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마늘종 볶음밥의 의미

by 고요

"이따 저녁에 뭐 먹지?"

신랑이 묻는다. 금요일에 터져버린 허리디스크로 비실비실 하며 하루를 보낸 아내를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오전 키즈카페를 다녀오고 점심은 근처 쌀 국숫집에서 먹은 후였다. 신랑이 배려해준 시간만큼 쉬었으니 이제는 조금이라도 나의 몫을 할 차례인데 컨디션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섬주섬 냉장고 속을 들여다보니, 엊그제 사놓은 마늘종이 야채칸에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마늘종 볶음밥을 해야겠다. 두 아이들이 모두 잘 먹는 메뉴이기에 내게는 효자 재료 중 하나이다. 다만, 신랑은 그 메뉴를 먹지 않는다. 나를 배려해 준 신랑에게 미안하지만, 아이들 위주의 메뉴로 상을 차리기로 결심하고는 밥을 안쳤다.



칙칙폭폭. 밥이 지어지는 소리는 경쾌하다. 작은 열차가 내 곁을 지나가며 연기를 뿌~하고 뿜듯, 뜸을 들이며 뿌~소리를 내자 이내 고소한 밥 향기가 부엌에 퍼진다. 요리를 하는 것이 귀찮고 싫다가도 이 귀여운 밥솥의 소리에 이내 마음이 풀어지곤 했더랬지.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기계를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위안을 얻곤 했다. 칙칙폭폭. 힘이 든 날도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이 밥솥은 칙칙폭폭이란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갓 지은 따끈한 밥을 내어주니 말이다.



웍을 꺼내 기름을 두른다. 기름이 살그머니 데워질 동안, 나는 마늘종을 한 움큼 잡아 잘게 썬다. 똑똑 똑똑. 경쾌한 도마 위 칼 소리와 함께 가늘고 긴 마늘종이 잘게 잘게 쪼개진다. 긴 원기둥에서 작은 원이 되는 3차원에서 2차원이 되는 듯한 그 순간은 마법이다. 나는 칼을 들고 불을 지닌 마법사! 이 순간만큼은 나는 이 부엌을 다스리는 온전한 마법사이다.

3차원에서 2차원으로 바꾸어놓은 마늘종들을 바라보며 '이야. 기똥차게도 잘게 잘 썰었네.' 흐뭇해하며 기름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기름 위로 촤르르 잘게 썬 마늘종을 털어 넣자, 초록 빛깔이 더 영롱하게 투명해진다.

뜨거워진 기름 위에서 더욱 아름다운 초록, 좀 더 밝고 빛이 들어간 듯한 그 투명히 비칠듯한 초록으로 변하는 이 순간은 지금 이 메뉴를 요리할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야채가 본연의 색을 지니다 물로 씻고 칼로 쳐내지고 뜨거운 불에 들어가는 수모를 겪으며 내는 가장 아름다운 빛! 때로는 인간이란 존재도 이런 시련 앞에서 잘려나가 프라이팬 속에 들어간 마늘종처럼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은 위로가 된다.



마늘종의 빛이 영롱해지고 조금 물러질 무렵, 달걀을 톡! 깨서 넣고 주걱으로 비빈다. 스크램블을 하듯 말이다. 마늘종과 달걀이 서로 엉켜 붙어 익을 때, 갓 지은 밥을 퍼 프라이팬 안에 넣는다. 소금으로 간을 하며 밥을 볶는다. 이것으로 완성이다. 이렇게나 간단한 마늘종 볶음밥을 아이들이 즐겨 먹어준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 행운이다.

이제 밥을 맛깔나게 풀 시간. 이는 식사 준비과정을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예쁜 그릇을 찾아 펼쳐놓는다. 작은 밥그릇에 볶음밥을 꼭꼭 눌러 담는다. 그리고 예쁜 그릇 위에 동그란 밥그릇 모양이 나오도록 휙 뒤집어 밥을 올린다. 오늘은 어떤 토핑으로 색을 넣을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뭐가 있나? 보물을 캐듯, 그날의 냉장고 속을 뒤진다. 어떤 날은 방울토마토가 나오고, 어떤 날은 브로콜리가 나오고, 그도 없는 날은 그냥 있는 과일을 예쁘게 썰어 같이 올려놓는다.

상을 차릴 즈음되면, 이내 저만치서 보고 있던 아이들이 기웃거린다.

"꺄. 내가 좋아하는 볶음밥 나왔다."

"자~ 이제 자기 수저는 자기가 가져가세요."

"네!"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부엌 서랍을 열고는 오늘 먹을 숟가락과 포크를 고른 아이들은 신나게 가 자리에 앉는다. 나는 오물오물 움직이는 그 입이 사랑스러워서 한참을 바라보다 살그머니 고백을 한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아이들은 활짝 웃으며 '우리 엄마 최고!' 한다.



부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다스리지 못할 때에는 이런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요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요리를 하는 시간이 아깝다거나 귀찮다고 느끼지 않고 그저, 나의 귀한 돌봄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가 채워지고 그들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요리를 하는 나의 손은 귀찮음과 짜증 대신 고귀함과 존중이 담겼다.

사람을 살리는 일, 귀찮고 티 나지 않는 일,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리고 너무나도 중요한 일. 나는 그것을 희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고귀한 일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것은 어제의 양배추 통구이이기도 하고 오늘의 마늘종 볶음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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