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것은 곧 잘 죽는 것
단식에 도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내 몸에 쉬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이다. 거리를 걸으면 음식 냄새가 내 코를 유혹하고, 핸드폰을 켜면 음식 광고가 내 눈을 유혹하는 시대에 살면서 배고픔을 느끼는 것에 참을성이 없어졌다. 한시라도 배부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먹고 또 먹는다. 밥 먹고 조금 소화되면 디저트를 먹고, 또 때가 됐으니 밥을 먹고, 당 떨어진다며 군것질을 한다. 언제라도 마트에 가면 먹을 것이 있으니, 먹거리를 구하기 힘들던 시절의 위기감을 내 몸은 느낄 수 없었다.
그나마 나는 비건을 지향하면서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기에 배고픔을 참고 집에 가서 요리를 해 먹는다거나, 과자자를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과일을 먹는 등 건강한 식습관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비건식을 하니까 약하고 살 빠졌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인지 매 끼마다 푸짐하게 대여섯 가지 반찬을 꺼내놓고 먹어야 허기가 채워졌다. 위는 항상 채워져 있었고, 식탐을 부리다가 뒤늦게 차오르는 배를 부여잡고, 무거워진 몸을 일으킨다. 적당히 먹으면 괜찮았을 텐데,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 왜인지 더 기분이 안 좋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영양소만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독소도 섭취하게 된다.
미세플라스틱은 이제 바닷속 물살이 뿐만 아니라, 사먹는 생수, 빗물과 대기 중에서도 검출이 된다. 단순히 나 혼자 일회용품을 안 쓴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야채를 재배할 때는 매년 땅의 유기물을 파헤치는 경운을 함으로써 화학비료를 더 많이 넣게 되고, 잡초와 병충해를 피하기 위해 다량의 농독약*을 살포한다. 토양이 생명력을 잃어갈수록 더 많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투입된다. 이는 곧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된다.
닭, 돼지, 소 등 우리가 주로 먹는 '육류'를 기를 때에는 유전자변형 옥수수와 대두로 만든 사료를 먹인다. 밀집사육으로 인한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과도한 양의 항생제를 투여한다. 그럼에도 가축들은 일상적으로 피부병이나 염증, 고름을 가지고 산다. 이는 곧바로 우리 입 속으로 들어간다.
게다가 몇몇 식물 또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로 미량의 독소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바로 섭취하는 것과 먹이 사슬의 여러 단계를 거쳐 많은 종류의 독소가 쌓이고 쌓여 육류로 섭취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밀키트와 수많은 냉동식품의 뒷면을 살펴보면 수많은 이름모를 화학물질이 들어가 있다. 유통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처리한 방부 물질이 대부분이다.
이 정도만 살펴봐도 현대인들 중 우리 몸을 살리는 '살아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죽은 음식'과 온갖 독소를 일상적으로 섭취하며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건강하게 길러진 음식을 통해 필요한 영양분만 섭취하고 몸을 쉬게 하기, 몸을 가볍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기. 스스로 이를 조절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더 활기찬 삶을 얻게 되지 않을까? 소식은 노화도 늦춘다고 한다.젊을 때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 노년에 병실에서 수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받느라 애쓰는 삶은 아무리 생각해도 우울하다. 내 두 발로 땅을 디딜 수 없고, 내 폐로 숨을 쉴 수도 없고, 내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전편에서는 잘 죽고 싶어서 단식을 한다고 했지만,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이다. 사는 동안 잘 살아야 죽을 때도 무탈히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농독약 : 농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을 죽이는 화학무기를 제작하는 과정해서 탄생하였고, 지금은 곤충과 미생물을 죽이는 살충제로 사용되고 있기에 농독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2일 차 아침. 어젯밤 배고픔에 괴로워했던 나는 어디 갔는지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 정신도 맑은 느낌이다. 그래도 식단에 맞춰 밥을 먹어야 하니, 쌀을 씻고 야채를 썰고 밥솥에 죽을 올렸다. 밥솥이 일을 할 동안 잠시 내 작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헌데, 불리지도 않은 생쌀을 넣고 죽을 끓이자니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오지 않는다. 거진 1시간 반을 기다렸나, 오늘 먹을 죽이 완성됐다.
결국 10시가 다 되어서야 늦은 아침을 먹게 되었다. 죽 4/5 공기, 물김치, 된장국, 토마토장아찌
어제 단톡방에 식단을 올려준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양한 반찬을 곁들인 것을 보고 나도 한 가지 정도는 추가해도 되겠거니 하며 소심하게 작은 종지에 반찬을 담아 상에 올렸다.
흰쌀죽은 아무리 간을 해도 맛이 없었다. 그렇다고 소금을 들이부을 수도 없는 일이니 된장국과 물김치를 들이키며 부족한 간을 보충했다.
아침을 먹고 고작 3시간 여 지났을까? 다시 배가 고파진다. 이렇게 빨리 배가 고파지는구나. 하지만 동시에 손발이 시리고 잠이 쏟아져서 낮잠을 잤다. 아침 공복에는 정신이 맑다 싶었는데,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바로 잠이 온다.
1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어제 단톡방에서 어떤 사람이 올린 두부 된장국이 생각나서 두부를 사러 한살림에 갔다. 집에 남아있던 애호박과 팽이버섯, 두부를 넣고 물에 된장을 더 풀어서 끓였다.
점심은 죽 3/5 공기, 물김치, 된장국, 콩조림
어느 정도 허기는 채워졌으나 충분하지 않은 느낌이다. 눈앞에 보이는 고구마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한 조각 떼어먹었다. 그리고선 효소물을 틈틈이 마시면서 허기를 달랬다.
저녁은 죽 3/5 공기, 물김치, 된장국, 토마토장아찌, 그리고 두부 한 조각.
(아침, 점심, 저녁이 별로 다른 사진 같지가 않다.)
앞에서 남편이 돌솥비빔밥을 먹는 모습을 멍하게 쳐다봤다. 맛있겠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처럼 계속 움직이게 된다. 뭐라도 집중해서 하면 괜찮겠는데, 머리를 쓰는 일은 못하겠다.
내일 점심부터는 미음만 먹고 하루를 버텨야 한다. 가능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