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아......"
"하아아... 아 진짜 왜 자꾸 풀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우리 집 (사)춘기의 한숨은 누굴 위한 것일까요, 분명 수학 문제집을 쳐다보며 수학 문제집에게 한숨을 내쉬었는데, 거실에 있는 제가 땅으로 꺼질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수업 시간에만 집중하고 하교 후에는 책 읽는 아이로 키웠는데, 중학생 되니 '공부'라는 말을 자꾸 하게 됩니다. 무엇이든 습관을 기르는 과정에서는 불쑥 올라오는 핑계를 견뎌낼 뚝심이 필요하네요. 평소의 일과에 수학 문제집 하루에 N장만 얹었을 뿐인데 불평하는 아이가 불편해집니다. 욱, 하고 올라왔지만 꾹, 하고 눌렀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일찍부터 습관을 잡아주지 못한 게 미안해지네요. 게다가 아이는 사춘기니까 이해합니다.
아이 옆으로 슬쩍 가보았습니다.
"우리 춘기 중학생이 되니까 수학 어렵지?"
"하아아아아아아... 이걸 왜 이렇게 만들어서 왜 풀어야 되는지 모르겠어."
'하아......'
그냥 뭣도 모르고 하자고 하면 열심히 풀던 일곱 살 춘기가 그리워집니다. 감정적으로 나섰다가는 잔소리 폭격기가 되어 아이에게 수학을 포기할 빌미가 될까 걱정이 스칩니다. 인내를 마음에 새길 시점이 왔네요.
춘기야, 엄마는 어렸을 때 별명이 '일차방정식'이었어.
일차방정식 천재였거든.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 피는 못 속이거든.
이제는 논리적인 설명도, 키도, 힘도 밀리는 엄마는 아들이 수학이 싫어하게 될까 봐 거짓말을 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춘기가 "그래?" 하며 힘을 내는 모습을 보니 콩닥 뛰던 심장도 여유를 찾습니다. 착한 거짓말이 되었네요. 착한 거짓말이 된 순간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새까맣게 잊고 말았어요.
이틀 뒤, 설거지를 하고 의자에 앉자마자 춘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 이것도 좀 가르쳐주세요."
'아유, 내가 가르칠 게 뭐가 있다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어요. 아이의 책상에는 일차 방정식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옵니다.
"엄마 별명이 '일차방정식'이잖아. 나도 계속 풀다 보니까 엄마 별명을 이해할 것 같아. 재미있어."
"그... 렇지?"
"이 문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엄마가 가르쳐 줄 수 있어?"
"그... 게 말이지."
이틀 전 아이에게 한 착한 거짓말이 아이에게는 어쨌든 '계속 풀 결심'을 할 계기가 되었지만 이렇게 검증을 받게 될 줄을 몰랐어요. 방법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손가락으로 문제를 한 자, 한 자씩 정성을 들여 읽어 보았습니다. 가급적 천천히. 문제를 다 읽어갈 때쯤 마침 춘기가 "아, 알겠다!"며 유레카를 외칩니다. 제 마음도 기뻐하며 메아리쳤습니다. '유레카!'
공부가 뭐길래.
문득 제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 떠오릅니다. 바로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이지요. 홍진경 님은 딸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문제집을 풀며 공부를 하다가 턱, 하고 막혀 이 채널을 개설했다고 해요. 와, 열정! 그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진경 언니의 열정은 '구독'과 '좋아요'로, 제 열정은 없던 별명을 만드는 '창조 과거'로 튀어나왔습니다.
얼마 전 춘기의 일차방정식 진도가 끝났습니다. 이제 '일차방정식'이라는 별명은 쓸모를 잃고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지요. (누구든 '일차방정식' 별명이 필요한 분은 별을 따서 쓰세요.) 간사한 사람의 마음도 거짓말을 싹 지우고는 아무 일이 없었던 듯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지요.
그런데, 들썩들썩 마음이 다시 움직입니다.
이왕이면 '함수'였다고 할걸!
춘기에게 수학 공부를 시키려다가 별명이 한 트럭이 되는, 프로 과거 조작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춘기에게 힘이 되었으니 필요한 순간에 또 써먹어야겠습니다. 내 별명은 함수!
글을 쓰고 있는데, 춘기가 안내장 하나를 쓱- 내밉니다.
학교에서 보낸 <알리는 말씀>에는 '공부 스트레스'를 주제로 양면을 빽빽하게 채운 글이 있네요. 요약해서 옮겨 적어 보겠습니다. <알리는 말씀>은 교육부와 한국정신건강지원센터가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에 의뢰하여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2022년 4월 약 34만 명의 초등학교 학부모와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부의 조사 결과, 10명 중 4명 이상이 코로나19 이후 학업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응답했습니다.
1. 인간과 함께 존재하는 불안: 불안은 피하고 싶은 감정이지만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불안을 느끼는 역치 수준(지점)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2. 자녀의 학습을 현명하게 돕는 방법:
① 자녀도 학습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세요.
② 학습의 양을 늘리고 수준을 높일 때는 자녀와 충분히 소통해 주세요.
③ 부모님의 강요보다는 학습에 대한 자발적 동기가 필요합니다. (과정에 대한 칭찬)
④ 충분한 수면은 집중력 향상, 장기 기억에 도움이 됩니다.
⑤ 성적만이 자녀를 판단하는 가치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3. 공부의 목표는 자녀가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내적인 성장'에 있습니다. 갈등이 생기더라도 아이와 소통하면서 자녀의 자존감을 지켜주시고 곁에서 응원해 주세요.
오늘은 아이에게 더 사랑을 표현하는 하루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