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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책방 Apr 12. 2024

경찰을 불러야지. 너 바보냐?

토요일 오후 10시, 강남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대기하는 사람이 40명은 넘어 보였다. 0000번 버스가 온다. 나까지 타길 바랐지만 어림도 없었다. 배차 간격은 20분이다. 높은 구두에 발가락이 아려왔다. 한 발씩 뒤꿈치를 들어 올리며 겨우 참고 있는데 앞 차가 떠난 지 5분도 안되어 다음 버스가 도착했다. 게다가 자리에 앉기까지! 운이 좋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20분쯤 지났을까. 이상한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당시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남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피하지도 않고 뚫어져라 보는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뭐지, 나 보는 거 맞나? 왜 쳐다보지?’

내가 앉은 의자 근처에 자리가 생기자 그 남자가 옮겨 앉았다. 이건 분명 이상했다.

아직 내리려면 10 정거장은 더 가야 하지만, 그 남자가 나를 보고 있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내리는 척 버스 뒷문에 섰다. 그 남자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릴 준비를 했다. 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건 분명히 나를 쫓아오는 거 같아. 어떡하지’

온몸이 뻣뻣해지고 손발이 얼음처럼 차가워 질만큼 긴장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이 가장 많이 내리는 정류장에서 내리자.’

우리 집은 주거단지라 그 밤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내리자마자 큰 비디오 대여점이 있는 정류장에서 내리기로 결심하고 뒷문 앞에 섰다. 이번에도 나를 따라 일어선다. 뒤를 돌아보고 싶지만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우선 이 버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치-익’ 뒷문이 열렸다. 구두 때문에 아팠던 발가락 통증도 잊은 채, 내리자마자 비디오 대리점으로 달렸다.

‘어떡하지. 엄마를 부를까. 엄마도 위험해지면 어쩌지.’



비디오 대여점으로 들어가자마자 비디오가 잔뜩 꽂혀있는 커다란 비디오장 뒤로 몸을 숨겼다.

5분 정도 흘렀을까. ‘이제 갔겠지,,’ 머리를 살짝 내밀어 비디오가게 밖을 본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 남자는 가지 않고 가게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무서워서 머리도 몸도 굳어 버렸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띠리링”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성인 남자들이다. 비디오와 만화책을 고르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야, 너 밤에 여기서 뭐 하냐??”

휴,,, 살았다. 고등학교 동창을 여기서! 이 시간에! 3명이나 만나다니,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려줬다.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지. 너 바보냐?” 경찰 부르자. 우리가 데려다주겠다. 이야기하며 잠시 한 숨 고르고 있다가 밖을 봤다. 그 남자가 사라졌다!!


내가 사람들과 있는 걸 보고 돌아간 걸까. 아무튼 친구들과 함께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그날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갔다면, 다른 정류장에서 내렸다면,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때보다 건장해진 덩치와 아줌마 멘털을 장착한 지금도,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밤에 혼자 다니는 건 아직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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