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연동 캐주얼 다이닝 <종종코티지>
아, 맥주 한 잔이 하고 싶은 목요일 저녁입니다. 그러게요, 금요일 저녁이면 아하! 불금이라며 공감이라도 될 텐데 애매한 목요일입니다.
아무튼 가을바람이 불고,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 본 적은 없지만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가을입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듣던 음악만 마저 듣고 내리자 싶어 그대로 있는데 귀여운 우리 집 (사)춘기씨가 지나갑니다.
"춘기야!"
작은 목소리로 불러 춘기에게 들렸을까 조심스러운 마음까지 모두 춘기의 귀에 닿았습니다. 찰싹!
"춘기야, 오늘 저녁에 누룽지 백숙은 어때?"
"음, 나도 맛있는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어."
오늘 저녁 메뉴를 두고 누룽지 백숙과 스파게티의 밀당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시죠? 저녁 메뉴를 고르는 것에서는 언제나 아이의 승리죠. 뭐, 제가 자주 양보를 하는 편이죠. 걸어서 동네 맛집으로 갑니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가을에는 걸어서 다니기가 참 좋습니다. 차를 타고 풍경만 보며 지나가기에는 가을도 후딱 지나가니까요.
"엄마, 나는 엄마를 많이 닮은 것 같은데 딱 하나 안 닮은 게 있어."
"그래? 뭘까?"라고 말은 했지만 딱히 저를 빼닮은 구석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춘기는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저 춘기 자체일 뿐이니까요.
"운! 엄마는 참 운이 좋은데 나는 아닌 것 같아."
춘기가 '엄마를 닮지 못한 운'은 게임 아이템 뽑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뽑지 못한 것,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는 '뱅'이라는 보드게임에서 19번을 하는 동안 보안관을 단 한 번도 뽑지 못한 것입니다. 엄마 눈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운이지만 춘기에게는 목숨만큼 귀한 운일 것입니다.
"엄마는 좋은 운을 우리 춘기에게 쓰잖아."
네, 주말에 음악을 들으며 쉬고 있는데 춘기가 쪼르르 달려와 터치 한 번 해달라고 하면 별생각 없이 눌러줍니다. 이게 참 중요해요. 부담을 가지지 않고 그냥 눌러야 합니다. 반드시, 기필코 제일 좋은 것을 뽑아야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금물입니다. 그저 마음이 편하면 행운도 따라오더라고요. 오, 이번에도 굉장한 레어템이 나왔다며 신이 난 춘기의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웁니다. 학교에서 보드게임할 때는 어떻게 해도 도와줄 수가 없군요. 앞으로 학교에서는 신중하게, 정성껏 생활하는 것으로!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골목 안에 있는 식당이 보입니다. 미리 예약 전화를 해둔 덕에 마지막 테이블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서두에도 적었지만 저는 오늘 맥주가 딱 한 잔 먹고 싶은 저녁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안주는 종종 크림뇨끼입니다. 그리고 제주 딱새우 오일 스파게티와 코티지 채끝 스테이크를 조금 뺏어 먹을 계획입니다. 하지만 콜라는 나눠 달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가장 먼저 시원한 맥주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습니다. 20대 때는 거품이 최대한 생기지 않게 맥주를 따랐지만 요즘은 뽀얀 거품이 반이 차도록 따라서 천천히 마시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이어서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씩 테이블 위에 올려집니다. 가장 먼저 크림소스 위에 감자로 만든 뇨끼가 나왔습니다. 사각사각 주사위 모양으로 썬 버섯조각과 부드러운 브로콜리, 치즈도 함께 올려져 있어요. 뇨끼 하나를 콕 집어 입에 넣으니 춘기가 말합니다.
"내가 아까 더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음식이 나오면 하려고 참고 있었어."
"그래? 무슨 말?"
"난 좋은 운을 엄마를 만나려고 모두 썼나 봐."
아놔, 입 안을 가득 채운 고소하고 짭짤한 뇨끼에 춘기가 건넨 다정하고 달콤한 말까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둥근 테이블의 지름만큼 떨어져서 춘기를 보니 우리 춘기가 많이 컸습니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예비 여자친구에게 '나쁜 남자' 말고 든든한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춘기가 좋아하는 제주 딱새우가 들어간 오일 파스타도 나왔습니다. 춘기는 딱새우회를 무척 좋아하는데, 저는 해산물(특히 갑각류)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다른 식구들이나 지인들이 여행을 오면 춘기를 위해 꼭 사주는 편입니다. 이곳에서는 껍질이 무척 딱딱한 딱새우를 반으로 갈라놓아 포크로 쏙, 집어 먹으면 되니 무척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것은 채끝 스테이크와 소금을 솔솔 뿌린 고구마튀김입니다. 이 채끝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 지난달에도 이곳을 찾았는데 금요일 저녁 이른 시간에도 대기 마감이 되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한 점을 썰어 봅니다. 고기가 참 부드러워 아이들과 먹기에도 참 좋네요. 고구마를 좋아하는 저는 사이드로 나온 고구마튀김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짭짤한 고구마튀김은 맥주가 마시고 싶었던 오늘 저녁에 멋진 안주가 되어 주었습니다.
'손이 가요, 손이 가...'
둥근 테이블과 맛있는 음식은 우리를 종종 친절하게 만들어줍니다. 마주 앉은 사람의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듣는 마음의 여유를 줍니다. 아이의 학교 생활과 어울리는 친구들 그리고 진로까지, 춘기와 나누는 이야기에서 단골 소재이지만 비록 같은 말을 반복할지라도 춘기는 제게, 저는 춘기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사춘기는 각자가 빛나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인정하는 시기인 듯합니다. 춘기의 미래도 오늘처럼 멋진 사람이길 빌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동네 맛집 '종종 코티지'에서 맛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