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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l 26. 2024

여름이 되면 생기는 제철 책임감

  무척 더운 여름이 다시 돌아왔어요. 어제는 중복답게 제주의 낮 기온이 무려 36도가 넘게 오르더라고요. 사람 대신 공기를 껴안고 지내는 이 기분. 세상에나! 이렇게 더운 여름이 예전에도 있었을까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깜박하고 잊어서 그렇지 체감온도 36.5도가 넘는다라고 말했던 여름이 해마다 분명 있었겠죠. 자고로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지요. 주의 사항으로는 마음의 온도를 잘 지켜야 하고요. 이런 날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휘휘 저으며 사람 대신 땀을 흘리는 커피컵을 바라보는 게 최고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요. 그런데 더위는 잊고 사는 또 다른 방법이 있어요. 태양은 피하지 않되 불쾌지수 따위는 얼씬도 못하는 더위를 피하는 법이지요. 이 비법은 축축 늘어지지 않고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힘을 줍니다.


  꾸준히 움직이는 힘 아니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의무를 주는 이것은 바로 나비 키우기입니다. 제가 겪어보니 나비가 반려곤충이 되고부터 여름마다 엄청 바쁘더라고요. 아무리 더워도, 아침 일곱 시부터 땀이 삐질삐질 나더라도 녹아내릴 시간이 없어요. 왜냐! 이 귀여운 애벌레들을 먹여 살려야 하거든요. '죽든 말든 알아서 살아라'라는 마음이었으면 애초에 애벌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죠. 끝까지 잘 먹고 잘 돌봐 나비가 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책임감을 가지고 반려동물로 입양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여느 반려동물처럼 이 작은 애벌레에게도 보통 이상으로 정성이 필요합니다. 먹이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해서요.


   나비 애벌레의 먹이는 종에 따라 다르지만 배추흰나비 애벌레는 케일, 호랑나비 애벌레는 산초나무의 잎, 산호랑나비 애벌레는 방풍나물을 먹어요. 대신 꼭 농약을 치지 않은 것으로 줘야 합니다. 농약을 친 잎을 애벌레가 먹으면 아주 슬프게-몸이 녹으며- 죽어갑니다. 애벌레의 먹성에 비해 먹이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던 초기에는 친환경 코너에서 산 케일을 하루 동안 물을 갈아주며 담가뒀다가 줬지만 결국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어요. 그날 이후부터는 '아무도 못 믿겠다'는 생각으로 내 벌레에게 먹일 것은 모종을 사서 직접 길러 먹입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모종은 언제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농부들의 밭농사 스케줄을 검색해 가며 모종을 구해야 합니다. 한가로이 집에 있을 틈이 없어요.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잡아먹지만 벌레를 키우기 위해 사람은 일찍 재래시장으로 가지요. 머릿속으로는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기까지 남은 기간, 모종의 크기에 따라먹을 만한 본잎이 되기까지 걸리는 케일의 성장 시간, 게다가 경쟁자인 나방 애벌레가 이미 먹어치우지 않았는지 모종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며 언제까지 모종을 구할 수 있는지 모종가게 이모와 함께 수급 계획까지 확인을 합니다. 계획형이 아닌 사람에게 치밀한 계획표는 없지만 나름의 체계적이고 다각화된 '짐작'으로 모종을 구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애벌레가 에릭 칼 작가의 <배고픈 애벌레(The Very Hungry Caterpillar)>가 되면 안 되잖아요. 책임감이란 이렇게 훌륭한 행동을 낳습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요. 아무리 더워도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키우는 4~5월에는 모종을 찾아 아침 일찍부터 재래시장으로 갑니다. 농부의 텃밭에 심기기 전에 얼른 모종을 사야 하니까요.


  호랑나비 애벌레는 더 부지런한 여름을 요구합니다. 호랑나비는 우리나라의 5월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연 3회 발생을 하는데, 호랑나비는 해바라기처럼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빛을 좋아하나 봅니다. 그런데 여름이라 숲에서 따온 호랑나비의 먹이 식물인 산초 나뭇잎, 귤 나뭇잎은 얼마나 빨리 시들어 버리는지, 게다가 이런 잎은 애벌레들도 귀신같이 안 먹습니다. 그렇다면 믿을 것은 나의 두 다리뿐이죠. 우선 호랑나비 애벌레의 먹이 채집은 고난도입니다. 산초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평소에 등산을 하며 파악해 두어야 해요. 그리고는 아침마다 같은 코스로 산책을 해야 합니다. 한여름의 아침은 볕이 얼마나 좋게요? 땡볕이지만 신선한 잎을 따서 최대한 싱싱한 상태로 호랑나비 애벌레들에게 배송해야 합니다. 내 기미와 바꾼 햇잎을 총알 배송하지요.


  그래도 제주에서는 그나마 수월합니다. 예전에 살았던 중산간 마을에 가면 농약을 치지 않고 방치된 귤나무를 찾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아침마다 너무 센 잎을 제외하고 여린 잎만 골라서 하루치를 따서 옵니다. 방치된 귤나무도 사람의 손길이 자꾸 닿으니 처음 보았던 4년 전에 비해 잎이 훨씬 풍성해지더니 올해는 꽃도 많이 피었어요. 뜻하지 않게 귤나무와 상부상조하고 있답니다.

  가끔 잎을 따는 시간에 전화가 울릴 때도 있지요.

  "어딘데?"

  "지금 귤나무 잎 따고 있어."

  "그걸 왜?"

  "애벌레 먹이려고."


야이야, 아직도 그놈의 벌레 키운다고 잎 따러 다니나?


  그러게요. 7년 전, 100마리가 넘는 배추흰나비 애벌레 대가족과 함께 여름을 보내던 어느 날, 여덟 살이었던 친구의 딸에게 나비가 우화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 번데기를 통에 담아 준 적이 있거든요. 그 아이의 엄마인 오랜 친구가 때마침 전화를 한 것이지요. '아직도', '그놈의', '잎 따러' 다니냐며 놀라는 친구의 말에 추억을 떠올리며 둘이서 웃어 버렸네요. 이 새똥처럼 생긴 애벌레가 뭐가 귀엽다고 이렇게 애지중지 키우는지. 그래도 이 애벌레 덕분에 여름이 얼마나 즐겁다고요. 더운 여름은 여전히 싫지만 나비 덕분에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애벌레야, 내 더위 줄게. 무사히 나비가 되어다오."




  + 다정한 독자님, 오늘 글의 사진은 '란타나'라는 아주 예쁜 꽃입니다. 한 가지에서 같은 색의 꽃이 피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분홍색이 섞인 꽃다발로 피지요. 꽃을 볼 때면 여름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이 사진을 고른 이유는 호랑나비가 란타나의 꽃꿀을 가장 좋아하거든요.

    언젠가 정원이 있는 집을 가지면 란타나를 가득 심은 정원을 만들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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