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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Jul 19. 2024

 나비는 고양이 이름이 아닙니다

"애완동물 키워요?"
  - 네, 나비요.
"고양이?"
  - 아뇨, 팔랑팔랑 나비요.  


  나비는 꼼지락거리며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있는 작고 귀여운 이 애벌레가 다 자라면 불릴 이름입니다.

너는 나의 귀여운 나비 @무지개인간


  어쩌다 나비를 키우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무려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평소에도 지금의 제 모습은 대체로 '우연'에서 비롯된 일로 다듬어졌다고 생각하는 저는,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운명의 손짓 아니 날갯짓을 보았답니다.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정원에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있는 집의 정원에 말이죠- 알을 낳는 장면을 목격했거든요. 나비는 보통 100개의 알을 낳지만 그중 '진짜 훨훨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보는 나비는 고작 1~2개 정도라고 합니다. 생존율이 1~2%인 아주 귀한 생명체이지요.


  게다가 천적은 얼마나 많다고요. 애벌레를 잡아먹는 새나 사마귀 같은 곤충뿐만 아니라 기생벌, 파리처럼 애벌레에 몰래 알을 낳고 자신의 알을 부화시키는, 몸통을 도둑질하는 천적도 아주 많이 있답니다. 나비의 한살이를 파헤치며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엄마 나비가 낳고 간 알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어요. 도저히요. 엄마 나비가 알을 낳기까지 얼마나 정성을 다했을까요. 안전하고 먹이가 충분한 곳을 고르고 골랐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집 안으로 알을 가져와 엄마처럼 보살피기 시작했어요. 애벌레들을 먹이기 위해 케일 모종을 사 와 농약을 치지 않고 기른 뒤 관찰통에 한 잎씩 넣어주며 먹고 싸는 것을 매일매일 지켜보았답니다.


  <나의 반려애벌레>는 저에게 여름마다 '방콕'을 선물했지요.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들이 '어항 멍'을 하듯 외출도 하지 않고 '애벌레 멍'을 하며 온종일 애벌레만 쳐다보았어요. 하루 몇 시간씩 관찰통 앞에 앉아있었는지 아유, 말도 마세요. 이제야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더라고요.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 장면이라도 놓칠까 봐 말이죠. '애벌레 멍'은 자연의 신비를 관찰하며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한 재미를 가져다주었어요. 한편으로는 백일이 된 막내의 자른 손톱보다 더 작은 애벌레가 탈출이라도 하면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채워주었고요. 여하튼 처음 애벌레를 만났던 그해 여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때도 지금처럼 무척 더웠을 텐데 기억이 나질 않아요.


  애벌레가 꼬물꼬물 기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어요. 작은 애벌레는 아주 넓고 게다가 천적도 없는 안전한 집을 얻은 셈이지만 오직 초피나무나 귤나무 잎사귀 한 장에 붙어살며 충분한 행복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서 더 욕심을 내면 나비가 되지 못하고 굶어 죽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고요. 그렇게 자신의 몫만 취하며 묵직하게 자란 애벌레는 어른벌레인 '나비'가 되면 애벌레 시절보다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보상받지요. 저희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커다란 세상을 말이죠. 그제야 비로소 어디든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해요.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11년 동안 봄부터 늦여름까지 함께 살지만 과연 반려곤충이라고 불러도 될까. 게다가 나비는 여름 한 철만 같이 사는데 말이죠. 그래도 특별한 마음을 주고 있으니 반려곤충이라고 말하기로 했어요. 짝사랑을 주는 반려곤충이지만 사실 얘에게 "손!"이라고 하면 툭 하고 내밀 손이 있습니까, 발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저 한 지붕 아래에서 각자 '나답게' 사는 게 공존이지요. 마치 무지개처럼요. 자신의 색으로 다른 색을 덮지도 않으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공간을 인정하며 노터치(no touch) 동거 중이지요. 저는 일을 하며 밥을 지어먹고 여가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애벌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내킬 때 잎을 먹고 똥을 싸며 살고 있어요. 아, 가끔 출근도 함께 해준답니다.


  올해는 어찌 된 일인지 산책을 하다 나비를 만나는 일보다 고양이 '나비'를 만나는 일이 더 쉽네요. 제주는 1, 2월의 폭설과 3, 4월의 폭우로 유례없는 이상 기후를 맞이했지요. 그래서 여름이 왔지만 우화 하지 못하고 영원히 겨울잠을 자는 번데기들이 많이 있나 봐요. 저도 늦은 5월에 겨우 갓 깨어난 애벌레 4마리를 구했지 뭐예요. 눈에 띌 때마다 먹이 나무 앞에서 이리저리 더 자세히 살펴보아도 더는 찾을 수 없었고요.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가 종종 들리는 것처럼 나비도 사라지고 있어요. 반려곤충이 되도록 오랫동안 키우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지요.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법칙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지혜도 깨달았는데, 이제 애벌레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환경의 변화를 온 힘을 다해 알려주고 있어요.




  사진은 얼마 전에 산책을 하며 찍은 '왕자팔랑나비'입니다.

  이름을 보는 순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조선의 나비를 연구하고 정리했던 우리나라의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이 나비는 나는 모양이 까불대서 '팔랑나비'라는 이름이 붙었고, 크기가 더 큰 '대왕'팔랑나비, 조금 더 작은 종은 '왕자'팔랑나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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