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사춘기가 분명합니다.
창 밖에 부는 저 나무만큼 흔들립니다.
아이가 6학년에 되면서 사춘기행 티켓을 사두었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열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적지인 사춘기 역에 도착했지요.
손님, 사춘기역입니다. 내리세요.
몇 주 전부터 아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지기도 하고, 굵어졌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앗! 드디어 변성기구나, 생각을 했지요. 변성기라고 해도 남자아이치고는 목소리가 부드러운 편이고 오히려 표현이 늘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랄 보존의 법칙'에 입각한 사춘기 이미지를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사춘기를 오해하고 있었어.'
우리 집 춘기의 사춘기는 감정들이 섬세해지면서 자신의 원하는 것을 훨씬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자신의 마음 상태도 또렷하게 알아차리니 오히려 표현을 잘하게 된 것 같습니다. 꽁하게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앓는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겉으로 표출하는 아이를 보니 사춘기가 좋아지기까지 합니다.
"우리 아이 사춘기 왔어요."
자랑하고 싶어 지네요.
사춘기역에는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어린이 티를 벗은 춘기와는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꽁지는 지금부터 학원을 좀 보내는 게 좋겠어."
"왜?"
"일찍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놓으면 좋을 것 같아."
중학교에 가보니 공부하는 게 힘들어서 동생 걱정까지 하는가 싶었습니다. 꾸준한 습관을 이야기하는 춘기입니다. 그날 참 놀랐지요. 많이 컸구나, 생각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이런 적도 있네요. 아이에게 처음으로 제가 쓴 글을 보여준 날이었지요.
"이 글 어때?"
"좋은데... 누구를 타깃으로 쓴 글이야?"
덧붙여서 초등 저학년이 읽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글을 읽으며 무려 타깃독자까지 생각하는 아주 기똥찬 사춘기를 맞이했습니다.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소재만 커진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유머 코드도 잘 맞아 둘이서만 알아듣고 히죽 웃는 일도 있지요.
매일 아침 아이를 위해 차를 내리고 나눠 마시는 것, 커피를 마실 때 춘기의 컵의 조금 나눠주는 것은 모두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손님, 아직 입구입니다.
쿵!!
어제저녁, 저희 집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분이 계신지요. 강풍이 세게 불어서 닫은 것도 아니고 우리 집 춘기가 쿵, 닫고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 춘기는 방문 닫고 들어가는 일은 없을 거야, 내심 기대를 하면서도 언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나 했더니 이틀 전인 자신의 생일날 저녁에 쿵!! 닫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더라고요.
"문 열어!!" (휴, 다행히 열어줍니다.)
"왜 문을 잠가?" (알면서 물어봤습니다.)
"수학 숙제가 너무 많다고!"
하루 3장의 수학 문제집 분량이 많은 게 아니라 실컷 놀다가 9시가 넘어 문제집을 풀려고 하니 골이 난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라 문제를 똑바로 봐야지.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했잖아."
이것은 제 잔소리의 1절입니다. 적어도 32절은 갔던 것 같습니다. 잔소리 폭격을 맞은 춘기는 (아마도) 삐져서 대답도 하지 않더니 다시 수학 문제집을 펴고 앉기는 합니다.
갱년기행은 열차는 언제 오나요?
"엄마는 갱년기니까 넌 사춘기가 와도 까불지 마."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더라."
춘기가 잠든 밤,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갱년기가 이긴다고 신신당부를 해두었는데 갱년기가 아직 안 왔습니다. 아이는 사춘기로 무장을 하고 있는데 엄마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글이나 열심히 쓰고, 일이나 열심히 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는 대신 그냥 각자의 시간을 잘 쓰는 게 사춘기를 대하는 현명한 자세인 것 같습니다. 대신 이제 열 살인 꽁지가 사춘기행 티켓을 받을 때는 얼른 갱년기행 티켓 사서 갱년기역으로 먼저 데리고 가버려야겠습니다.
손님, 사춘기 본관입니다. 앞으로 매일 희망 하나는 배달될 예정입니다.
방문이 쿵 닫힐 때, 사춘기에 대한 환상도 깨졌습니다. 사춘기는 사춘기입니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얼굴을 보니 귀엽기는 합니다. 춘기도 코를 발름거리며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나 상처받았어."
"뭐 때문에?"
"엄마가 시간을 잘못 보냈다고 해서 상처받았어!"
잘 말하다가 욱,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사춘기가 맞는가 봅니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잘 쓰는 것에 의의를 두고 살기에 이번에도 참아주질 못했습니다.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마음도 가져야지."
이러다가 또 볼을 내밀면 뽀뽀를 해주는 여하튼 난장판인 아침을 보냈습니다.
오늘따라 듣고 싶은 음악이 생각나 함께 올립니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춘기와 함께 감동을 받으며 듣던 음악인데요. '중국의 모차르트'라고 불리는 피아니스트 랑랑과 결혼한 한국계 독일인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의 첫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이지요.
지나 앨리스 - 엄마야 누나야 | kiwa LIVE session - YouTube
지나 앨리스는 데뷔 앨범에 어릴 적 엄마와 외할머니께서 불러주신 동요 <엄마야 누나야>와 <반달>을 연주해서 수록했어요. 그중 춘기와 함께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엄마야 누나야>를 다정한 독자님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갓난아기 때 배 위에 안겨서만 자던 춘기에게 자장가로 불러줬던 동요를 들으며 춘기의 사춘기가 지나친 패기로 어긋나지 않으며 잠잠하게 잘 지나가기를 빌며, 춘기의 격동의 생일 주간을 마무리합니다.
Peace be with you and m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