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를 읽고 해소됐다.) 지금은 당당히 개 식용을 반대하고, 동물 보호법 강화를 위한 운동에 힘을 보탠다.


도살장 비질.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 음식이란 무엇일까. 그저 순간적 쾌락을 위한 도구를 넘어, 지구의 존재를 사랑하고 또 내 몸을 돌보고, 마음이 충만해지는 삶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짧게 살다 가게 될 인생인데, 지구에 유해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말라고 배워왔는데, 우리는 너무 해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본단식이 시작되었다. 어제 마그밀(변비약) 5알을 먹고 잤는데 아침에 아무런 증세가 없다. 밖에 나가기 전에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싶은데 언제쯤 신호가 오려나.


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입이 심심하다. 공복에는 많이 적응이 됐는지 큰 배고픔이 없다. 효소차와 허브차를 틈틈이 마시고 있다.


낮 일정이 연기돼서 도서관에 갔다. 근육이 빠지지 않으려면 움직이라고 해서 걸어갔다. 도서관에 가면 항상 설레는 마음이 든다. 책을 읽다가 저녁 회의를 가려고 나왔다.


낮에 마그밀을 먹은 게 반응이 올까 싶어 집에 들렀다. 화장실을 갔는데, 딱히 무른 변이 아닌 평소와 같은 변을 보았다. 저녁 회의 때 반응이 오면 어쩌지.. 걱정이 들었지만 일단 나갔다.


회의가 끝난 후, 6시 반. 동료들이 저녁 식사를 만드는 냄새가 난다. 7시 반에 또 회의가 있는데, 그 사이에 저녁 시간이 낀 것이다. 야채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구운 야채를 진짜 진짜 좋아하는데 이 냄새를 버티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아까도 마그밀을 먹었으니 언제 신호가 올지 모르겠다. 밤 회의는 집에 가서 온라인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다행히 집에 가자마자 무른 변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머리가 가렵지 않다. 수영을 한 이후로 가려움증과 비듬이 많이 생겨서 최근에는 마지막에 식초로 헹구는 것도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정도 해봤는데 뚜렷한 효과가 없었다. 하루만 안 감아도 온 두피가 너무 가렵고 괴로웠는데, 하루 반 정도 지난 지금, 전혀 두피가 가렵지 않다. 단톡방에 얘기하니 어떤 분은 무좀이 다 사라졌다고 한다.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으나, 아마 두피로 노폐물이 배출되고 있는 게 아닐까. 단식 기간에는 물로만 머리를 감아보라고 해서 물로만 감았다. 헹굴 때만 살짝 식초를 탔다. 식초물로 머리를 감고 나면 식초 냄새가 남는데, 이번에는 남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신기하다. 단식의 최대 수혜는 비듬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잠들기 전, 배가 찬 느낌이 들어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채웠다. 따뜻한 온기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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