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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Jan 02. 2024

단식 첫째 날

단식을 왜 해?

단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단식을 왜 해?"라는 반응을 제일 먼저 보인다.


단식이란 것은 진짜 치료가 필요하거나, 혹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할 때나 하는 것쯤으로 여겨진다. 나 또한 그랬다. 잘 먹는 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인데, 단식이라니. 대체 이런 것을 왜 하기로 결심했는지 회상해 보았다.


음식을 끊는 것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본 계기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였다. 여수에 사는 외할아버지는 101세의 나이에도 허리가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바르고, 식욕도 충분하여 몇 년은 더 사실 것 같아 보였다. 할아버지 댁을 오랜만에 방문한 손주들의 손을 쥐는 손아귀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반면 외할머니는 점점 치매 증상이 심해지고, 걸음걸이도 힘들어져서 병실에 누워계셨다. 방에 들어앉아있으면 밖으로 엄마의 걱정스러운 통화 목소리가 종종 들렸다. 별 것 아닌 말들에도 불안함이 묻어있었다.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 누워계신 외할머니의 병문안을 다녀오신 외할아버지가 그날부터 곡기를 끊으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다 며칠 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이었다. 장례식에 처음 가봤다. 아니 정확히는 장례식에 3일 동안 머물며 모든 과정을 보았던 경험은 처음이었다. 발인 날 만난 외할아버지는 생전의 모습과 같이 꼿꼿했고, 앙다문 입은 완고했으며, 깨끗한 피부는 고결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날 목격한 죽음은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깔끔하게 끝맺는 방법이었다. 


그 후 나에겐 답이 없는 질문이 하나 생겼다. 죽음이라는 것을 단식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처럼 찾아오는 죽음은 그래서 더 두렵고, 그 이후를 모르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어진다. 왠지 죽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우울하고,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은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과 불안을 심어준다. 


그러나 내가 잘 먹는 것을 인생의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잘 살기 위함도 맞지만 사실은 잘 죽기 위함이 아니었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나이 들어서(아니 요즘은 30대 젊은 암환자도 많다던데) 아프고 싶지 않고, 기계에 의존해 연명하는 치료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일례로 안락사를 존엄하게 죽을 권리로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곧 내가 아파서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지해야 하는 상황, 혹은 치매에 걸려 무슨 행동을 보일지 모르는 상황만큼은 모두 피하고 싶어서이지 않을까? 인생을 온전히 잘 살고, 은퇴한 후에 안온한 노년 생활을 즐기다가 정신이 멀쩡할 때 편안하게 떠나는 것. 이것이 모두가 원하는 인생이 아닌가?


물론 미래에는 안락사가 합법화되고, 많이 대중화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허나 죽음을 선택한다면 단식이라는 것도 방법 중 하나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보여질 나의 본능적인 모습은 두려움, 분노, 우울, 체념 이런 것들일까? 아니면 다른 모습일까? 욕구를 거스른다는 것이 그 어떤 초월적인 정신의 힘일까? 나는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본능에 못 이겨 단식을 포기하고 다시 탐식하게 될까? 단식을 시작하며 여러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솔직히 비건을 하면서 먹고 싶은 것에 대한 유혹을 많이 뿌리쳐본 경험이 있는지라, 욕구를 참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10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으니까. 저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확신은 없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나의 경험과 몸과 마음의 상태를 기록하기로 했다.

이 일기가 배고파, 힘들어, 화가 나 등등 그저 원초적인 욕구의 나열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조차도 후에 돌아보면 의미 있을 테니까.






3일 절식 - 3일 단식 - 7일 회복식으로 총 13일의 일정이다.


단식을 시작하기 전 회충약을 먹었다. 유기농 야채를 많이 먹는 사람들은 위에 회충이 있을 수 있으며, 공복 시 회충들이 위를 뚫을 수도 있다고 한다.


단식 첫날.

오늘은 먹던 밥 양을 점점 줄여나갔다.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


순서대로 아침, 점심, 저녁

오전 8시 : 아침 4/5 공기, 오후 2시 : 점심 3/5 공기, 오후 7시 : 저녁 2/5 공기.

반찬은 된장국과 물김치. 기름진 것, 술, 카페인은 금지.


점심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다.

점심 먹고 세 시간쯤 후부터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보통같으면 약간 출출한 정도일 타이밍인데 지금은 오늘 먹은 게 전부 소화된 것 같다.

하필이면 내가 한 2주 전에 주문한 제주감귤이 오늘 배송 왔다. 단식 전에 미친 듯이 먹으려던 계획이었는데 배송이 늦어 실패했다. 남편한테 상태 괜찮으면 2주 후까지 좀 남겨달라고 했다. 냉장고에 아직 남아있는 먹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과랑 각종 나물들, 페스토 소스 얘네가 2주 후까지 살아있을까? 다시 냉장고 문을 닫는다.


배가 고플 땐 산야초 효소음료를 마시라고 해서 야금야금 먹고 있다. 물은 꼭 2리터를 마시라고 했는데, 그만큼 먹은 지 모르겠다.


머리 아픈 회의가 길게 있었는데 정보를 받아들이기 급급했다. 의견을 내기가 힘들었다. 그냥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힐 뿐이었다.


절식 3일 동안이 제일 힘들다던데,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배가 고프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생각나는 게 아니라, 그냥 뭐든 먹고 싶다. 하지만 미친 듯이 뭐가 먹고 싶어!! 이렇다기보다는 약간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도 든다.


다른 사람이 오늘 먹은 식단표를 단톡방에 올렸다. 두부도 먹었고, 배추도 먹었네? 나도 내일 사 와야지. 내일은 밥대신 죽을 먹으라고 하는데, 좋아하는 야채를 다 썰어 넣고 죽을 만들어야겠다.


하, 다 모르겠고 어서 그냥 아침이 왔으면. 배고프니까 그만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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