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또 다른 전장이었다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나온 첫날 아침.
알람 없이 일어난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부터 미국과 회의를 하고
밤에는 유럽과 일 하느라 늘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가족과의 저녁 식사는 연례행사였고,
주말이나 휴가 때도 노트북을 끼고 살았다.
"이제는 달라질 거야. 사업 구상도 하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노릇도 제대로 해보자."
나는 스스로 등하원 도우미를 자처했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내는 아침.
아내는 "오빠가 도와주니 살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고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적어도 첫 한 달은…
문제는 나의 '상주(常駐)'가 일상이 되면서 발생했다.
처음에는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면
"고마워"라는 말이 돌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인식 속에 나는
‘집에 있는 사람'으로 고정값이 잡히기 시작했다.
"오빠, 어차피 집에 있잖아. 세탁기 좀 돌려줘."
"오빠, 분리수거 좀 하고 와."
'어차피 집에 있잖아'라는 말은 나를 옥죄어왔다.
나는 집에서 노는 게 아니었다.
서재에서 다음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시장 조사를 해야 하는데…
속으로는 조바심이 낫다.
하지만 아내의 눈에 비친 나는
그저 '시간 많은 백수'일 뿐이었다.
집은 더 이상 휴식처가 아니었다.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사 없는 또 다른 직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점점 답답해졌다.
하루 종일 붙어있으니
아내와의 마찰도 너무 잦아졌고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갔다.
퇴사 후에도 늦잠 한번 안자며
사업 구상에 몰두했지만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는 길을 잃은 듯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지만,
지난 10년간 회사 일과 사이드 잡을 병행 하느라
일주일에 하루 이틀정도 겨우 운동할 수 있었다.
"그래, 이참에 몸이라도 만들자."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화 끈을 묶었다.
아내와 아이가 잠든 시간,
유일하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릴 때만큼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심장이 터질 듯 뛰고, 허벅지가 불타오르는 고통.
그것은 답답함보다 훨씬 견딜만한 고통이었다.
단순한 도피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나는 무섭게 몰입했다.
매일 아침 러닝을 하고 매주 등산을 갔다.
체력이 올라오자 욕심이 생겨
마라톤 대회에 접수했고,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까지 나갔다.
극한까지 몸을 밀어붙이며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요즘,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건
내 몸뚱이뿐이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나에게 새로운 사업의 영감을 주었다.
대회장에서 사람들이 입은 옷, 그들이 쓰는 장비,
러닝 크루들의 문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시장,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니까 더 잘할 수 있겠는데?'
방구석에서 모니터만 볼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땀을 흘리며 현장에 나가니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스포츠 브랜드' 런칭을
다음 사업의 목표로 잡게 되었다.
운동을 통해 몸과 멘탈을 회복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혹했습니다.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있었고,
스포츠 사업은 준비 단계라
당장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사업을 정리하면서 처분하지 못한,
계약 기간이 남은 '애물단지 창고'였습니다.
"저걸 그냥 놀릴 순 없잖아?"
다음 화에서는 버려진 창고를
정부지원사업으로 심폐소생술 하여,
작지만 고정적인 수입을 만든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