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의 생김새
"애벌레는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어요?"
- 귤나무에서는 호랑나비 애벌레, 방풍나물이 보이면 산호랑나비 애벌레를 찾을 수 있지.
"나비알은요?"
- 그것도 마찬가지야. 날치알은 수산시장에서 사면되고. (썰-렁)
질문을 잘하는 게 중요해진 AI시대라 그런가요? 어린이들의 궁금증을 잘 들어보면 본질을 꿰뚫을 때가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비의 한살이를 보여주면 "이거, 저 주세요."라며 자신도 애벌레 한 마리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간절한 눈망울을 보이는 어린이들이 많았지요. 하지만 요즘은 "저도 키우고 싶은데, 얘는 어떤 잎을 먹고살아요?"라던가 "어디에 가면 애벌레를 찾을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쉽게 얻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아이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주세요-을 요즘 어린이들은 쉽게 입에 담지 않아 섭섭해지면서도 이들은 자라서 독립적이며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겠구나, 하는 안심이 듭니다.
어린이들의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지요. 귤나무의 잎을 먹고사는 호랑나비 애벌레는 귤나무에, 방풍나물을 먹고사는 산호랑나비 애벌레는 방풍나물에,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케일이나 양배추 잎에 산다고 알려주지요. 하지만 기주식물을 알아내더라도 애벌레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충인 나비와 애벌레의 생김새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지요. 엄마, 아빠를 하나도 닮지 않은 자식이 바로 나비 애벌레입니다. 오늘은 감히 누군가의 생김새를 샅샅이 평가할 자격이 저에게 있을지 모르겠만, 약 3주간 애벌레로 살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키우는 즐거움이 있는 호랑나비 애벌레의 외모를 평가해 보려고 합니다. 귀여운 구석이 많은 녀석인데 제가 너무 못생기게 표현한 것인지, 별 볼이 없는 녀석을 마구 예쁜 눈으로 본 것인지. 저는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으니 독자님께서 제 시선을 바로 잡아주세요.
누군가는 새똥을 닮았다고 말합니다.
제주 여행 중 귤나무를 보고 이 연재가 떠올라 귤잎을 뚫어지게 보고 뒤집어 또 보아도 애벌레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호랑나비 애벌레는 총 4번의 허물을 벗으며 1령에서 5령 애벌레로 자라는데, 그중 우리가 아는 귀여운 완두콩 색깔의 애벌레는 5령(종령) 애벌레이기 때문입니다. 또 자고로 '애벌레'는 애기(아기)처럼 작을 거라고 예상을 하지만 5령 애벌레는 5cm 정도의 크기로 손톱이 아니라 손가락 하나만 합니다. 그럼 1령에서 4령까지의 애벌레는 어떤 모습일까요? 4령 애벌레가 되기까지 호랑나비 애벌레는 새똥을 닮았습니다. 천적인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새똥 모양을 하고 있지요.
물론 길 걷다가 날아가는 새의 똥을 맞아본 적이 있는 저는 새똥을 닮았다는 말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지요. 새똥처럼 퍼지지 않고 탱글탱글한 몸매에 보드라운 감촉을 가진 호랑나비 애벌레가 새똥보다 훨씬 예쁘지요. 게다가 만약 새똥을 닮았다면 청도의 한 카페 마당에서 이 애벌레와 처음 마주쳤을 때 반가운 탄성을 지르진 않았겠죠. 저에게는 새똥이 아니라 그저 거무튀튀한 애벌레일 뿐이지요. 작아진 허물을 벗을 때마다 얼른 먹어치우며 흔적을 없앨 줄도 아는 영리한 애벌레이고요.
누구에게나 귀엽게 보이는 시절도 있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새똥을 닮은 시절을 지나면 마지막 5령 애벌레이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록 애벌레, <포켓몬스터>의 캐릭터 '캐터피'가 됩니다. 이 시절은 무척 짧지만 먹성도 엄청 좋기에 완두콩처럼 통통하고 귀여운 모습 그 자체이지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시기입니다. 이 사랑둥이는 이제 새똥의 닮은 모습을 벗고 천적들과 맞섭니다.
나뭇잎과 같은 초록의 보호색으로도 부족한지 뱀의 머리를 닮은 모습으로 변신을 하지요. 또 누가 다가오면 나뭇잎을 흔들어 경고를 주기도 해요. 이 경고가 실패를 하면 노란 뿔을 내밀고 지독한 냄새를 풍겨 달아나게 만들죠. 또 자랑거리를 하나 더 보태자면 얼마나 똑똑한지, 똥을 눴는데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나뭇잎에 붙어 있는 똥이 있으면 입으로 물어 머리의 반동을 이용해 휙 멀리멀리 날려버립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본능이겠지만 배변훈련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척척 잘하니 얼마나 예쁜지요.
악어를 닮았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이번 여름에는 호랑나비 애벌레를 보는 특별한 시선을 만났습니다. 평소처럼 출근도 함께 하고 퇴근도 함께하는 애벌레와 그날도 함께 독서교실에 있었지요. 등장하는 어린이들마다 애벌레를 사랑해 주고 조심스럽게 대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눈에 하트가 뿅뿅이라 괜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애벌레 예쁘지?"
"음, 악어 같이 생겼어요."
우리 예쁜 애벌레에게 악어라니!
그날은 애벌레를 이쪽에서도 보고 저쪽에서도 보고 돌려도 보며 얼마나 쳐다봤다고요.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악어를 닮은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특히 45도 각도에서는 호수라도 하나 그려도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이 4령 애벌레는 여전히 '새똥 스타일'의 무늬를 가졌지만 5령 애벌레의 완두콩을 닮은 초록이 희미하게 보이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더 악어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물지 않아요. 사냥도 못해요. 초식이고요. 무척 순하답니다. 이름만 악어, 악어를 닮았어요.
제 눈에는 잘 먹고 자라서 멋진 호랑나비가 되어 날아간 이 애벌레들이 다 예쁜데, 옆집 독자님의 시선에서는 어떤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