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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l 07. 2023

아들과 키를 재는데 발뒤꿈치를 들었다

아들 몰래

  솔직하게, 키를 재고 싶었지만 발뒤꿈치가 올라갔다.

  진실되게, 키를 재고 싶었지만 발뒤꿈치를 올렸다.




엄마, 키 재 보자



  아들의 목소리에 한껏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자신이 있다는 소리겠지요. 키를 재자고 했는데 도전장을 받은 느낌이 듭니다.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군요. 하기야 작년부터 아들이 주변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드는 말은 "곧 엄마 키를 따라잡겠네."였습니다. 어디 작년부터였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재작년에도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것 같네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엄마의 키가 마음속 목표가 된 모양입니다. 아들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날이 올 줄을 알았지만 먼 훗날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가까운 시일에 일어날 것 같습니다. 아들의 목소리에서 요 근래 어느 날에 우리가 같은 키를 스쳐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같은 신발 사이즈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때는 2년 전, 아들의 급성장으로 반년만 스쳐 아쉬웠지만 말입니다. 운동화 사이즈 230mm를 신던 아들이 여름 방학을 보내고 240mm로 훌쩍 자라 있었지요. 그때는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손가락 세 마디 만하던 발로 세상에 나온 아들이 쑥쑥 자라 이제는 저와 발 사이즈가 같아졌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아들아, 발 사이즈로는 우리가 같은 점을 찍고 있어!"  

  (제가 이런 감탄을 무척 잘합니다만) 일생을 살면서 매 순간 남기는 하고많은 점들 중 아들과 겹치는 점을 찍었다는 것은 정말 감격이었지요.


  현실적인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외출을 할 때마다 운동화를 골라 신을 수가 있었죠. 특히 저는 절대 사줄 생각도 하지 않는, 아이의 숙모가 사주신 새하얀 운동화는 아들보다 제가 더 자주 신었습니다. 원래 내 것인지, 네 것이었는데 내가 신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제가 더 많이 신고 다녔네요. 게다가 발은 자랐지만 아직 어깨가 떡 벌어지지는 않아 웃옷의 사이즈도 비슷해졌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학교를 가면 그의 운동화와 티셔츠를 입고 동네 산책을 나가기도 했지요. 운동화든 옷이든 고르는 재미가 있어 참 좋았는데 그해 가을이 되니 아들은 또 쑥 커버렸습니다.




  얼마 전 춘기네 학교에서는 건강 검진이 있었습니다. 


  "키는 몇이야?"

  "165cm"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제 키를 따라잡지 못한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인지 아들은 이미 제 키를 넘어서 있었습니다. 참 빨리도 자라는구나, 동시에 지난겨울과 봄에는 참 정신없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우리 키 재 보자!



  165cm라는 아들이 키를 재보자고 합니다. 저는 이미 이 키재기의 결과를 알고 있지요. 


  "야, 뭐 하러 키를 재. 엄마 바빠."


  얼마만큼 자랐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아들은 저녁 식사 후 뒷정리를 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키를 재자고 재촉합니다. 

  '아이고, 이눔아! 눈대중으로 눈치껏 재보면 되지!'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있습니다.   


  "그래, 그래, 재 보자!"


  에라,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그날이 되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제 키가 뒤에서 두 번째가 되는 날이지요. 몇 년 뒤에는 이 자리마저 비켜줘야 하지만 말입니다.


  아들과 등을 대고 섰습니다. 여유로운 아들에 비해 저는 지금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머리는 정면을 향하고, 허리는 바르게 세워 숨어있는 1mm라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아들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아들의 덩치가 느껴집니다. 


  "엄마, 장난치지 말고 똑바로 해야 해."

  "야, 걱정을 마. 엄마, 지금 진지해."


  아들이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평평하게 편 손을 올리고 수평을 유지하며 제 머리로 다가오는 그때, 저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올리고 말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들도 모르게.


  "아직도 엄마가 더 크네."

  "......" (거짓말은 잘 못합니다.)

  "2cm 정도만 더 크면 이제 엄마랑 같아지겠다."


  어머나, 발뒤꿈치를 많이도 올렸군요. 실제 키 차이에 2cm를 더하니 발뒤꿈치가 아무도 몰래 5cm나 키웠습니다. 정말 너무하네요. 발뒤꿈치씨.


  부엌 정리를 끝내고 아들 방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들, 사실은 이제 아들이 더 커."

  "아니야. 아까 요만큼 차이 났어."

  "응, 그건 엄마가 발뒤꿈치를 들었기 때문이야."

  "뭐? 어쩐지 이상하더라!"


  키를 재는데 지지 않겠다는 몹쓸 자존심을 세워버렸습니다. 몇 년 뒤 둘째가 "키 재 보자!"라고 도전장을 내미는 날에는 발뒤꿈치를 바닥에 잘 붙이고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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