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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Apr 18. 2023

사랑한다는 말은

사춘기가 말하는 사랑해

  "이 집 아들은 사춘기 왔어?"

  첫째가 12살 무렵부터 이 질문은 아들 친구의 엄마나 저의 지인들을 만날 때 단골 질문으로 등장했습니다. 저는 뾰족하고 선명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뇌에 버퍼링이 일어나는 관계로 한참을 생각하다 겨우 대답을 내놓았지요.

  "글쎄, 잘 모르겠어."

  대답이라고는 뭔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지만 이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아 억지로라도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가을, 드디어 꽤 괜찮은 대답을 찾았습니다.

  "아이의 성격이 변했다는 기준이면 사춘기가 왔고, 말도 안 하고 문 쾅 닫고 들어가는 행동이 기준이면 아직 안 왔어."

  명쾌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현재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진실로 꾸린 대답이었습니다.


  저희 집 '춘기'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사랑해'입니다. 춘기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라는 시간 위에 얹어 줍니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도 같은 말로 닫는다. 제 눈에도 춘기는 징그러운 느낌보다는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가끔 코 끝을 스치는 정수리 냄새가 이 아이가 '춘기구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아이에 대한 마음을 떼어 놓진 못하지요. 제 눈에는 그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살가운 아이가 예쁠 뿐입니다. 물론 사춘기다운 모습도 당연히 있지요. 듣기 싫은 말은 전주만 나와도 '어어어어 어'라는, 이른 대답으로 얼른 끊고 마무리 지으려고 하거든요. 그런 것을 보면 아이가 드디어 사춘기가 되었구나, 하는 확신이 듭니다. 


  작년 봄,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사춘기의 아이가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기사였어요. 연구 실험에서 사춘기의 아이들은 엄마의 목소리보다 낯선 이의 목소리에 더 크게 반응을 했는데, 이것은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대한 탐색 과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 꼭 목소리 톤을 낮추든, 높이든 목소리를 낯설게 해서 잔소리를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사춘기의 기미조차 없었는지 이내 이 생각을 잊어버려 아직까지 써먹어 본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좋은 대책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겨우 찾아낸 생각이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기사는 우리 집에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우리 집 사춘기 아들은 더 살갑게 챙기기도 하고, 잔소리를 '칼차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엄마인 저입니다. 기사의 내용과 달리 우리 집에서는 사춘기 아이 대신 사춘기 아이의 엄마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더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춘기의 말이 어찌나 안 들리는지 춘기가 몇 번을 물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아 삐진 춘기의 마음을 풀어줘야 하는 날도 있었고, 열 살인 춘기의 동생은 그 일로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이제 내 눈만 봐. 나만 보면서 말해. 엉엉"

  정말 이렇게나 안 들릴까 싶지만 정말 안 들립니다. 사십춘기인 저에게 더 통하는 기사인가 봅니다.


   "엄마!"

  어느 날, 사춘기 아들이 저를 부릅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대단한 동맹이라도 맺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엄마, 앞으로 내가 '사랑해'라고 말하면 나도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야. 그러니까 내가 '사랑해'라고 말하면 '응'이라고 대답하지 말고 '사랑해'라고 대답해 줘."

  대답이 없는 엄마의 모습만큼 아이가 속상한 부분은 '응'이라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최근에 와서 이런 일이 잦아지자 춘기는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지 않고 이 일을 직접 해결하기로 했는 것 같습니다. 이제 보니 지혜로운 혜결책을 찾아온 기특한 사춘기 소년에게 사춘기를 겪는 엄마가 있는 기분이 듭니다. 누가 누굴 키우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게다가 춘기는 마음도 얼마나 넓은지 제가 깜박 잊고 '응'이라고 대답하면 다시 친절하게 우리의 약속을 일러줍니다. 


  앞으로 "아들 사춘기 왔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제 "엄마가 사십춘기가 왔어요."라고 대답해야 할까, 살짝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10대 사춘기 아이들이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일명 ‘중2병’ 행동의 이유가 밝혀졌다. 사춘기를 겪을 나이가 되면 뇌가 엄마의 목소리보다 다른 사람 목소리에 더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다.

연구팀은 7~16세 아이들이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때와 다른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때 각각 뇌 모습을 촬영했다. 그 결과 7~12세 아이들의 특정 뇌 영역이 다른 여성보다는 엄마의 목소리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목소리에 반응한 뇌의 영역은 보상이나 주의력과 관련된 곳이었다. 하지만 사춘기의 아이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나타냈다. 엄마의 목소리보다는 낯선 이의 목소리에 더 큰 반응을 한 것이다. 특히 13~14세 아이들에게서 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청소년기의 뇌 영역이 엄마에 대한 반응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낯선 목소리에 더 주목한다. 새로운 사람과 상황을 탐색하는 청소년기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에이브람스 교수는 "부모들이 10대 자녀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돼 좌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용기를 내라”라고 조언했다.

<서울경제신문> , 20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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