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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든 소녀들의 잔혹동화

건슬링거 걸

by 작중화자

내 짝사랑은 처참했다.

거절당한 사랑 고백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된 채로 남았지만, 그 또한 10대의 숙명이었다.

그의 마음은 그의 것이었고, 어차피 나는 또 다른 남학생을 좋아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어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소녀는 돌려받지 못한 마음을 향해 총을 겨눈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건슬링거 걸>(2003)은 <카드캡터 사쿠라>(1998)와 <몬스터>(2004) 등 수많은 명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연출의 명가’, MADHOUSE의 작품이다.

작가 아이다 유의 동인지를 원작으로 제작된 <건슬링거 걸>은 연출은 물론, 뛰어난 작화와 섬세한 음악으로 수작으로 꼽힌다. 정작 원작 작가는 전개 방향에 불만이 많았다고 하지만, MADHOUSE가 참여한 TV판 1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정치대립이 극에 달한 이탈리아, 정부는 공익법인을 표방한 비밀첩보기관 ‘사회복지공사’를 만들어 극우 세력들을 제거하고 있다. 그 임무를 맡은 건 10대 초중반의 어린 소녀들이다.

장애나 불치병을 가진 소녀들은 탄소섬유 골격과 인공 근육 시술을 받은 의체(사이보그)로 만들어져 암살자로 이용된다.

조건강화라는 세뇌와 약물통제로 신체능력이 극대화된 소녀들은 의체를 관리하는 담당요원과 ‘프라텔로(남매)’가 되어 임무를 수행한다.


인체 개조와 세뇌는 ‘어릴수록 좋다’는 것이 작품 속 설정으로, 윤리적인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복종을 위해 어린 소녀가 담당관에게 애착을 느끼게끔 유도되는데, 바로 이 부분이 그들을 파국으로 이끈다.

그리하여 등장인물들이 형성하는 유대는 애니메이션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일가족 살해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 의체가 된 헨리에타는 담당관 죠제에게 ‘동생’이다.

죠제는 공사의 거듭되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헨리에타에 최소한의 조건강화만 설정한 채 그녀를 평범한 소녀처럼 대한다. 별자리를 알려주고, 카메라를 선물하면서 말이다. 그는 헨리에타에게서 죽은 여동생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에타는 다정한 죠제에게 애착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죠제는 그녀를 살인기계로 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햄스터처럼 귀엽고 천진한 헨리에타가 죠제를 보며 볼을 붉히고,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어 동동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의 그것이다.


그러다 그녀가 총을 잡는 순간, 홍차와 케이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는 사라진다. 날아오는 총탄을 팔로 막으며 어떤 두려움과 망설임도 없이 표적을 쏴 죽이는 킬러가 된다.


헨리에타가 죠제의 ‘동생’이라면, 리코는 쟝의 ‘도구’, 트리엘라와 클라에스, 안젤리카는 담당관의 ‘딸’ ‘제자’에 가깝다.


쟝은 친동생인 죠제와 달리, 파트너인 리코를 철저히 살상기계로 여긴다. 의체가 전투기능을 상실하면 언제든 ‘폐기’하고 새로운 소녀를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한 때 불치병으로 병상에만 누워있었던 리코는 쟝에게 맞아 입술이 터져도 그저 살아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복종만 있을 뿐, 인간적인 애정이라고는 없는 두 사람은 모순적이게도 프라텔로 중 가장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반면, 9화에 처음 등장하는 엘자는 의체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여준다.

담당관 라우로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엘자는 그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라우로를 살해 후 자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완벽하게 구속할 수 없었던 사람의 마음은 끝내 뒤틀리고 말았다.


사이보그로 개조되었지만 소녀들에게는 아직 인간성이 남아있다. 담당관에게 선물 받은 곰인형에 일곱 난쟁이의 이름을 붙여주고, 책을 읽고 정원을 가꾼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예민한 감수성이 세뇌와 약물로 통제되면서 어떤 혼란을 낳는지 애니메이션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한편, 소녀를 도구로만 보지 않는 담당관들은 복잡한 고뇌에 빠진다.

제약을 강화하면 통제는 쉬워지고 전투능력은 향상되지만, 그 대가로 소녀의 생명은 소모되고 인간성은 잃게 된다. 담당관들은 임무수행과 자신의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렇듯 서로 다른 유대 속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의 심리가 정교하게 묘사된다.


비극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소녀와 담당관들의 운명, 작품의 차분하지만 음울한 색조는 오히려 그 비참한 종말의 기운을 더욱 짙게 만든다.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흐르는 잔잔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는 절제된 누아르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중 <TEMA>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불행한 결말의 예감을 가장 잘 반영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애잔한 선율과 대조적으로, <건슬링거 걸>의 또 다른 매력은 총기 액션에 있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녀들은 모두 총기를 다룬다. 그래서 다양한 총기류와 발포 장면들이 꽤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화려한 격투장면은 없지만, 고급 악기 케이스에서 총을 꺼내 성인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긴박감 있게 그려진다.

특히 1화에서 폭주하는 헨리에타의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프라텔로로 엮인 소녀와 담당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반복되는 제약과 약물은 소녀들을 갉아먹는다. 헨리에타는 미각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안젤리카는 기억을 잃어간다.

마지막화에서 죽어가는 안젤리카와, 쏟아지는 유성우 아래서 노래하는 소녀들의 교차 편집은 인상적이다. 그들의 미래도 안젤리카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예견된 끝. 결국 소녀들은 죽을 것이다.


소녀들이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환희의 송가’는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음악 중 가장 힘차고 웅장하지만 이렇게 슬프게 들릴 수가 없다.


관계의 파국, 삶의 비극적 종말.

<건슬링거 걸>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의도적으로 윤리적 불쾌함을 자극하는 설정과 때때로 보이는 어린 소녀들의 순수함은 작품의 비극성을 부각한다.




소녀들에게 동화 같은 이야기는 없다.

시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다가 자신도 서서히 죽어가는 비운만 있을 뿐이다.

그들의 동화를 지켜주고 싶은 어른들은 무력하다. 마음껏 사랑할 수도, 사랑을 받아줄 수도 없다.


희망이라고는 없는 그들의 잔혹동화에 남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본질이다. 사랑과 의미를 갈망하는 그 본능 말이다.


총성만이 메아리치는 세계 속에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환희의 송가’는 소녀들의 마지막 꿈이자, 이 잔혹한 세계를 위한 진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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