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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책방 Apr 15. 2024

곱슬머리가 싫어하는 날씨는?

대학교 친구의 결혼식. 평소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를 좋아한다는 핑계 삼아 대충 편하게 입고 다니지만 결혼식은 ‘꾸꾸(꾸민 듯 꾸민)’를 해야 하는 날이다. 평생 친구의 결혼 앨범 속에 남을 내 얼굴과 연락하지 않던 대학교 동기들도 만나게 되는 날이니까 평소보다 신경 써서 화장과 머리에 공을 들여야 한다. 특히, 내 곱슬머리.     



곱슬머리는 어떤 날씨를 가장 싫어할까? 바로 비바람 부는 날이다. 귀 밑 3센티, 단발머리 중학생 때부터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고 있다. 매직을 안 하면 앞머리가 라면처럼 구불구불해진다. 뒷머리는 질세라 곱슬거리고 푸석푸석한 모질을 자랑이라도 하듯 붕~ 떠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아무리 매직을 해도 앞머리는 아침마다 펴줘야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못된 고집을 꺾을 수 있다.      

비 오는 날은 아무리 높은 열로 머리카락을 고문을 해봐야 소용없다. 높은 습도, 비를 잔뜩 먹은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다시 구불거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안 돼! 손으로 작은 우산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도록 안간힘을 써보지만 역시나 오늘도 졌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이유는 더 많다. 싫어하다 보니 더 싫어진다. 우산도 거추장스럽고 바지 밑단에 젖는 것도 찜찜하다. 자동차를 탈 때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는 것도 못마땅하다. 비 오는 날은 외출도 꺼려진다.

“넌 참 싫은 것도 많다. 비 좀 오는 게 뭐라고 그렇게 싫어하냐.”

남편의 한 마디에 ‘내가 예민한가. 비에 젖을 수도 있지. 물이 튈 수도 있고. 별거 아닌 걸로 나만 유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려고 노력해 봤다. 창이 큰 카페에서 비 오는 걸 바라보며 촉촉한 노래를 들어 보기도 했고 인기 있는 레인부츠를 사서 신어 보기도 했다. 싫으면 싫은 거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 그게 내겐 비일 뿐.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지만 나는 괜찮은 것도 있지 않은가. 마음이 가지 않는데 굳이 좋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은 게 잘못되거나 틀린 것도 아니고, 내가 비를 싫어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싫은 게 있다는 건 당연한 감정이고 그런 마음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인정하고 수용하니 오늘 내리는 비가 조금은 덜 불편하기도 하다. 남편에게 한 마디 해줘야겠다. 넌 싫은 거 없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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